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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월화수목금토일,일주일을 음악으로 글쓰기

토요일이 가장 행복한 글.. 토요일처럼


일요일이 두 번째로 좋다. 일요일은 블루스와 재즈로 글을 쓰기에 참으로 좋다.


때때로 일요일은 조금 더 파격적인 음악, 고전음악을 벗어난 낭만적인 것이면 잘 어울린다.


일요일만은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나와 가족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데


이에 어울리는 음악이 흥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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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토요일 저녁이 가장 좋다. 토요일 저녁은 하와이 우쿨렐레 기타처럼 흥얼거린다.


직장인에게 토요일 저녁만큼 좋은 날이 없다. 나는 토요일 저녁을 위해서 한주를 살게 된다.


(나의 일터는 토요일 4시 반에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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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우리는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며 일한다.


월요일은 바흐의 푸가나 헨델의 칸타타와 같은 규칙으로 움직인다.


그 규칙에서 무너지면 일터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바흐가 푸가를 통해서 연주의 형식을 완성하여, 후대 작곡가들을 위한 클래식 음악의 아버지, 스승이 되었듯


나의 월요일은 화, 수, 목, 금요일이 따라올 수 있는 일터의 표준을 제시하게 된다.


그 표준은 엄격한 규칙적인 생활이 있다. 바로크 음악의 엄중함과 일정한 규칙이 제격이다.


월요일을 위한 글은 일터를 예찬하는 동기부여의 글을 담고 발행하게 되기도 한다.




화요일은 익숙해진 규칙이 몸에 배어 하이든의 교향곡을 연주하듯 일한다.


일로 다져진 몸짱이 되어 피로한 야근 근무도 마다 안 한다.


일요일은 멀고 일터에서 견뎌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처럼


우직하게 4악장의 작곡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절대 미완성 작곡이면 안 된다.


반드시 책임진 일을 완성해야 하고 반드시 우직하게 장거리 달리기를 멈추면 안 된다.


화요일은 월요일의 연장선의 글이지만, 조금의 변주곡을 울리는 글이 된다.




수요일은 피로가 쌓이지만 아직은 견딜만하다. 모차르트처럼 농담을 하거나 베토벤의 운명처럼 포효하면서 일주일의 한 가운데를 뚫고 간다. 때로는 장난스러운 농담이 통할 때도 있지만, 역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나의 운명을 두들겨야 문이 열린다. 끊임없이 문을 열 수 있도록 운명을 개척하여야 한다.


한주의 한 가운데 멈출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오로지 나폴레옹처럼 전진하다가 결과를 보아야만 한다. 행군을 포기할 수 없지만 또한 희망의 빛을 기대하게 된다. 수요일만 지나면 일주일이 주말도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수요일은 희망 예찬가를 쓴다. <수요일에 비가 오면>도 결국 사랑의 희망을 위한 곡이었으니까..




목요일은 리스트와 쇼팽 사이를 오고 간다. 낭만적으로 변하는 감성이 폭발하여 금요일을 기다린다.


목요일은 낭만적이면 좋겠다. 내일 금요일이 보이기 때문이고, 한 주간 이루어놓은 것도 적지 않다.


목요일은 낭만주의자가 되어 피아노 연주를 꿈꾸게 된다.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되고 싶어진다.


자신의 임무를 소명의식을 갖고 완성하여야 하는 돈키호테처럼 일하지만, 동시에 여인을 챙키는 낭만주의자가 되고 싶어진다. 사랑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낭만을 얘기할 수 없다.


리스트는 쇼팽에게 무한한 우정을 보냈다. 목요일은 사랑을 되찾게 되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목요일은 달인 예찬의 글을 쓴다. 리스트와 쇼팽 모두 피아노의 달인이다.




금요일은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른다. 아리아의 가수가 되기도 하고 간주곡의 아름다운 선율에 온몸을 담그고 싶어진다. 드디어 해방의 탈출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리아는 음악이고 대사이다. 시이고 동시에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인생은 오페라와 같다. 스토리가 있지만 그 스토리에 음악을 입히고 싶다. 음악 없이 삶은 너무 무료하다.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주는 삶은 비장하지만 희극적이고, 비극적일 수 있지만 감동적이다. 일주일을 치열하게 살아온 금요일은 오페라 아리아, 뮤지컬의 노래처럼 보상 같은 하루를 기대한다.


금요일은 환희의 찬가와 같은 장대한 오페라풍 글을 쓰려고 한다. 일주일 동안 수고한 나를 위한 치유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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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을 위해서 5일 내내 갑옷을 입은 기사처럼 엉뚱하게 돌진해 본다. 라만차의 돈키호테이기를 바라지만 진짜 싸움꾼 전쟁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기사는 못된다. 토요일은 하와이로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열차를 갈아탄다. 그전에 평일에는 설국열차로 극한 데까지 생존게임을 벌이는 기분이다. 토요일만은 기타를 치고 싶다. 기타보다 우쿨렐레처럼 휴대용 악기면 좋겠다. 토요일 저녁은 우쿨렐레의 선율에 춤을 추면서 와인과 칵테일을 즐기고 싶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언제나 자유 형식의 마음 가는 대로 쓴다. 누구도 구속할 수 없는 돈키호테 같은 나의 삶을 예찬하고 싶다. 토요일, 일요일에 적은 글은 모두 행복해진다.



일요일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토요일 밤 꿀같은 잠은 천국과 같다. 일요일을 맞이하는 토요일 새벽, 토요일 아침은 인상주의적인 환희의 예찬가를 부르게 된다. 인생은 일요일 아침 같았으면 좋겠다. 인생을 음악처럼 써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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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내가 쓰는 글들은 모두 음악과 같았으면 좋겠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음악처럼 글을 쓴다. 일주일을 즐기면서 보낼 수 있는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음악은 삶과 일상에 큰 동기부여가 된다. 우리 모두가 음악처럼 악기처럼 이 세상에 큰 공명이 되는 멜로디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베짱이처럼 언제나 감성적인 음악만 들으면서 흥얼댈 수도 없다. 음악도 절도 있는 규칙으로 연주해야 하는 월요일을 맞이해야 한다. 일주일은 인생의 4악장과도 같고 각기 다른 각자의 멜로디로 연주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고 만다. 한 주의 시작과 끝은 1악장과 4악장이다. 하지만 늘 2악장의 아다지오로 글쓰기를 하고 싶다. 3악장은 수, 목요일에나 써야 하겠다. 어떤 날도 모두에게 잘 버무려지는 음악처럼 한주를 살고 한주의 글을 쓰려고 한다. 늘 낭만적인 감성수필을 쓰고 싶지만, 바로크를 알아야 낭만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상징주의를 이해하게 된다. 월요일을 쓸 수 있어야만 토요일, 일요일을 적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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