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1프로만 살아남지 않는다! 갈라치기 말라!
우리 사회는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절대다수 또는 과반의 다수가 내린 결정에 따라야 한다.
과반의 의견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용하게 몸을 사리고 또는 침묵의 지혜를 실천한다.
우리 사회는 상위 1프로%의 꿈을 꾸게 한다. 그들이 모든 파이를 독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들이 부럽고 그들처럼 되고 싶은 경쟁심, 질투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 사회는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 만큼 패자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잔혹한 분위기다. 그 시험 무대는 사회적 잣대에 의해 패자들에게 기회를 갖게 하지 않는다. 패자는 다시 시도할 수 있을지 용기조차 갖지 못한다. 패자 부활전은 정치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패자에게 기회를 주게 되면 그만큼 남은 파이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그렇게 '한 번 더'를 외치면서 파이가 커지기를 바란다.
오징어 게임의 법칙은
민주적인 다수결의 법칙으로 게임에 참가한다.
상위 1프로% 살아남는 사람들의 독식을 꿈꾸게 한다.
목숨까지 던져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져도 감수한다.
첫 번째 대안이 있다. 중간층, 중도층, 중산층을 꿈꾸는 것이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다수결의 결정보다 합리적인 결정과 의견을 가지는 것이다. 이들은 보통 정치적인 여론조사에서 결정 보류층에 속한다. 오징어 게임의 문제는 O 아니면 X 중에 하나를 표식화하여 심지어 가슴에 달고 갈라치기 한다. O X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설자리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갈라치기에 속하지 않는 중간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이 O와 X 사이에서 균형추가 된다. 그들은 O와 X 사이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세상은 극단이 아니고 중도에서 균형추가 되어 밸런스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상위 1프로%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함을 우리 모두 인지하고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목숨을 걸고 승부사적으로 노력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도 상위 1프로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들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도 감수한다.
상위 1%가 되기 위해서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시키거나 기만할 수도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상위 1%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상위 1%의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 SNS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계속해서 기사 속의 이미지를 생성하려고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인 우리가 행복한 것은 그저 중도층에 속해 있으면 족하다. 세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그들 상위 1프로를 여유있게 관망한다. 오히려 나의 편안한 자리를 부담 없이 유지하는 것에도 충분히 만족한다. 나보다 못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상위 1%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만의 리그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중간층, 중도층의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된다.
우리의 삶은 소중하다. 이 삶을 죽음에 몰아넣는 삶의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징어 게임은 그런 불편한 시선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 물론 작품의 의도는 오징어 게임의 처절한 선택에서 건전한 판단, 행복한 삶을 제대로 발견하게 되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다. 왜 돈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는지 우리는 이해불가다. 극한 상황에서도 건전한 판단을 가지라는 것이다. 빚을 져가면서 살아야 했던 그들의 절박한 삶에서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묻게 되는 것이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소박하게 살지만, 마음의 양식은 풍부하고 풍요롭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살 수는 없는지 행복의 관점을 갖는 것은 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삶을 절대 죽음과 함부로 바꿀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행하게도 오징어 게임 2에서 인간성을 자극하고 눈물샘을 누르는 장면들이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께 미안하여 고민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식, 돈때문에 사랑에 등한시한 것을 후회하면서 돌아보는 남녀, 친구에게 우정 어린 조언을 하고, 또 죽음 끝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끼리 우정을 나누는 모습,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는 사람들... 이러한 캐릭터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대목들이다. 극한 상황에서 게임이 목적이 아니고,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꼭 우리 삶의 단면이기에 오징어 게임을 감상하게 된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즐기던 놀이도 어른이 되어 생존하기 위해서 승부를 펼쳐야 하는 게임과 유사한 것을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짝짓기에서 실패한 참가자들의 죽음으로 깨달아가는 것이 애처롭게 보인다.
또 다른 대안 혁명을 오징어 게임 2에서 보여준다. 오징어 게임 1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결행이다.
혁명의 주역, 주인공 성기훈이 중심이 되어 오징어 게임의 저격수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게임의 관리자들을 퇴치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혁명을 일으켰다.
시리즈 2가 끝난 오징어 게임에서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다.
게임의 법칙을 참가자들이 바꾸려고 한 시도는 그 자체로 분명히 대단한 위업이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 3를 기다려지게 만들면서 심각한 여운을 남겼다.
혁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들 모두 패자가 되어 영원히 부활하지 못하고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지 모른다. 아직은 성기훈이 살아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기대해 본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희생하였기에 어제보다 내일 몇 걸음 더 전진하게 된다. 오늘 비록 그 전진의 행보를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혁명, 혁신의 길을 가야만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고인물은 썪는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내일은 반드시 달라져야만 한다.
<시사 문화 칼럼 지난번도 함께 읽어주셔요 :>
https://blog.naver.com/seolhon/223711433323
<시사 문화칼럼>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리즈 2의 철학, 게임의 법칙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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