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탄생, 번영 역사 아우구스투스 황제까지!,
고대 로마의 기원은 로물루스로부터 나온다.
일반적으로 로물루스의 로마 건국 연도는 기원전 753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리스 역사의 시작점인 첫 올림피아 제전이 열렸던 기원전 776년과 비슷한 시점이다
그는 이웃나라의 침략으로 부족한 여성들을 소위 성폭행으로 나라의 인구를 늘렸고, 전투로 주변을 정복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아기에 버려지고 살아남은 것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야성적인 성장기를 가졌다는 것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네이아스를 로마의 조상으로 꼽고 서사시를 적었다. 그 시대는 기원전 13세기였다. 그로부터 수 세기가 흘러 로마제국의 시조로 로물로스를 이야기한다. 그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함께 살아남았던 형제, 레무스를 죽인 왕이기도 하다.
그 후 로마 제국은 이탈리아반도 전체로 영토를 확장한다.
로마의 정복 전쟁의 DNA는 3300명의 로마 군대의 강력한 조직에도 있지만,
로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지도자들의 정복전쟁과 죽음의 명예로 확장될 수 있었다.
로마의 고대사에서 에투리아인에 대한 로마의 정복에 대하여 로마의 역사서에 그려진 이야기는 로마의 다른 DNA이다. 군사력만 우세하였던 로마가 그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세한 에투리아인에 의해서 세련되게 문화 발전이 된 것이란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에투리아인들의 영향으로 로마는 상업이 발전하고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제국의 DNA가 생기게 된 것이다.
로마 트레비 분수의 조각상
기원전 로마 제국은 공화정이었다. 공화정의 뿌리인 원로원, 시민참여의 정신이 로마를 강성하게 하였다. 제정시대 이전에도 왕국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기원전 로마 창건 당시 제사장의 역할을 겸한 왕의 역할이 처음부터 강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사권을 가지고 외교와 전투를 책임지던 공화정 이전의 로마 왕들은 그 권력이 강건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원로원들을 압도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는 공화정으로 바뀌게 된다. 원로원들의 힘이 왕권을 압도하게 된 시기가 제정시대 이전까지 이어졌다. 기원전 로마는 공화정, 원로원들의 권력이 시민들의 권력과 함께 왕권을 압박하는 정치체계를 운영하였다. 그로부터 로마는 신중하게 주변 국가들의 흥망을 관찰하고 경쟁하면서 힘을 키웠다. 로마 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원로원과 왕권과의 적절한 견제로 행정 권력이 로마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방향성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와 마케도니아 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제2차 포에니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215년부터 기원전 148년에 벌어진 2차 피드나 전투를 마지막으로 로마 공화국과 마케도니아 왕국이 벌인 여러 차례의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는 몰락하고 로마는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고 동방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리스의 모든 국가들도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셰익스피어까지 발굴하였던 클레오파트라의 스토리를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아우구수투스)의 최종 경합에서 안토니우스는 패배하고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집트 마지막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기원전 30년)
이는 다시 기원전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4년까지 재위하였던 아우구수투스 황제로부터 제정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로마는 강성한 300여년을 유지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진정한 로마 제국의 1인 황제 시대를 열었다.
로마의 포름에서 촬영한 사진
이태리 로마를 여행하면서 로마가 강성해진 이유들을 묻게 된다.
로마제국의 성장과 발전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강력한 군사력이었다. 로마 제국은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영토를 정복하고 군사적인 우위를 확보했다. 로마 군단의 편제와 로마 군단의 강력한 지도력이 이민족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강성한 제국 영토의 수호자들이었다.
>백인대장
- 100명의 군사를 이끄는 장교이다.
>하스타티, 프린키페스, 트리아리
- 각 3개의 전열로 이루어진 로마군단의 핵심 전투 부대이다. 하스타티는 경보병, 프린키페스는 중보병, 트리아리는 중장보병으로 이루어졌다.
>레베스
- 하스타티에 소속된 보조 부대로서, 투창을 담당했다.
>기병대
- 로마군의 주력 병종 중 하나로서, 다양한 종류의 기병대가 존재했다.
>공성부대
- 로마군의 공성전을 담당하는 특수 부대이다.
로마군의 전술은 다중 안전 시스템으로 첫 번째 전열이 무너지면 뒤에 있는 전열이 대신하여 싸우는 방식으로 강력한 공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로마의 효율적인 행정 체계였다. 로마제국은 광범위한 영토를 다루기 위해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로마는 지방 행정을 위한 다양한 체계를 도입하여 효율적인 세금 걷기와 통치를 실현했으며, 이를 통해 제국의 안정과 번영을 유지했다. 그 넓은 로마 제국의 속주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였던 행정 능력은 속주들의 지도력이 중요하고 속주들의 시민들이 인정하는 지도력은 이후 로마제국 전체의 지도자로 인정받는 경력으로 인정되었다.
로마는 다양한 지방의 문화와 관행을 수용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역 간의 화합을 촉진했다. 로마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공공 시설의 건설과 기반 시설의 발전이었다. 로마는 다양한 도로, 다리, 수도원, 경기장 등의 공공시설을 건설하여 제국 전체를 연결하고 발전시켰다.
로마 제국 곳곳에 원형 경기장을 세웠다.
<링크 안에서 원형경기장 동영상 보셔요>
https://blog.naver.com/seolhon/223641006930
원형경기장 Q&A 한 장 정리, <인문학 여행기> 현지답사 로마의 콜로세움 역사, 오징어게임, 글레디에이터 검투사
로마의 콜로세움의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라고 한다....
blog.naver.com
<판테온 건물 입구에서 직접 촬영함.>
판테온(Pantheon)은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마르쿠스 아그리파에 의해 의뢰되었으며 처음에는 기원전 27∼25년 사이에 지어졌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는 원래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후 서기 126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재건축한 결과이다.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모든 신에게 바쳐진 사원과 나중에는 가톨릭교회를 포함하여 역사를 통해 다양한 목적을 수행했다.
판테온의 건축 디자인은 로마 공학의 숙달과 웅장함을 반영하며, 로마의 과거 영광의 상징적 상징이자 전 세계 방문객들에게 계속해서 경외와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건축물이다. 특히, 판테온의 돔은 직경이 43.3미터(142피트)인 세계에서 가장 큰 비강화 콘크리트 돔으로 당시 지어진 다른 어떤 돔보다 구조물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공학의 놀라운 위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과사전 인용)
판테온 건물을 공부하였던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의 숙제, 두오모 성당을 완공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호프맨작가의 <인문학 여행기> 두오모 성당의 다음번 이야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로마제국의 탄생, 번영 역사 아우구스투스 황제까지!, 고대 로마의 정복 전투력 DNA, 행정력|작성자 호프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