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쇠락의 길
갑갑함을 느끼던 노인은 제국 행정의 고삐를 다시 손에 틀어쥐자고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호소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불쌍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 호소를 물리쳤다. “당신에게 살로나에서 내 손으로 직접 심은 양배추를 보여줄 수 있다면, 당신은 즐거운 행복을 마다하고 권력을 다시 잡겠다는 생각을 버릴 텐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모든 기술 중에서 통치의 어려움을...
-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은 왜 쇠퇴와 붕괴하였을까? 이 질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답변을 찾아보았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1에도 등장하는 코모두스(180-192)의 타락과 무능은 로마 황제들의 황금기를 실망스러운 종말로 몰고 갔습니다. 그가 신하들의 손에 죽은 것은 또 다른 내전의 시기를 촉발했고, 루시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3-211)가 승리했습니다. 3세기에 로마는 거의 끊임없는 갈등의 순환을 겪었습니다. 총 22명의 황제가 왕위를 차지했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그들을 권력으로 이끈 같은 병사들의 손에 폭력적인 최후를 맞았지요. 한편, 외부의 위협이 제국을 괴롭혔고, 게르만족과 파르티아인의 계속된 침략과 에게해를 가로지르는 고트족의 습격을 포함하여 제국의 부가 고갈되었습니다. 20여명의 군인황제들이 서로를 죽이면서 난립을 한 그 시대가 로마의 쇠락을 가져왔습니다. 그 시기에 오로지 1명의 군인황제가 암살과 살해에서 살아남았던 기록은 충격적입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2가 다시 한번 이 험악한 로마 쇠락 시기를 그린 배경으로 왜 로마제국은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로마의 유적지 현지답사를 통해서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강건한 로마제국의 건축물도
이끼 낀 유적지로 남아서 질문을 던집니다. "왜 로마제국은 쇠락하였는가?"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의 통치는 로마에 일시적으로 평화와 번영을 회복시켰지만, 제국의 통일에 큰 비용을 치렀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권력을 소위 4인 통치(4인 통치)로 나누어, 막시미아누스와 아우구스투스(황제)라는 칭호를 공유했습니다.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라는 두 장군이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의 보좌관이자 후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갈레리우스는 동로마 제국을 통치했고, 막시미아누스와 콘스탄티우스는 서로마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쇠락하는 로마를 잠시 부활시켰습니다. 어쩌면 군인 황제 시절 로마는 이미 운명을 맞이하고 멸망하게 되었지만, 그는 로마의 숨통을 연장시키는 명군으로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는 평민 출신으로 황제에 오른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로마 제국의 오현제 이후 마지막 철학가로서의 황제를 생각하면서 후세 황제에게 선위, 선양을 하고 생전에 은퇴한 최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에서 언제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일했고 이를 위해 제국을 권력을 분할 통치하는 효율성을 위해서 노력하였고, 끝내 살아있는 권력이 은퇴를 하고 평범한 노인으로 생을 마감하였던 황제는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한 명뿐이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가 퇴임한 후 이 체제의 안정성은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콘스탄티우스의 아들)는 324년 재통일된 로마의 유일한 황제로서 이어지는 권력 투쟁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로마 수도를 그리스 도시 비잔티움으로 옮겼고, 그 이름을 콘스탄티플로 바꾸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한때 모호한 유대교 종파)를 로마의 공식 종교로 삼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치하의 로마 통일은 환상으로 판명되었고, 그의 죽음으로부터 30년 후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은 다시 분열되었습니다. 페르시아 군대와의 전투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제국(나중에 비잔틴 제국으로 알려짐 )은 수 세기 동안 대체로 온전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서방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는데, 제국은 내부 갈등과 해외의 위협, 특히 반달족( 로마를 약탈한 데서 "반달리즘"이라는 문구가 유래됨)의 위협에 시달렸고, 끊임없는 전쟁으로 꾸준히 명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로마 제국 멸망의 원인은 로마 군대를 다스릴 수도 강성하게 유지할 수도 없었던 겁니다. 로마는 결국 부풀어 오른 제국의 무게에 무너져 속주를 하나씩 잃었습니다. 속주들의 땅에서 일어난 이민족들은 로마 군대를 패퇴시켰습니다. 410년경에는 영국을 잃었고, 430년에는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를 잃었습니다. 아틸라와 그의 잔혹한 훈족은 450년경에 갈리아와 이탈리아를 침략하여 제국의 기반을 더욱 흔들었습니다. 476년 9월, 오도바카르라는 게르만족의 왕자가 이탈리아에서 로마 군대를 장악했습니다. 마지막 서방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폐위한 후, 오도바카르의 군대는 그를 이탈리아의 왕으로 선포하여 고대 로마의 길고 격동적인 역사에 비참한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로마 제국의 몰락이 완료되었습니다.
강성했던 로마제국의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과 로마 포름의 벽면의 반쪽 남은 유적지는
저에게 이렇게 답을 하는 것 같습니다.
"로마 제국의 길로 모두가 들어왔고 나갔다. 속주들을 연결하던 그 길이 영원히 이어질 수 없었다.
로마 제국은 번영하는 길을 알았으나, 쇠락하는 길을 막을 수 없어 끊기고 말았다.
제국을 통치하고 소통하던 그 연결의 길들이 나누어지고 분열되었기에 로마 제국은 멸망했다."
로마제국 (기원전 27년 ~ 서기 330년 멸망) : 기원전 27년부터 황제가 다스리게 됨.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 (330–1453년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