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의 시대적 고찰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분명히 그 당시 시대적으로 앞서나간 위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부분이 부합하지 않는다. 인문학적으로 그의 지식의 풍부함을 통해서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행적을 만나는 것이 기쁨이다. 하지만 오늘날 평화로운 외교관계,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지도자들에게 맞지 않다. 마키아벨리즘은 확실히 히틀러 같은 전쟁광들을 위한 서적이리라 치부될 수 있다.
우선 <군주론>은 이탈리아 도시 공화국들의 통일과 강대국으로 부활하기를 원하는 충정에서 집필되었다.
이탈리아가 오랜 세월 동안 고대했던 구원자를 볼 수 있도록 (중략)
외세의 침입으로 고통을 겪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 구원자를
얼마나 큰 사랑으로 맞이할지.. (중략)
<군주론> 중에서
그가 군주의 모델로 삼은 체사레 보르지아를 흠모하였다는 것을 군주론에서 드러난다.
체사레 보르지아(1475~1507)가 한때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건축가, 군사기술 전문가로 채용한 것으로 볼 때, 분명히 보르지아는 인재 기용에 특별한 안목이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정적을 잔혹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등 논란의 인물이기도 하였다.
마키아벨리는 특히 체사레의 두 가지 무용담은 마키아벨리에게 매우 큰 인상을 남겼다. 첫 번째 무용담은 체사레가 로마냐를 진압한 과정으로 《군주론》의 제17장에 기술하였으며, 두 번째 무용담은 1503년 새해의 밤에 체사레가 세니 갈리아에서 자신의 정적들을 암살한 이야기이다.
보르자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찬사는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있다. 어떤 학자들은 《군주론》이 20세기 정치범죄의 선구자 노릇을 했다고 주장하며, 맥컬리와 액턴을 포함한 다른 학자들은 시간에 따른 타락과 일반적인 범죄의 영향과 같은 폭력에 대한 찬사를 설명하기도 한다.
과연 오늘날 그의 저술 작품 <군주론>이 적용될 수 있을지 살펴보았다.
"인간이란 자기를 지켜 주지 않거나 잘못을 바로잡을 힘이 없는 자에게는 충성을 바칠 수 없는 존재이다."
한때 지도자로 받들던 사람들도 리더가 돌이킬 수 없는 탄핵의 대상이 된 경우 그의 곁에서 떠나게 되는 경우는 당연한 세상 이치다. 이점에서 마키아벨레의 군주론의 문장들은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확실하게 적용된다. 국민들에게도 국민을 지켜주거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없는 지도자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여론이고 민심이다.
* "군주가 나라를 얻고 유지하면, 그의 수단은 언제나 명예롭다는 평가를 받고, 그는 모두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민중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일의 결과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군주가 너무 인자한 태도를 보이면 방종을 허락하여 살인과 강도가 발생하도록 방치하게 된다. 따라서 아주 조금이지만 잔혹함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더 자비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너무 인자한 태도를 보이면 대중 전체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중략)"
(마키아벨리즘의 핵심적 금언처럼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에 해당한다.)
나는 이 점에서 반마키아벨리즘을 옹호한다!
이점은 참으로 역설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떠한 간악한 수단이라도 지도자로 선출되기 위한 것이고 또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서 명예와 권위를 얻게 된 후에는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보통 정치인들의 선거 조작, 여론조작, 여론의 호도 및 선동으로 자주 수단화되는 현상이다. 이를 통해서 정치가로 정점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찬사를 받고 과거의 잘못이 덮어지게 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왜냐하면 민중들은 결과로 보이는 성과물 - 예를 들면 선거 승리, 권력 획득자에게 끌리기 때문이다. 이 또한 권력자들이 흔히 악용하는 수단들이다. 나는 이 점에서 반마키아벨리즘을 옹호한다!
거론 안 해도 알만한 당의 지도자가 저지른 악행들 비리들도 그가 권력을 획득하면 묻히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는 정치가들도 민중들도 마키아벨리즘에 동의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지도자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고 잘못을 정의롭고 공평하게 바로잡지 못하면 민중은 언제든 돌아선다.
체사르 보르지아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할 정도로 출중한 정치가, 군사전략가의 지도력을 보여줄 때 마키아벨리는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니체까지도 위버멘쉬의 일부 모델로 체사르를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보르지아는 너무도 짧은 불행하고 실패한 인생으로 마감되었다. 보르지아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교황 알렉산드레 6세가 선종하고 그의 정적이었던 교황 율리오 2세가 등극하면서 몰락하였다. 심지어 율리오 2세 휘하의 사람들은 체사레를 모함하였고 결국 체사레는 산탄젤로 성의 지하 교도소에 투옥되었다.
1504에 스페인으로 추방당한 체사레는 그곳의 포로로 전락하였다. 메디나 델 캄포의 모타 성에 갇혀 지낸 지 2년 만에 탈출 길가에 묻었다. 그러나 2007년 스페인의 한 대주교가 시청에 있는 그의 무덤을 교회로 이장하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처남 장 2세 달브레 백작, 카탈리나 여왕 부부의 나바라 왕국으로 도주하였다. 그러나 1507년 체사레는 비아나 포위 공격 때 수많은 자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사후 스페인 북부 비아나 지역의 산타 마리아 성당에 묻혔지만, 죄인을 묻을 수 없다는 교회의 반발로 무덤을 파헤치고 유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불꽃같은 인생으로 불꽃처럼 사그라들었다.
개인적으로 체사레의 업적 중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군사 고문으로 활용하고 그의 역량을 꽃피우게 해준 것은 다빈치를 공경하는 사람으로서 고맙기 그지없다. 다빈치는 체사르의 후원으로 그의 천재성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다. 다빈치는 체사르의 후원을 승인받기 위해서 심지어 종합 예술 음악 감독으로 데뷔하게도 된다. 체사르의 인재 등용 역량은 확실히 인정할 만하다.
마키아벨리즘의 곡해와 체사레의 멸망은 꼭 대한민국 한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오늘날의 사건들과 중첩되지 않을 수 없다. 역설적으로 갈라 치기,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새로운 유능하고 도덕적인 지도자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도 되겠다. 좋은 지도자를 위한 마키아벨리의 순수한 인문학적 교훈을 새롭게 다른 시각으로 취해야 할 부분은 취해야 할 일이다. 이점은 진보, 보수 모두에게 해당되는 지점이다.
정치인 리더에게 민중 국민의 믿음과 지지 없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권력욕을 앞세워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면 아무리 좋은 수단도 부패로 보이게 되어있다. 국가의 지도자는 흠결이 없어야 한다. 실망을 안겨주는 지도자는 도덕적으로도 부패가 노출되면 지도자의 자리에게 버텨낼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새로운 리더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정치의 속성이며 정치가의 운명이다. 이런 지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주장 중에 일부는 오늘날에도 진보, 보수 모두에게 적용되니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