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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전쟁의 파편들 마지막 문장들! 북한군포로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 상황


데미안을 읽으면 끊임없이 '카인의 표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아프락삭스의 신' 이야기들을 전개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전쟁 속에 주인공도 쉽게 무너지는 파편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무너지는데, 세상에 무슨 의미가 공존할 수 있을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의 광기를 소설의 클라이맥스로 적은 소설이다. 복잡한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성장 스토리는 결국 전쟁의 무대에서 엔딩이 그려진다. 세계가 내 위에서 무너지는 주인공의 고백이 말해주는 메시지다.






그 별들 가운데 하나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내게 쏜살같이 똑바로 날라왔다.


마치 나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것은 굉음을 내며 수없이 많은 불꽃으로


작렬했고 나를 솟구쳐 울렸다가 다시 땅으로


내동댕이쳤다.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세계가 내 위에 무너져 내렸다.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 중에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싱클레어 주인공은 전장터에서 포탄이 터지는 곳에서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느낀다. 데미안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이 전쟁터였다. 그곳에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고통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나를 찾고 지키는 것조차 어렵다. 살아있는 육신을 지키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을 전쟁터의 광기 속에서 마무리하였을까?






붕대를 감은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 역시


내게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열쇠를 발견했고,


때때로 어두운 거울 속,


운명의 형상이 잠들어 있는 그곳,


나 자신의 내면에 완전히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에서






헤르만 헤세는 1차 세계대전의 파괴적 전쟁의 참상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절망하지 말고 자신을 찾으라고 조언한 것으로 이 데미안을 마무리하였다. <데미안>작품의 엔딩은 세상의 광기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고 삶의 열쇠를 발견하기를 요구하였다.



헤르만 헤세는 전쟁에 참전하는 젊은이들을 염려하는 글을 많이 썼다.


https://blog.naver.com/seolhon/223602755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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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세계 평화를 위하여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젊은 벗들이여, 내가 그 고통에 대해서 약간의 의심을 품고, 그것을 믿는다 하더라도 시간이 걸리고, 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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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의 이야기를 하겠다. 전쟁발발 4년째인 우크라이나가 종전으로 가는 국면은 환영한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패싱이 안타까운 결말이지만, 세계는 종전을 원하고 있다.


더군다나 북한군의 젊은이들이 희생당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군 젊은이들, 그들은 전쟁터로 간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는 보안요원들에 의해서 남한의 한국군과 교전한다고 세뇌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야말도 자신에 대한 주체성은 하나도 없이 북한괴뢰정부의 사상이 주입된 젊은이들이 북한군이다. 21세기 SNS가 전 세계와 소통하는 시대, 유일하게 단절된 국가, 북한의 젊은이들이다. 하나의 민족으로서 얼마나 통탄을 금할 수 없는지 안타깝다. 헤르만 헤세에 무덤에서 뛰쳐나와서 전쟁의 광기를 호소할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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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북한국 포로 (연합뉴스 2월 19일)










그는 10월 초 북한을 떠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훈련하다 12월 중순 우크라이나군과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는 쿠르스크에 이송됐다. 러시아에 오기 3개월 전부터 집과 연락할 수 없어 부모님도 파병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리씨는 '무슨 이야기를 듣고 러시아에 왔느냐'는 질문에 "유학생으로 훈련한다고, 전투에 참가할 줄은 몰랐다"라며


쿠르스크에 도착한 뒤에야 전투 참여 사실을 알게 됐고 지난달 5일부터 전장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인용, 2월19일자>






오늘날 전면전 전쟁은 지구촌 인간 인류말살로 가는 길이다. 북한의 미친 지도자라는 사람의 광기에 북한군 젊은이들이 전쟁의 광기에 동원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도자 공백으로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아프락삭스같은 세상이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되면 많은 것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이 글을 쓴다. 나의 희망은 세계 평화이고 자유로운 왕래와 소통으로 세계인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강대국의 논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평화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푸틴과 트럼프가 어떠한 합의를 하든 종전이 답이다,라고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 전 많은 러시아 젊은 장교들이 나폴레옹을 존경하는 인물로 상상하였다. 실제로 그들이 전쟁의 참상으로 통해서 겪은 체험은 처참한 상상의 파편들이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전쟁의 참상에서 자신을 되찾는 열쇠를 쥐게 된 것처럼 우리는 평화를 갈망하고 평화를 지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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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로 잡힌 리씨. 북한군 포로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갈무리) 2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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