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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Feb 28. 2024

뜨거운 감자 의사 파업 집단 사태 의사 없어요? 

스토아철학 마르쿠스황제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필요한 시대 


 2024년 3월 봄이다. 하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더 많은 걱정이 온 세상에 차고 넘친다. 국내적으로 극단적인 갈등이 서로 양보, 타협하지 않는 관계로 번져서 국민들만 골병들고 있다.  의사 파업 집단 사태를 보면서 '의사 없어요?' 울부짖는 사회를 만나면서 


스토아 철학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그 조언들이 울림이 된다. 특히 '사회적 의무'와 '공동의 이익'에 대하여 스토아 철학가들의 울림 있는 삶의 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 정치적으로 극한 사태까지 몰고 가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저버린 의사들과의 첨예한 대립으로 치닫는다.    


코로나로 걱정이 끝나니, 세계경제침체로 걱정, 전쟁과 독재자들로 걱정, 세상은 걱정투성이다. 


싸구려 보석으로 인생을 망친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아시지요? 

혹시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된답니다.

허상을  쫓다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개인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경제력,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건강한 삶에 대한 걱정 등으로 우리는 늘 불안해 휩싸여서 산다. 그것도 개인이 해결될 수 있는 것, 확실한 것이 아닌 것들이 대부분인데도 걱정하고야 마는 것이 일상이다. 그럼에도 눈을 감을 수도 없고 귀를 닫을 수도 없기에 걱정은 외부, 내부 사방으로 만연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믿어본다.  


의사들도 환자들도 걱정투성이다. 사상 초유 의료대란 의사들의 집단 파업까지 이어가는 그들의 걱정은 더욱 비현실적이다. 그들의 이기적인 부와 명성이 헛된 것임을 왜 지각하지 않는가? 오호라 통제라! 스토아 철학가들이 무덤에서 일어나서 소리칠 것 같다. 집단 지성의 힘은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물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걱정보다 큰 비전을 세우고 실행계획을 준비한다. 걱정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되는 밝은 앞길을 위한 준비들을 실현해갈 때 소소한 걱정들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걱정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기원 전후부터 스토아학파의 영향은 뜬구름 잡는 철학가들과는 다른 현실적인 철학이었다. 스토아학파들의 인물들에서 또 스토아학파의 영향을 받은 어록들에서 걱정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정말 그렇게 현실이 치유되고 집단 지성이 발휘되었으면 좋겠다.  



금욕주의를 강조한 스토아 철학가들은 이렇게 얘기하였다. "나는 가난과 질병이라는 시련의 절정을 경험해 봤다. 사람들이 내게 (우리 모두에게 닥치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왔느냐고 물으면, 난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어제를 견뎌 냈어요. 오늘도 견딜 수 있죠. 그리고 스스로에게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행복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의지를 넘어선 일에 대해서는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걱정할 시간에 평정심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함을 로마제국의 마르쿠스는 그의 인생,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않고,


가진 것에 크게 기뻐하는 자야말로


현명한 자다.






에픽테토스의 "수업론"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현재에 집중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인생 전체를 놓고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라. 그대가 짊어져야 할 것처럼 보이는 부담들의 성격과 숫자를 한눈에 다 파악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보다는 오히려 현재 각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라. “내가 이 문제에서 참고 견딜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솔직히 고백하다 보면 오히려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과거나 미래는 나를 짓누를 수 없고 오직 현재만이 그럴 수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현재를 구별해 경계를 나눈 뒤에, 이마저도 견딜 수 없는지 스스로 마음에 묻는다면, 분명히 그 현재는 더욱 작아질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글에서  


스토아학파의 철인으로서 로마제국 5현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마르쿠스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였다. 

그는 황제의 의무에 충실하여 그가 직접 전장을 누비면서 로마를 수호하였다. 

그는 전쟁터에서 피로하고 힘들다고 하였지만, 그의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고 덕을 실천하였다. 


로마의 마지막 전성기를 지키느라 전쟁터의 천막에서 주로 생활했던 아우렐리우스는 존귀한 위치에서도  모든 이들에게 매우 도덕적이고 매력적인 위인이었다. 카이사르처럼 위대해지려고 하지도 않았고, 하드리아누스처럼 격조 있는 황제가 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안토니우스처럼 멋지게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평생 전쟁터의 천막에서 생활하면서도 <명상록>을 집필하면서 그의 의무를 다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도 전쟁터 한복판이었다. 


우리 시대에 의사들에게 그러한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환자들을 지켜내려는 전쟁터를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명상록>을 집필하라는 요구도 아니다. 

다만, 환자들을 위한 최후의 수호자가 되어달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환자들은 누구를 믿고 의지하여야 하겠는가? 의사는 존귀한 존재이지 않은가!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재위 161~180)로 5현제(賢帝)의 마지막 황제이며 후기 스토아파의 철학자로 《명상록》을 남겼다. 당시 경제적·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페스트의 유행으로 제국이 피폐하여 그가 죽은 후 로마제국은 쇠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Antoninu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삶의 철학이 균형 잡힌 지도자들이 많은 사회와 국가는 쇠퇴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오늘날 현대 국가들의 사회 이슈들의 원인들에서 개인을 위한 이기적인 철학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좋은 철학이 결핍된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스토아의 철학 - 좋은 삶의 철학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 시대의 현실이다. 




헬레니즘 문화에서 탄생한 스토아철학은 신플라톤 학파를 비롯한 고대 말 철학 사상들을 자극했으며, 로마제국의 정치적 역사적 상황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했다. 스토아철학자들 일부가 기독교에 반감을 보였음에도 그들의 금욕과 인류애는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도 반복적으로 회자되었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시대에는 기독교와 스토아철학과의 화합을 모색하는 ‘신 스토아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스피노자, 칸트, 괴테와 같은 17~19세기 지식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는 언어학과 논리학의 관점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토아학파 [Stoicism]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스토아학파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 중 하나로, 내적 평온과 평정을 추구하는 철학 학파이다. 


스토아학파의 욕망을 다스리는 집단 지성이 절실한 시대이다.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듯이 인생의 어려움도 찾아온다. 하지만 스토아는 그 파도를 받아들이고 그 위를 걷는 법을 가르친다. 우리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며 나아가야 한다.


세상은 불안과 변화로 가득하지만, 내면의 고요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깨닫는다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의 손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하며, 나머지는 우주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거부하면 그것은 삶에 대한 심각한 기만이다. 


걱정은 미래에 대한 과소평가다. 우리는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를 최선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집단 지성의 힘으로 걱정의 장애물을 거두고 미래를 향한 건강한 전진을 이루어야만 한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을 다하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은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가 이를 인정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된다.


그만큼 살아있을 때, 우리의 매 순간을 충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절대로 삶을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 된다. 나의 삶만큼이나 타인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다. 타인의 충동에 휩쓸려서 자신의 선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외부의 환경이나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내면의 평온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좀 더 배운 사람들이 그 책임을 다할 때, 사회도 평온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면의 평온과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고 나태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좋은 삶에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과 생각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선택에 신중히 대해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의무에 게을러지지 않는 것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덕이다. 


스토아학파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면의 고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원리들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또한 건강한 집단 이성에서 사회의 걱정과 불안을 자유롭게 해방시켜야 한다. 


스토아학파는 삶의 좋은 철학,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을 주저 없이 드러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괴로움을 치유하지 못하는 철학자의 말은 공허하다. 몸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의술이 쓸모없듯이 마음의 괴로움을 몰아내지 못하는 철학은 조금의 유익함도 없다."


이 말은 작금의 의사들에게도 또 우리 시대의 철학에게도 충심 어린 좋은 조언이다. 


이 시대의 의사들은 스토아 철학의 덕인 '용기, 절제, 이성, 자기규율 등'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전공의, 의사들의 사직, 집단행동들이 걱정이 된다. 한국 사회의 배운 사람들의 일탈에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잊어버린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삶의 좋은 철학을 잊어버리고 의사로서 환자를 위한 삶의 기본적인 덕목을 잊어버렸다. 의사들이여, 돌아오시길 바란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오로지 환자를 돕는 일에만 힘쓸 따름이고, 고의로 어떤 형태의 비행을 일삼거나 피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겠으며, 특히 노예든 자유민이든 신분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자이든 여자이든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환자의 신체를 능욕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내가 이 선서를 절대로 어기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 나간다면, 나는 내 일생 동안 나의 의술을 베풀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항상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어기고 약속을 저버린다면, 나의 운명은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중에서  


호프맨작가는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환자를 돌보는 의무는 절대 뜨거운 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성스러운 의무이고 이타적인 사랑이다. 이기적인 부를 쫓아서 판단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 

내 부모, 내 가족, 내 친구가 수술을 할 수가 없어서 죽을 수도 있는 사상 초유의 이기적인 집단 행위다. 


삶의 좋은 철학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사태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어서 그런 것이리라.   


스토아 학파의 부에 대한 생각을 옮겨본다.


"부를 누리는데 신중해야 한다. 내가 쌓은 부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한발 나아가, 부를 잃을 준비를 하며 지내야 한다. 자주 가난을 체험해야 한다. 또 부를 누리는 중에 자칫하면 자신의 품성이 망가질 수 있고, 삶을 즐기는 능력도 손상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사회적 의무를 선택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보았다.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사람,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과도 공동의 이익을 위해 교류해야 한다. 그렇지만 누구를 친구로 사귈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예컨대 타락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친구로 사귀지 말라고 했다. 그들의 타락한 가치관에 우리의 가치관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스토아철학의 가치관을 우리와 공유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특히, 나보다 스토아적 가치관을 더 잘 실천하며 사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며 배워야 한다." 


- <좋은 삶을 위한 안내서>, 윌리엄 B. 어빈


모두에게 공평한 봄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싶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 왼손으로는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아픈 사람들이 이 질곡의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른손으로는 의사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들이 마르쿠스의 공동체(국민과 국가)를 위한 의무와 히포크라테스의 숭고한 선서를 기억해 낼 수 있고 그들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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