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연암 박지원의 여행 vs 여행의 쓸모들

호프맨작가의 만 25년 여행


여행에 대하여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겠습니다. 블로그 이웃분들 중에 여행의 달인들이 많이 계시지만,


저도 해외살이 만 25년의 여행 인생도 짧지 않은 체험이었습니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작품들의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세계적인 작가답게 여행을 많이 소화하면서 그 일정 중에 흥미로운 글을 남겼습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이라는 책으로 엮어진 내용 중에 비행기 탑승 후 좌석에 놓인 인쇄물 중에 우스꽝스러운 상품들을 비평하는 글도 있지요.



움베르토 에코는 여행을 정말 다양한 에피소드를 얻는 기회로 삼았던 겁니다.


그의 여행기 에피소드는 항공기 안, 호텔 안, 작가 강연기, 미국인에 대한 평가 등등 다양하고 흥미롭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에는 "구매 욕구를 복 돋우는 실물 사진과 함께 통신판매 물품들을 나열해 놓은 책자" 안의 상품들을 재미나게 비평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항공기 안 좌석에는 여행의 쓸모를 활용하는 항공사들의 마케팅도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저는 관심이 없답니다. 그의 시대 항공여행에 오늘날 스카이 극장의 영상 기술이 도입되지 않았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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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관심있던 항공사의 물건 구매보다, 저는 오히려 항공기의 기내 서비스에서 최신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것에 열광하게 됩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구름 위에서 떠다니면서 감상하는 기분은 확실히 항공 시간을 단축하여 주는데 최고의 선택이 됩니다.



3,4월 항공기 여행중 감상한 영화들 <라이온킹2, 무파사>, <글레디에이터2>, <모하나2>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3월~4월 중 5개국 6개 도시의 출장 업무여행 3주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여행의 쓸모에 대하여 적어보았습니다.




하나, 여행하는 사람은 결코 편협한 생각이나 좁은 세상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결코 우리 동네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이동 이주하여 지금의 지구촌을 건설하였습니다. 신화적이지만, 아담과 이브 또한 에덴동산에서 파면당한 후로 그들의 자손들이 전 세계로 이주하게 된 겁니다.




우리는 결코 에덴동산의 편안함에 기대어 좁은 시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의 시야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바라보는 우물 밖 세상과도 비유될 겁니다.




세상을 호령하는 미국, 특히 극보수적인 미국인들 중에서 좁은 시야를 갖고 있는 미국인들은 모두 동네 바깥을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 있는 미국인들은 모두 아시아, 유럽 등을 여행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미국 바깥 세상을 접하지 못한 좁은 시야의 미국인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여행의 체험을 자신의 삶의 지혜로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책 읽기뿐만 아니라 체험을 통한 지식들이 지혜가 됩니다.



책에서 얻는 지식은 이성과 지성을 작동시킨답니다. 분명히 인류의 수천 년, 수백 년의 정제된 보물같은


지식들이 책에 축적되어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간접 체험을 책 읽기를 통해 얻게 되고 그것으로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기도 한 것을 축복입니다.



다른 한편, 체험으로 삶의 지혜를 얻어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령,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평생 여행으로 단련된 인물이지만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체험을 통해서 살아남는 것에 또 삶을 즐기는 길에서 지혜롭게 되었습니다.



여행에서 만나는 직접 경험의 지혜들을 갖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지혜들은 몸으로 익힌 것이랍니다. 정신과 몸을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또한 좋은 지혜의 그릇을 담게 해준답니다. 여행의 체험은 이국적인 문화와 지식들을 통해서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인식을 하게 된답니다. 그 인식은 자신과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고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경험입니다.




셋, 낯선 곳에서 타인도 나도 새롭게 만납니다.



스스로의 나에게 지쳤던 사람들, 타인에게 지쳤던 사람들, 모두 여행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번에 만난 인연의 사람들 중에서도 대만 사람과의 특별한 시공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나보다 4년 위의 연배였고 업계 10년 선배였습니다. 대만 사람으로서 업계에 40년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습니다. 바이어 입장에 서있는 나와 공급업체 입장에 선 대만 사람이 역전이 된 술자리였습니다.



자기를 형이라고 인정하라는 중국 문화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던 인간적인 관계를 맺었지요. 그리고 선물공세를 하였지만 적당한 과자 종류만 억지로 받았습니다. 대만 사람들의 로비를 잘 알고 있었는데, 역시 대단한 역량을 발휘하는 모습에서 한국인들의 부족한 영업 역량을 배우게 되었답니다. 심지어 대만의 본사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선물을 보내주려는 부담스러움을 보여주는데 거절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 대만 총경리의 의도는 단가를 올리려는데 어려운 협상이 있었고, 결국 중간에서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오히려 부인의 맛깔스러운 반찬으로 술안주를 하였던 인간적인 친근함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외국인과의 인간관계가 여행을 특별하게 하고 지구촌이라는 것이 실감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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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새로운 여행지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글을 쓰는 작가에게 새로운 여행지는 큰 영감이 됩니다.


새로운 여행지 발걸음마다 글감이 쏟아집니다. 새로운 생각들이 이동 중에 글을 쓰게 만듭니다.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에서 그 특유의 천재적인 유머 감각으로 청나라의 현지의 경험들을 맛깔스러운 여행기로 녹여내신 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행 중에 접하는 문화적인 이색 풍경들이 글을 적어가는데 커다란 영감을 주게 됩니다. 이국적인 문화적 충격과 풍경 - 이들을 놓치지 않고 메모하면 좋은 글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섯, 집으로 돌아가는 만선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노인의 극적인 사투를 벌이다가 돌아가는 집의 바닷길에서, 마침내 만난 집의 등불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긴 여행일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반갑고 기쁩니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한 업무차 여행일수록 만선의 선장이 된듯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갑니다. 여행의 출발에서 겪는 설렘보다, 여행의 종착점에서 복귀하는 집으로의 길, 그 길의 보람으로 성장합니다. 마침내 도착한 집은 이보다 더욱 기쁠 수가 없지요. 집이 있기에 출발할 수 있고, 집에 돌아올 수 있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가족들과 애정 어린 존재들이 있음에 감사하게 살아갑니다. 여행은 돌아갈 집과 떼어낼 수 없는 애정의 상관관계 그래프를 도식화할 수 있습니다.







만선의 기쁨으로 집에 도착 : 여행의 쓸모


= 성장하는 인생 x 여행의 품질 x 집으로부터 여행의 거리, 공간, 체류의 경험


x 여행의 글감 +++ x 깨닫고 배우는 모든 체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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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돌아갈 집이 있기에, 떠나는 순간만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기쁨입니다.


집으로 도착하는 순간, 세상 구경은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 됩니다.


돌아갈 집이 없었다면 여행이란 것이 목적지, 귀환 없이 그저 정처없는 방랑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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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라가는 순간, 저는 새벽에 도착한 나트랑의 바닷가에서, 5월1일 새벽까지 휴일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드디어 몇달만에 그토록 그립던 바다를 만나는 숭고한 시간을 만끽하겠습니다.



1박 하루 반나절의 짧은 여행 바다에서 많이 느끼고 생각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베트남의 일터에서 5월 한달은 5월1일을 끝으로 더 이상 휴일이 없지만, 이틀간 짧고도 강렬하게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일상에서 일에 파묻힐 겁니다. 일상 속에서 가을의 새로운 여행을 꿈꾸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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