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덱스 다빈치 노트 모나리자의 비밀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 세계에서 뽑은 가장 창조적인 인간으로 언제나 1위에 오른다.
그것도 가장 오래전에 살았던 인물인데도 오늘날 다윈, 아인슈타인, 뉴턴, 니콜라 테슬라, 셰익스피어 등을 제치고 인류의 역사를 바꾼 천재들, 가장 창조적인 인간으로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위인이다. 네이처 과학잡지에도 인류의 최고 창조적인 천재 1위에 다빈치가 등극하였다.
빌 게이츠는 이 다빈치의 유명한 코덱스를 347억에 구입하여 세상에 공개하게 된다.
인류가 왜 다빈치 노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식적으로 7~8000천 페이지에 이른다고 하는데, 전 세계에 흩어진 것을 모두 모으면 1만 3천 페이지에 이른다고 한다. 그 유명한 코덱스- 다빈치 노트의 끝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계속할 것이다." 그 안에 적힌 업적들을 인류가 발견하고 실현하려고 하였다면 인류는 250년 이상 과학적인 진보를 앞당겼다고 한다.
다빈치 노트
다빈치의 가장 큰 꿈은 "새처럼 날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새의 깃털을 해부하고 연구한 끝에 그보다는 박쥐의 날개를 활용하여 설계하였다. 세계 최초의 비행기를 설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낙하산을 설계한 그는 '제아무리 높은 곳에서 낙하하여도 문제없다'라고 그의 노트에 적었다. 그로부터 400년 후에 라이트 형제에 의해 비행기 발명이 이루어졌다.
다빈치는 그가 예술가 이상이었음을 그의 다빈치 노트를 통해서 증명하였다.
그는 예술가 - 화가, 조각가, 음악가였을 뿐만 아니라, 공학자, 건축가, 인체 해부연구, 과학자, 발명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넘쳐나는 천재였다. 무엇보다도 그 모두를 그의 노트에 기록하는 기록의 달인이었다. 인류의 유산을 기록한 것이다.
조르조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하면서,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재능을 부여하였다."
라고 평가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신기술 VASA-1을 이용해 제작한 랩하는 모나리자 영상. /엑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숨겨진 비밀도 흥미롭다.
르브루 박물관에 가장 큰 홍일점 작품 중에 하나인 모나리자(Mona Lisa)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그린 초상화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모나리자는 여러 가지 창조적인 기술적 요소와 기법을 통해 그려졌다.
> 알 수 없는 미소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며, 이를 위해 다빈치는 여러 가지 색깔을
섞어 주변 시야를 활용하였다. 과연 미소인지 슬픈 얼굴인지 각도에 따라 분간이 안될 정도다.
르네상스의 미술의 최대 변화 중에서 템페라 물감에서 유화 기법으로 발전한 것이다. 모나리자는 유화로 그려졌다. 유화는 기름을 매개체로 사용하여 색을 혼합하고 적용하는 기법으로, 레오나르도는 이 기법을 통해 색의 깊이와 질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유화는 건조 시간이 길어 색을 여러 번 겹쳐 칠할 수 있어, 세밀한 디테일과 부드러운 색조 변화를 가능하게 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하여 모나리자의 얼굴과 배경을 부드럽게 연결했다.
스푸마토는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들어 색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기법으로, 이를 통해 인물의 표정과 감정을 더욱 미묘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이 기법 덕분에 더욱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는 기법이다.
> 원근법
다빈치는 원근법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적용한다. 모나리자는 원근법을 통해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배경의 경치와 인물의 위치를 조화롭게 배치하여, 관람자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보여준다. 레오나르도는 대기 원근법을 사용하여 먼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깊이감을 더욱 강조했다. 모나리자 감상의 체험은 이토록 과학적인 다빈치의 끊임없는 연구의 결과였다.
> 임신설
모나리자가 입고 있는 옷과 자세 등을 통해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이 있다.
그림 속의 모나리자는 검은 옷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옷 위에 투명한 망사 천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망사 천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임산부가 두르던 전형적인 옷이어서 다빈치가 모나리자의 둘째 아들 출산을 기념해 그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 눈에 그려진 글자와 숫자
모나리자의 눈 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을 나타내는 L이 그려져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빈치는 그의 노트에도 수많은 암시를 새겨 넣은 인물이다. 모나리자 작품에도 그를 나타내는 상징, 숫자가 들어있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다.
1550년에 출간된 조르조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의하면, 이 그림은 1503년 여름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Francesco del Giocondo)라는 상인이 새로 지은 자신의 집 거실에 걸어 두기 위해 자기 부인의 초상화를 의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의뢰자에게 전달되지 못했는데 이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의뢰를 받은 몇 달 뒤에 베키오 궁을 장식할 작품 주문이 들어와서 이 그림은 주문자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에게 전달될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두 번째는, 그 당시 조콘도의 부인은 이미 아이 셋을 낳은 애 엄마였으나 조콘도가 원한 것은 23세로 아직 젊지만, 모성애 가득한 여인을 그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콘도의 기대와 달리 왠지 무서운 배경 속에 눈썹 없는 여인이 맘에 들지 않아 인수를 거절했다고 한다. 당시 눈썹이 없는 여인은 행실 나쁜 여인들을 가리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은 다빈치가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그림을 의뢰자에게 내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다빈치가 평생 동안 자신이 갖고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빈치의 최후와 말년을 함께 하였던 프랑스에 <모나리자>를 남기게 된다. 루브르박물관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40조의 가치를 소장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다빈치는 더 이상 밀라노, 피렌체 모두에게 더 이상 후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전전하던 다빈치는 도시국가 간 전쟁으로 더 이상 후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끝내 다빈치를 흠모하던 프랑스왕에게로 간다. 1516년 프랑스행을 결정했고, 시종 한 명과 함께 알프스 국경을 넘었다. 현재 루브르가 소장한 ‘성안나와 성모자상’ ‘모나리자’ ‘세례자 요한’은 환갑을 넘긴 다빈치가 손수 프랑스로 가져간 작품들이었다.
다빈치를 부른 이는 20대 초반의 프랑수아 1세, 다빈치가 죽기 전까지 3년간 앙부아즈성과 인근 끌로 뤼세 성을 오가며 우정을 쌓았고, 다빈치를 아버지로 여기고 존경을 표했다. 이로써 다빈치 덕분에 프랑스의 르네상스가 열리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다.
다빈치는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하였고 다빈치 코덱스에 그의 생각들을 그려 넣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