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역사의 뿌리, 고대 그리스 역사 인문학여행기
“역사란 시대의 증인이고, 진리의 빛이며, 기억의 토대이고, 삶의 스승이며, 옛 세계의 소식 전달자이다.”
-키케로, 『연설가론』 중에서
서양의 역사를 아는 것은 곧 그들이 만든 역사의 흐름이 올바른 것인지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또한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기록하는지 판관이 되는 중요한 공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스승을 만나는 일이고 옛 세계의 소식이 미래를 이끄는 지혜를 전달하는 과업입니다.
인문학 공부를 위해서 현지답사 여행을 한 것으로 <인문학 여행기>글을 공유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를 아테네에 보존된 아크로폴리스 등지의 유적지에서 만나면 우선 그 생생함에 놀라게 됩니다. 살아있는 역사 유적지들이 오늘날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전 세계인들을 흡수하고 영감을 줍니다. 지난해 아테네 현지답사에서 만났습니다. 키케로의 문장이 정말 옳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그 시대의 증인이자, 진리의 빛이고 기억의 토대가 되어 서양문명을 일으켰습니다.
역사는 우리들 삶의 스승이고 옛 세계의 소식 전달자가 되어 인류의 정신문명을 일으켰지요.
고대 그리스의 출발은 미노아 문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주도의 약 4배 큰 이 섬, 크레타에서 고대 그리스의 최초의 문명, 미노아 문명이 약 기원전 10세기경 ~ 15기에 고도로 발달되었지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미노아왕과 황소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미로 궁전을 잘 알 겁니다. 그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아테네 최초의 영웅 테세우스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호프맨작가 답사에서.. 미노아 문명의 유적들, 아테네 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함.
기원전 15세기부터 피어난 미노아 문명의 유적들을 보십시오. 도자기에도 세련된 그림이 새겨지고
그려 넣은 것이 그들의 삶이 스토리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역사는 스토리가 되었고 그 스토리들이 그리스의 신화로 그리스의 비극으로 이어진 겁니다. 미노아 문명은 트로이아 전쟁 이전부터 성장한 문명입니다. 크레타 섬에서 번성한 미노아 문명이 그리스 문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문명의 원조이지만, 사실 그리스 문명은 미노아, 미케네 그리스 고대 문명조차 해양 문명(페니키아, 수메르 문명)와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겁니다. 기원전 10세기부터 해양세력, 침략 세력으로 미케네 문명이 사라졌지만, 그 후로도 끈질기게 고대 그리스인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 유구한 문명의 역사가 흘러서 아테네의 전성기를 만든 겁니다. 기원전 5세기 중엽,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한 델로스 동맹의 맹주인 아테네 제국화의 길이 그렇게 단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1천 년의 역사 흐름의 영향의 수혜였던 겁니다.
고대 그리스의 최고 문학가로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호메로스는 장님이었다는 설이 있고 시인으로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구전을 글로 엮게 되었다는 평가입니다. 트로이아의 멸망이 기원전 1184년이므로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암흑기(기원전 12세기~ 기원전 8세기)를 지나서 다시 눈부신 빛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신과 인간의 대서사시, 고대 그리스의 문학의 정수를 부활시킨 위인이었습니다.
아테네 패권 문명 이전, 그리스의 고대 문명의 유적들
그리스의 육지들은 거친 산맥과 산봉우리들이 높은 언덕 위에 솟아올라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 문명은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곳곳에 폴리스 도시국가들을 세우고 이러한 식민시들이 헬라의 세계에 무려 1천 개나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세계 - 헬라 세계는 정신적으로 헬라인들이라는 문명 공동체로서 서로 경쟁도 하였지만 같은 문화와 신화를 공유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크로폴리스입니다.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도시라는 그리스 언어의 뿌리를 두고 있는데요, 보통 언덕 위에 성채를 지어서 그곳에 신전을 모시고 유사시 전쟁 상황에도 대비하는 다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웅장한 유적지로 남아있는 것이 바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입니다.
하단 사진은 직접 현지답사를 통해서 아고라 광장에서 아크로폴리스의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 유적지의 웅장함이 2500년간 이어져 오고 오늘날 세계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감동적입니다.
아네테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전경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의 패리 클레스 시대(BC 495~429)에 가장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민주화를 성숙시킨 아테네 시민들의 찬사를 받았고, 그가 저 아크로폴리스의 페트테논 신전을 건축하게 한 지도자였습니다. 거친 산악의 언덕 위에 이 웅장한 아크로폴리스를 세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신과 함께 살아갔지만 시민들의 논의를 거쳐 국가를 운영하고자 하였습니다.
소피스트들이 아테네의 민주화를 꽃피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고라 광장에서 시민들이 서로 연설을 자유롭게 하고, 주요 정책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페리클레스와 같은 시대를 공감하였던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저 아고라 광장에서 산파법이라고 불리는 대화로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쇠락의 길에 들어선 아테네의 진정한 정신을 일깨우려고 하였던 겁니다. 펠레폰네소스(BC 431~404) 전쟁에 직접 참전한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용기의 덕목을 실천한 철학가였습니다. 소피스트를 비판하였던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위한 최초의 철학을 설법한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습니다. 그의 철학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꽃을 피워서 청출어람이 되었고 스토아 철학으로 로마제국에 영향을 준 겁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세계로 확산된 것은 첫 번째 헬레니즘의 세계와 그 뒤에 이어지는 바로 로마제국이 그리스 문명과 철학을 받아들인 때문이지요.
아크로폴리스의 웅장함에 세계인들이 매료됩니다.
하지만, 폴리스 국가들, 특히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마찬가지로 노예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였습니다.
직접 민주주의였지만 반쪽만의 민주주의라는 어두운 측면도 있었습니다. 아네테 시민들은 선거권이 있었지만, 외국인들, 여자들, 노예들은 그렇지 못하였지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였던 아테네 민주주의 운영의 커다란 맹점은 바로 선거권에서 시민권에서도 소외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민회- 평민들의 정책결정 기구 등을 통해서 로마의 공화정, 원로원의 운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서양에서 그리스의 아테네를 그들 문명의 뿌리로서 유럽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가르치게 된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지요.
그리스 역사유적지 이야기와 이어지는 연재입니다.
하단 지난 블로그에서 현지 영상 사진들을 감상하세요.
https://blog.naver.com/seolhon/223688837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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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융성하였던 아테네 패권의 시대가 저물게 된 것은 영원한 강자도 없다는 증명입니다.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아테네가 쇠락하였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연 헬레니즘 문화의 시대였습니다. 또한 헬레니즘 시대 이후 로마 제국에 이어지는 서양 문명의 부흥에 고대 그리스의 절대적인 공헌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 역사의 흐름은 이후에 다시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