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를 극복하는 지혜
툴레의 에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서양인의 에고에 대한 접근을 쉽게 풀어져서 이해하기 좋았다.
그의 책에서 '에고는 고통제'라는 부분은 꼭 불교의 사성제 진리와도 맥이 닿아있다.
고통체로부터의 자유는 먼저 자신이 고통체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후에 더 중요한 것은 충분히 현재의 순간에 머무르는 능력,
충분히 깨어 있는 능력이다. 그럼으로써 고통체가 활성화될 때
부정적인 감정이 심하게 흘러들어 오는 것을 느끼고
자신 안에 있는 고통체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툴레의 책 중에서
에고는 고통체가 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과연 고통을 느끼고 있는 에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신경 쓸 일인지 답변을 해보는 일이다. 그렇게 참나를 찾아가면 되는 길을 찾게 된다.
참나는 에고에서 자유로워지는 주인인 나이다.
그 참나를 인도의 고대 철학에서 아트만(참나)로 인정해도 좋다.
도덕경에서는 현묘한 거울'(玄監)은 참나(양심)가 지닌 무위의 지혜이다,라고 하였다.
퇴계 이황 선생님도 마음을 다스리면서 참나를 찾으라고 하셨다.
현실적인 삶에서 나의 생각은 에고도 어느 정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타인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욕망의 에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은 에고를 발전시켜서 열심히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절제가 필요하다. 에고를 적절한 수준에서 합리적으로 절제 통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중용 중도라고 불렀다.
문제는 참나를 잊지 않고 보전하면서 살아가느냐? 그것이다. 에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필요는 없다.
에고도 필요한 삶의 자아이나, 참나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삶의 철학이겠다.
간혹, 욕심, 욕망, 꿈을 에고에 싣고 하루하루를 이끌어가는 추진력도 필요하다.
과도하지 않도록 참나가 에고를 끌어안을 수 있다면,
또 과도하게 에고에 집착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다면,
현실의 세계에서 에고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집착이 아닌, 꿈을 꾸는 에고이자 성현의 가르침으로 다스리고 성장하는 참나를 동시에 이끌어가려고 한다. 지나친 욕망, 과욕과 꿈을 꾸는 것은 다르다.
현실 속의 에고를 꿈을 꾸게 해두고 동시에 망상이 되지 않도록 한다.
궁극적인 참나에 성현의 도를 흐르게 하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도록 한다.
이 사회, 이 국가,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적인 에고, 인문학적인 성취의 에고와
철학적이고 영성적인 참나를 조화롭게 성장시키려고 한다.
<참나보다 현실적인 에고 이야기>
며칠 전부터 무릎 인대가 늘어가는 바람에 무릎이 퉁퉁 부었다....
중년에 무릎 관절 조심의 경고음을 들었다. 이제 함부로 관절을 압박하지 않겠다.
이번 주 내내 무릎 통증으로 심한 고통을 달고 살고 있다.
하지만 고통의 에고보다 큰 극복의 에고가 있었다.
고통에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재활하려는 나를 발견하고 참으로 기특하고 든든하였다.
일터로 나가는 것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릎 통증으로 계단을 한 계단에 두 발을 딛고 거북이처럼 오르고 내린다.
그런 하루의 시작에서 아프면 그 고통에 만사가 귀찮고 몸 져 눕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출퇴근을 꼬박 꼬박하면서 재활의 용기를 갖게 된다.
약한 에고가 될 것인가? 강한 에고가 되어 편안한 곳에 쉬고 싶은 에고를 극복할 것인가?
결국 강한 에고 - 그것을 참나에 근접한 나의 실존일지도 모르겠다 -로 일상을 이어간다.
루틴을 멈추거나 중단할 수 없다. 그러면 스스로 약속된 생활이 깨지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쑤시고 시린 무릎 통증, 이 정도에 쓰러지고 싶지 않다.
아프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날마다 할 일들도 많기에 뒤처지고 싶지 않다.
무릎 통증이 고통스럽지만 병원도 가고 파스도 붙이고 냉찜질을 보태면서
정상적으로 일하고 글을 쓰고 있다. 만일 방 안에서 쓰러져서 잠을 자고 쉰다면 이 무릎 통증은 더 오래갈 것이다. 나는 눕지 않으리라! 꼭 이겨내려고 한다. 무릎 통증 따위를 극복할 것이다.
이상적인 참나를 떠나서 현실 속의 에고, 고통스러운 에고를 이겨내려는 내가 자랑스럽다.
지금 새벽 시간 3시 반에 이 글을 올린다. 일어나기 싫은 에고를 글을 쓰고 싶은 에고로 극복하였다.
이 무릎 통증도 다음주면 반드시 극복하리라 긍정 확언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