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에게 배우다
여름나라의 건기는 타는 듯한 사막 한가운데 숨소리마저 죽이고 버텨내고 있다.
사람은 괜찮다. 그늘진 실내에서 180도 선풍기를 틀고, 레이더 센서와 AI기능을 강화한 무풍 에어컨 공기에서 상쾌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더위를 불평한다. 무더위에 먼지처럼 웅크리고 있는 식물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기운이 빠지고 헝겊떼기처럼 풀이 죽어있는 식물들이 가엽고 불쌍할 뿐이다.
좋은 소식이다! 드디어 이 여름나라의 우기가 시작되었다.
식물은 장대비가 필요하다. 열사의 사막 속에 버텨내던 식물들에게 단비가 귀한 선물이 된다.
여름나라의 야생 식물들은 건기 동안 무려 5개월 비없이 벙어리로 견뎌왔다.
빗소리가 고요하였던 갈증에 피로한 몸을 샤워하는 것 같다.
빗소리가 신음하였던 식물들에게 오아시스 평화를 가져다준다.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한 비가 장대비가 되어 거대한 저수지를 만드는 것 같다.
그 저수지의 식물들은 수초가 될지언정 환희에 두 손을 두 발을 모두 흔든다.
여름나라에 8년 근무하면서 건기와 우기, 뚜렷한 한 해의 두 계절을 만난다.
건기에 목말라하던 식물들이 불쌍하고 가여워하던 참이었다.
처음 3년간 목이 타고 등줄기에 땀이 흘러 참지 못하였던 내가 지금은 식물을 보고 견딜 수 있다.
건기 몇 개월동안 낮은 식물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힘이 없어서 나풀거리지도 못하고 덜퍼덕 먼지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식물들에게 햇살보다 반가운 비를 뿌린다. 건기가 끝나가는가 보다.
이제 여름나라 베트남은 시원한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다.
고향의 여름철 장마철과 같다. 사우나 증기탕에 들어간 것 같은 열대야의 불쾌지수 속.. 장마철은 분명히 단비의 계절이다.
반전이다. 한낮인데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칠흑 같은 밤처럼 변했다. 이 정도면 언제 장대비가 그칠지 모른다. 비가 계속 쏟아지면 억장이 무너지는 사람들도 있다.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가면서 위협하고 있다.
30년전 건설업계에서 근무한 기억이 소환된다. 비가 오면 모든 실내외 공사현장은 전면 중단된다.
특히 위험한 실외 공사장은 안전지대가 못된다.
여름철 해변들도 출입 금지가 된다. 바다가 험악하여 해변에 가는 것도 출입 통제되어야 한다.
강물, 개천 위 다리의 수면을 재는 안전검사도 긴급해진다.
혹여 범람하여 홍수가 나면 그 피해가 걷잡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여름철에 나가서 놀 수가 없게 된다. 수영 물놀이만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장마철은 정말 싫다.
엄마들은 등학교길 아이들을 걱정하게 된다. 우비와 우산을 가져가지 못한 아이들에게 뛰어간다.
무사하게 등교하기를, 빗길에서 사고 없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혹시나 태풍이 불어올까 기상관측소를 분주해진다. 장마철이 길어지면 기상이변은 더욱 높아진다.
가녀린 식물들도 폭우에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단비의 환희에 가득하였던 식물들은 버티는 노하우가 있나 보다.
낮은 키의 식물들, 풀 잔디는 서로에게 의지하여 쓰러지지 않는다.
다 자란 나무들은 줄기마다 열린 잎새들이 이불처럼 포개서 비를 흡수한다.
식물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폭우를 몇 시간이고 받아들인다.
식물들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인위적으로 폭풍의 언덕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비에 맞아 뼛속 뿌리까지 흠뻑 젖는 것이 숙명이다. 그 숙명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비를 뿌리면 그대로 영양분이 되고, 비가 수개월 오지 않는 가뭄이면 그대로 움츠려들고 말라버린다.
메말라서 비틀어질 때까지 쪼글아 들어버린 식물에서 여름나라 우기는 식물들에게 환희고 희열이다.
그런 희망의 광시곡이 빗소리다. 식물들에게 쏟아지는 광시곡이 하늘까지 압도하고 만다.
식물들 vs 사람들 소리치다!
하지만 소리치는 방식이 다르다.
사람들은 폭우를 방어하려고 한다. 밀어내는 안전한 방식으로 비를 피해 소리친다.
인류 문명은 안전한 실내 공간 건축물로 폭우에서 대피할 수 있었다.
저수지를 만들어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였다.
사람들의 방식은 그렇게 폭우에 안전한 보호막을 확산시켰다.
신이 이 세상을 사람과 다른 생명체들을 위해 식물들을 위해 창조하였는데 비 내리는 것을 다르게 작용한다. 계절을 받아들이는 작용과 반작용이 사람과 식물들이 다르다.
사람은 비를 과학으로 받아들인다. 기후과학을 발전시켜서 강수량을 예측하고 측량하여 활용하려고 한다. 사람에게 폭우가 두려운 것을 수도 있겠으나, 농작물을 돌보는데 기쁜 소식이다.
하늘은 또다시 반전의 얼굴이 된다. 몇 시간 동안 쏟아지던 광폭한 비들이 그쳤다. 한순간에 이리도 얼굴을 바꾸는 하늘은 변덕스러운 기적이다. 저녁이 다 되어 하늘이 맑아졌다. 절망의 끝처럼 두껍게 먹구름 휘감았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식물들의 녹음이 뚝뚝 피처럼 흘러내리는 생명의 정화가 온 숲과 들에 펼쳐진다. 풀숲의 초원은 짙은 초록의 향연이 풍성해졌다. 나무들은 물감이 떨어지듯 생생한 초록들이 쏟아진다. 열매들의 초록은 더욱 싱그러워져서 알곡이 익듯 가을을 기다린다. 대자연에게 여름나라의 우기는 축복이다.
우기, 장마철이 이토록 사람과 식물 - 대자연의 삶의 철학을 깨닫게 해준다.
사람들이 열심히 살지 않으면 식물들에게 너무 미안할 거다.
남의 눈치 보지 않는다면 저 장대비를 홀로 맞고 싶다.
어려서 비를 맞고 즐기던 호기어린 시절이 있었다. 세상 모르던 그때가 떠오른다.
비가 오면 산으로 들로 놀러나가지 못하는 것에 심술이 나서,
집주변을 비를 맞고 첨벙첨벙거리며 돌아다니던 그 개구장이 아이가 생각난다.
그때는 자연과 교감하는 것을 몰랐다. 우산쓴 어른들, 아이들, 사람들만 보았다.
중년의 지금은 사람들만큼이나 식물들과 교감한다.
우산도 없이 비를 흠뻑 맞는 식물들이 개구장이처럼 행복하게 보인다.
식물은 심술부리는 법을 모른다. 그저 주는대로 받을 수 있으면 그대로 넉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