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맨작가는 낭만주의자 + 고전주의자입니다.
브람스의 많은 음악들 중에서 특히 브람스의 교향곡 4번 E단조를 좋아합니다.
그는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가였지만, 베토벤을 공경하여 베토벤 같은 음악을 지향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교향곡 4번은 브람스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낸 낭만적인 멜로디로 가득합니다.
더불어 이 교향곡은 베토벤이 지키려고 하였던 고전적인 원칙들로 낭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연상되는 교향곡이기도 하지만 브람스만의 독보적인 낭만성이 충만한 이 교향곡을 들으면서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브람스는 참으로 우둔하고 고지식한 낭만주의자였지요.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평생 사랑하고 후원한 사랑에 목마른 낭만적인 음악가였습니다.
슈만이 일찍이 정신병으로 죽고 나서 그 후에 클라라는 연하남 브람스의 구애를 결국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가 죽고 슬픔에 젖어 1년 후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기막힌 브람스의 비극적인 연애의 결말이 안타깝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하단의 블로그/브런치에 담겨 있습니다.
(슈만 클라라 브람스의 사랑 이야기 읽어보세요)
https://brunch.co.kr/@hopeman111/116
100-11,비극의 클라라와 슈만, 브람스의 러브스토리
음악가들의 불멸의 러브스토리 | 클라라 비크, 여성 음악 신동과 로버트 슈만, 천재 작곡가는 사랑을 위해 싸우며 클라라의 아버지를 고소하는 일까지 포함해 온갖 일을 펼치게 됩니다. 마치 불멸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들리지만, 클라라와 로베르트 슈만에게는 이것이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10살 차이의 나이는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 감명 깊은 것은 슈만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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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람스의 얼굴에서 풍기는 모습대로 그는 고전적인 음악을 - 특히 베토벤을 따르고자 하였던 다소
옛날 사람이었기에 사랑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이 교향곡은 특히 현의 멜로디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금관악기와 목관악기들도 너무 잘 어울리는 연주가 꼭 청중을 행복하게 하는 곡입니다.
절대 구슬프거나 비탄에 젖는 음악이 아닙니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음악입니다.
낭만주의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요? 낭만적인 멜로디 안에 조화의 감성으로 울림을 주는 것이지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고전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것이 모두 그런 두 가지 시선들이 됩니다. 모든 이들이 사실 삶의 두 시선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원칙과 혁신의 열정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다음의 글은 좀 더 확장하여 고전주의 - 이 글에서는 이성주의로 명명해 봅니다. - 와 낭만주의에 대하여 글을 적어봅니다.
저는 고전적인 것에 늘 원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옛것이 좋고 옛것에서 찾으려 하는 삶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늘 낭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낭만주의자들은 혁신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열정을 불사릅니다. 꿈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꿈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지요.
고전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낭만적인 것은 감성적인 것이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성주의 자인가요? 낭만주의자인가요?
대부분 주말에는 낭만주의자, 주중에는 이성주의자로 페르소나를 갖고 사시나요?
일터에서는 냉정한 이성주의자로 몰입하고 일터 밖에서는 따뜻한 낭만주의자로 변하시나요?
학창 시절 낭만은 모두 불 꺼지고, 중년이 되어 불씨를 다시 살려내시고 있나요?
우리는 삶의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이어야 하겠습니다.
고전주의자들은 수백 년 수 천년의 가치들을 배우고 익히면서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이성과 고전은 그렇기에 인류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발전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전통에 가치를 두지만 인류의 이성을 믿고 발전적인 생각을 꾸준하게 하였습니다.
서양문화의 이성 중심주의가 결국 기독교 정신 단일의 사상체계를 인간 중심으로 바꾸었던 겁니다.
고전주의자들 - 합리적인 이성주의자들은 결코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전주의자들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었고 유산을 소중하게 지켜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낭만주의가 고전주의를 대체하는 역사 문화의 흐름을 가져왔습니다.
낭만주의는 결코 고전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고, 더욱 인간적인 새로운 혁신의 문화 흐름이었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는 인류 문명사 최초로 개인에 중심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대였습니다. 개인이 영웅이 될 수 있었고, 누구도 그 영웅의 길에 방해가 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르네상스 정신이 엄격하게 지배하던 신고전주의 역할이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중심주의 철학은 여전히 19세기, 20세기, 오늘날까지 돌이킬 수 없는 시민정신입니다. 그러한 낭만주의는 분명히 개혁가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영혼들을 끌어다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인간 정신의 시험자들의 시대였습니다. 낭만주의는 인상주의, 민족주의 등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였습니다. 보이는 것 이면을 해석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21세기 낭만주의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신념을 믿습니까? 그 신념을 위해서 죽을 각오로 살고 있나요?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낭만주의자입니다.
동시에 그 신념들의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성주의자이고 원칙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또한 보이는 것만을 믿지 않고, 전통적인 가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에 고착되지 않고 개방적으로 세상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낭만주의자입니다.
저는 브람스를 좋아하는 고전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가 되고 싶습니다.
삶의 원칙을 소중하게 지켜내려 하지만, 동시에 혁신적인 낭만을 꿈꾸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