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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중도를 위하여 실존주의자 친구들, 사르트르까뮈

사르트르와 까뮈의 결별 이유


정치관이 다르면 가족 간에도 심각한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는가!


우리 시대는 좌우 극단이 친구와 헤어질 수 있을 만큼 사상의 격돌이 일대 사건들이 된다.


그렇기에 친구도 가족도 심지어 부부 사이도 정치 사상적 갈등이 후회를 남기게 된다.


쉽게 얘기하면, 정치색이 다르면 가장 친한 사이에도 틀어질 수 있다는 지점이다.



심지어 솔직히 형제들 사이에서도 좌우파 정치적 관점과 지지가 다르다.


다행히 직계 가족들은 모두 한 가지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으니 그 안에서 조금씩 차이 나는 것은


가족의 사랑으로 감싸안을 수 있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절친이었고, 철학 동지 문학 동지였다.


그 둘은 프랑스 지성계를 이끌어가던 주목받는 최고의 지성인 친구였다.


함께 실존주의 철학을 이끌어가던 20세기 초 중반의 사상계의 거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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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르트르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혁명을 꿈꾸는 과격한 인사가 되었다.


그에 비해 카뮈는 과격한 혁명, 공산주의를 배격하였다.


그 둘은 그런 이유로 결별하였다.



사르트르는 카뮈의 입장을 두고, 현실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추상적인 도덕론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르트르는 (반대편에 선 절친 카뮈에게) 노예라는 표현을 썼다.






"반대편의 노예를 돕는 법은 이쪽의 노예를 돕는 일"


카뮈의 작품에 대하여 사르트르의 비평의 글






이 말은 카뮈가 혁명의 폭력성을 비판하며 '반항'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 사르트르는 진정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때로는 혁명(그리고 그 과정의 불가피한 폭력)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며 카뮈의 주장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꼬집은 것이었다.



카뮈의 '반항'은 현실의 '노예'들을 돕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었다.



카뮈 역시 사르트르와 그의 동료들의 비판에 대해 실망감과 함께 반박하는 글을 썼다. 카뮈는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며, 어떤 이상을 위해서든 인간의 생명이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친구였던 사르트르가 자신을 오해하고 부당하게 비판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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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혁명은 그것이 어떤 새로운 세계를


출범시킨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옛 세계의 모순된 귀결일 뿐이다.


혁명적 사회는 오직 현실만의 이름으로


그의 예언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현실을 훼손하고 만다.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중에서>






이렇게 『반항하는 인간』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서로의 사상적 차이를 확인하고, 공개적으로 비판을 주고받으면서 두 거장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씁쓸하지만, 위대한 사상가들의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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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반항하는 인간이 허무의 광란과 전체성에의 동의를


동시에 거부해야 한다면,


예술가는 형식주의적 광란과 전체주의적 현실 미학을


동시에 벗어나야 한다. (중략)


형식 원리의 허무주의와 원리 없는 허무주의를 포기함으로써


이 세계가 창조적 종합의 길을 되찾을 때에야


비로소 문명은 가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에 있어서도 끝없는 해설과


르포르타주의 시대가 사라져야 비로소


창조자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중에서>








* 르포르타주(프랑스어)



방송·신문·잡지 따위에서, 현지 보고나 보고 기사를 이르는 말.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현실의 사건과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기록하는 문학 형식.





카뮈는 예술가였다. 연극인, 문학가였다. 철학마저도 예술적 집필과 함께 번뜩였던 카뮈는 허무주의를


예술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점에서 사르트르도 카뮈와 공통점이 많은 철학가이자 문인이었다.



그렇기에 둘 사이에 지성인의 우정은 변함없이 그들의 가슴에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카뮈가 47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그의 호주머니에서 사르트르의 집 주소 메모가 있었다는 글을 접하였습니다. 그는 친구와의 결별로 갈라선 끈을 그의 말년에 다시 잇고 싶었을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가와 실존주의 문학가들은 우정이 실존보다 우선하였을까? 아니면 우정마저 반항하고 말았던 것일까? 그들의 우정은 부조리였는가? 아니면 그들의 삶이 부조리를 받아들였던 것인가!





나는 (블로그 세상에서) 글벗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글벗들의 정치적 신념들도 각기 다르다. 중도 성향이 강한 나는 글벗들 모두를 끌어안고 함께 가고 싶다. 극단적인 정치 성향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가 안타깝다. 카뮈의 글처럼 "연기처럼 허망한 권력을 망각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카뮈에게 손을 들었다. 사르트르도 결국 전체주의 공산주의의 극단에서 분개하고 돌아와 스스로 회개하였다. 나 또한 카뮈의 온건한 휴머니즘을 사르트르보다 더 응원한다. 극단은 언제나 문제의 갈등이 된다. 중도 중용의 합리적인 사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승리하고 많아졌으면 좋겠다!







정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는 종교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사회가 절대를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인간 각자는 만인을 위해 그 절대를 탐구하고 있을 것이....


- <반항하는 인간>, 알베르 카뮈 지음 / 김화영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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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극단의 미국이든 대한민국의 현실이든 카뮈에게서 또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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