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지혜! <호프맨작가의 소설 중에서>두려운 바다

바다의 수영처럼 파고를 넘어서리라


카뮈는 바다 수영을 좋아하였다. 그의 소설, 작품 속의 수영 경험을 하였다.


알베르 카뮈는 수영을 하면서 작품의 캐릭터 묘사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리적 해석까지 성취하였다.


카뮈의 문체 문장들의 그 느낌을 나의 필체로 나의 경험을 담는 창작 글로 옮겨 보았다.



"바다에 빠져들었지만 바닷물에 두둥실 떠올라 즐길 수 있었다.


수영장의 물과는 다른 감촉과 짭조름함이 내 피부와 장기에 바닷물이 흐르게 하였다.


그것이 꼭 바닷물고기의 헤엄과는 다르지만 적어도 잠시 동안 바다의 생명체로 부활하였다.


파도가 넘실대는 것을 포용하는 나의 육체라는 물질은 바다에 적응하였다.


바다 생명체들에게는 깊지 않지만, 육지의 사람에게는 충분히 해녀를 느낄 만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머리 위로 스쳐가는 파도를 감각적으로 느끼면서 바다에 용해된 나의 온몸이 익숙해졌다.


머리를 솟구칠 때까지도 바다는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 포근함은 어쩌면 수십억 년 전부터 내려온 인류의 조상이 물려준 고향의 따스함이렷다.


쓰나미 같은 바다에 조난당한 사람들은 이렇게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몸을 던져서 바다와 키스하고 있다. 나의 포옹을 바다가 반겨주고 있단 말이다.


그렇게 허우적대던 나의 피부에 비늘이 생기고 지느러미가 달리기 시작하였다.


자맥질하던 몸이 유연하게 물고기처럼 바다를 즐기는 생명체가 된다."


<호프맨작가의 소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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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열 살배기도 안된 핏덩이 같던 아이의 경련이었다. 어려서 경험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바닷가 갯바위 곁에서 자맥질을 하는데, 갑자기 다리에 쥐가 오르고 고통에 소리를 치고 말았다. 두려움과 다리의 경련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려는 찰나였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놀랐을까 이내 허우적대다가 아마도 아버지께서 구해주신 것 같았다.



그 이후로 깊은 바다에 나가는 것을 꺼렸다. 수영장의 안전한 수심과 달리 갑자기 깊어지는 바다의 불시착과 같은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어른이 되어 좋은 보험이 되었다. 바닷가 해변을 즐기는 것으로 바다 수영을 피하게 되었다. 중년이 되어 가끔 돌아보는 바다는 그렇게 아련한 추억이 있었다. 몇 달 전 다낭의 해변에 과감하게 바닷가로 뛰어든 그 좋은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도 치유될 만큼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역시 두려움을 떨치려면 그 경험에 다시 풍덩 빠져서 극복해 내어야 좋은 추억으로 치유될 수 있다!


두려움의 바다는 치유의 바다가 되어 나의 삶은 단단해졌다.



중년이 되어 지혜로워진 나는 거칠게 헤엄치려고 하지 않는다. 내면을 단단하게 키우면서 외면을 부드럽게 가지려고 한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법도 같은 이치다. 바다와 맞서면 안 된다. 바다의 파도에 몸을 맡기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중력 이탈의 해법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맞서지 않고 부드럽게 수영할 수 있는 우리들은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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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 1월 초 수많은 삶의 터전에서, 일터의 격렬한 생존방식을 수용하고 견디어야 하는 사람들 모두 같은 심정일 거다. 월요일 오늘부터 다시 치열하게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이 글을 적으면서 다시 한번 지혜롭게 현실의 파고와 싸워볼 것을 다짐하게 된다. <노인과 바다> <모비딕>처럼 사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바다가 주는 지혜다. 바다를 두려워하면 심연으로 빠져들 수 있지만, 어른처럼 당당해지려고 한다. 경험이 많은 해녀처럼 바닷속으로 깊숙하게 할 일을 몰두하고 다시 수면으로 오를 쾌감의 순간을 기대해 본다. 두려워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며 잠수하듯, 수영하듯 파도를 넘어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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