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맨작가 <블로그 사피엔스> 미술 예술 이야기
클림트는 황실의 인정과 지원을 받던 전통적인 화단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스트리아의 보수적인 미술계에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안주하지 않았고 품격있게 저항하고 이단아, 반항아가 되었기에 그의 황금빛 작품들은 눈부십니다.
그가 연재작으로 내어놓은 학문 - 의학 - 법 등의 작품들은 모두 기존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학문, 의학, 법>의 아카데미 전당의 가치에 찬물을 끼얹는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림트가 처음부터 품격 있는 반항을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스트리아 황제 국가의 보수성이
예술마저 이웃 도시 - 파리와 달리 표현의 자유가 없는 침체된 틀 안에 가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성공을 거둔 것을 그는 오히려 그의 명성을 활용하여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표현하는 예술세계를 펼치는 무대로 삼습니다.
히틀러가 입학하고 싶었으나 거부당한 미술학교에 당당히 입학한 에곤 실레는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교수진과 싸우고 학교에서 나옵니다.
19살에 미술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신예술가>를 결성하는 에곤 실레는 클림트에 이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습니다.
특히, 에곤 실레에게 모델을 소개해 준 클림트 덕분에 그는 미술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해낼 수 있었고 그렇게 그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클림트가 그의 독보적인 예술세계의 진정한 첫 번째 스승이 되었던 거지요.
에곤 실레는 매독병에 죽게 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에 대한 독설을 그의 작품에 뿌리게 됩니다.
더불어 그 백여 편에 이르는 그의 자화상 작품에서도 불안,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고통의 젊은이를 그의 작품에 표현하게 되지요.
에곤 실레의 대부분의 성에 관한 작품들은 19금 작품들로 평가받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미술의 표현주의를 위한 폭풍우 같은 도전을 하였고, 끝내 인정을 받게 됩니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보수에 맞선 표현주의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두 예술가 모두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 시절을 통해 오히려 단단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술이 기존 가치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였습니다.
예술의 세계는 그렇게 끊임없는 혁신의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습니다.
그러한 예술가들의 혁신의 노력, 자신의 독보적인 세계의 표현이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다양한 시각과 표현의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혁명과 같은 진보적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인간 정신의 끊임없는 탐구와 표현을 통한 세상과의 호흡에서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만납니다.
예술은 끊임없는 인간 정신과 사회 시대정신의 탐구에서 새로운 창작을 위해 노력한 창작가들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릅니다. 클림트는 프랑스 인상주의 상징주의의 발전에 고무되어 그의 예술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는 보수적인 반항아가 되었습니다. 에곤 실레의 작품들은 클림트와 다른 직접적인 반항의 예술이었습니다. 내일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들을 만난 감상을 올리겠습니다.
예술이 가득한 설 명절 행복한 한주입니다. 감상자들은 반항하지 않고도 그 정신을 배우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야를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연 예술작품들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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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수의 전당, 오스트리아의 이단아! 클림트와 에곤 실레, 반항아의 예술|작성자 호프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