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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산 Jul 03. 2019

새, 훌쩍 날다​

긴 이별이 끝나고



‘지루한 찰나’가 안단테로 흐른 일주일.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클라이맥스처럼, 

일시에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가 정적 속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슬로비디오 같았습니다.  

  

언젠가 ‘그런 날’, ‘그 순간’이 올 거라 예상하며 흔들리면 안 된다고 수 백번 다짐을 했어도

홀연히 닥친 딸과의 생사의 이별 앞에서 의연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별은 찬 머리의 예행연습이 아닌 따스한 가슴이 맞이해야  하는 저리고 일렁이는

오늘과 내일의 오랜 아픔이니까요.

   

어쩌면 다가올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4년 전, 

재윤이가 루게릭이라는 난치성 희귀병 확진을 받고 두려움과 분노에 온 몸이 떨리던 그 날이

임박한 이별의 예고편이었는지 모릅니다.    

윤이는 자기의 병명도 모른 채 오래지 않아 나을 거라는 긍정과 낙관으로

천형과도 같은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꿋꿋하게 견뎌내었습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으로 짜증 한번 내지 않고 환한 미소로 되려 엄마를 위로하던 재윤이는, 

내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다고 미워하기엔 ‘너무나 예쁜 당신’ 이었습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넘쳐 제 불편한 몸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일에 물불 안 가리고 앞장섰던

휴머니스트, 

불완전한 손으로 비즈 공예 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고 멋진 액세서리도 척척 만들어 선물해 주던

집념의 아티스트,

정상인도 하기 어려운 자전거 전국 일주를 마치고 말 벅지를 자랑하며 대한민국 1%의 성취를 이룬

성공의 레전드.

어떤 일에서나 웃음과 재미를 찾아내어 함께 삶의 여유를 즐길 줄 알았던 웃음의 아이콘,

누구의 하소연이나 이야기에도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고개를 끄덕여 주던 공감 마마,

나이, 국적, 성(性) 불문, 누구와도 금방 친구가 되는 글로벌 프랜드,

자신의 쾌유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미래의 소망과 계획을 꼼꼼히 체크하던 초 긍정 슈퍼 울트라 희망둥이,

휠체어 투혼 열공으로 다음 학기 전액 장학금을 확보해 두고 예능 PD의 꿈을 가지고 병상에서도

예능 방송 모니터링을 꾸준히 해 오던 의지의 한국인,

한 번도 배우거나 다뤄본 적 없는 기계나 컴퓨터를 마치 전문가처럼 다룰 줄 알았던 선천적 공대 언니,

꼼꼼히 가족들 기념일을 챙기고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여 웃음을 선사해 주던 믿음직한 맏딸, 

일면식도 없는 이웃의 억울하고 가슴 아픈 사연에도 가슴 깊이 공감하고 돕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애통해하던 왕 울보 평강공주,

부모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빠듯한 용돈을 쪼개 주택마련 적금을 붓던 재테크의 대가, 효녀 유(劉) 청...   

     

엄마인 제 눈엔 늘 뭔가 부족하고, 엉성하게만 보이던 재윤이가 이렇게 보석 같은 딸, 성숙하고 지혜롭고 완전한 사람이었다는 걸 저는 다 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천상의 지혜를 지니고 불완전한 몸으로 태어나 짧은 생을 세상에서 부대끼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 병상에 누운 재윤이 눈에, 허점투성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이 엄마가 어떻게 비췄을까를 생각하니 못내 부끄럽기만 합니다.  

  

더 나아질 수 없는 병, 좋아질 수 없는 몸으로 맞이하는 재윤이의 하루하루는 바로 ‘오늘’이 가장 건강한 축복의 시간이어서 단 한순간도 허투루 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늘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TV를 보았고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깔깔 대거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아무 때나 키득거렸습니다.

거룩한 찬송과 기도, 성경 읽기 같은 것도 재윤이의 코드에 맞추어 재미나게 하곤 했지요. 

다행히 재윤이는 곁에서 푼수같이 웃겨주며 실없는 아재 개그를 날리는 엄마와의 그 시간을 기다리고 즐기면서 행복해했습니다.

또 주말에는 유튜브로  광화문 촛불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가하며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엄중한 역사의 파노라마, 그 드라마틱한 반전이 주는 불멸의 교훈을 함께 가슴에 새기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병상의 재윤이 곁에서 그녀의 온 존재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현재를 넘어 전생과 미래, 꿈과 희망까지 온전히 감싸 안을 수 있었습니다.

천근만근, 저와 재윤이가 겪었던 육체적 고통의 시간이야말로 25년을 통틀어 재윤이와 보낸 가장 행복하고 깊은 친교의 귀하고 복된 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가족들을 배려하느라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견디던 재윤이가 남긴 마지막 인사는 

“내 아빠, 엄마, 동생이어서 고마워요. 사랑해요...”였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서 받을 수 있는 이보다 더 큰 위로가 또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로 북적이는 흥겹고 소란한 곳을 좋아했던 재윤이는

제 가는 길을 축복하고 배웅하러 와 주신 많은 분들(친구, 선생님, 일가친척, 동생 친구, 학부모, 이웃, 교회 성도님들)을 보며 좋아라 활짝 웃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사진 속 하늘 미소처럼.  

  

빈 방을 서성이다 보니 새처럼 훌쩍 날아간 윤이의  자리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네요.

미소로만 새겨진 재윤이가 이제 그만 울고 나처럼 웃으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며 등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요.

재윤이가 생전에 보여준 배려, 인내, 열정, 포용, 웃음, 용기, 관심, 사랑 들을 다시 천천히 헤아려 보면서

내 삶에서 이것들을 어떻게 녹여낼까 궁리하고 실천하는 일은 따스한 미소를 지어야 가능할 테니까요.  

  

그간 곁에서 묵묵히 보내주신 관심과 사랑, 크고 작은 위로와 도움들 그리고

윤이의 마지막을 지키러 와 주신 따뜻한 마음과 귀한 발걸음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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