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라도 나만의 길을 개척하라

by 오동근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평소엔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한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친구와 함께 중국 사천성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청두를 거쳐 티베트 접경 지역에 가까운 지역까지 이동한 우리는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은 조그만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에게서 근처에 아주 조용한 산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친구는 말했습니다. “우리 저기로 한번 올라가 볼까?” 길이 제대로 닦여 있지도 않고 사람들이 다니는 흔적도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기에 저는 순간 망설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아무 계획 없이 그 길로 들어섰고 몇 시간을 걷다가 마주친 건 뜻밖에도 마을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작은 절벽 전망대와 그 아래 펼쳐진 에메랄드빛 계곡이었습니다. 바람은 맑았고 공기엔 생강차처럼 알싸한 들풀 향이 섞여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내가 무서워했던 건 길이 아니라 내가 길을 잘못 택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여행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 우리는 왜 늘 다른 이들이 만든 지도만을 들여다보는 걸까요? 안전하니까, 효율적이니까라는 이유로 정해진 길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발걸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익숙한 루틴, 안정적인 선택, 모두 나쁘지 않지만 그것만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만의 색은 점점 흐려집니다. 그리고 인생 후반부에서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나는 무엇을 만들어왔을까’ 하는 물음과 마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표현은 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무조건 창업을 하거나, 해외로 떠나야만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기대를 조용히 내려놓고 작은 선택 하나라도 내 판단대로 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번 그런 선택을 해봤습니다. 주말을 그냥 쉬는 시간으로만 쓰는 대신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시작했고 매일 한 줄씩 써보는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의미 없어 보였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블로그에 글이 100개가 넘었고 이제는 글쓰기가 제 삶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처음 시도해 보는 순간엔 어색하고 낯설 수밖에 없지요. 저도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무수히 많은 글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지만 그 반복이 있었기에 글의 구조와 리듬을 익힐 수 있었고 내 안의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 흐르는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흙먼지 가득하고 가시덤불에 찔릴지도 모르지만 몇 번 오가다 보면 그곳에도 발자국이 생기고 나중엔 다른 이들도 따라올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이 됩니다.


사람들은 종종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사실 두려운 건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혼자 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 남들은 다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나만 딴 길로 간다는 느낌은 누구에게나 큰 부담이 되죠. 저도 첫 이직을 고민할 때 기존의 회사는 안정적이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지만 저는 일이 점점 루틴으로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직을 원하는 곳은 모험적인 환경이었고 제가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여러 번 시뮬레이션하고 결국에는 한 문장을 스스로에게 반복하며 선택을 했습니다. '지금 안 가보면 평생 궁금할 거야.'


나만의 길을 만든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길을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들과 같은 길을 걷더라도 그 안에서 나만의 방향을 찾는다면 그것 또한 나만의 길입니다. 중요한 건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죠.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이 길이 내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하나 더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만들려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고들 하죠. 물론 용기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끈기와 반복입니다. 단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작은 선택이 이어지고 그 선택을 견뎌내는 힘이 모여야 진짜 변화가 만들어집니다. 마치 하루하루 길을 다듬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처음엔 아무도 관심 없지만 어느 날 누군가 “이 길 참 좋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인생은 방향입니다. 길을 잃는다는 건 방향을 잃는 것이지 속도를 잃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간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늦는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만의 속도 여러분만의 시선 그리고 여러분만의 기준으로 한 발씩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길 위에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정말 여러분이 선택한 길인가요? 아니면 그냥 앞사람을 따라 걷고 있는 중인가요? 만약 후자라면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오른쪽 언덕 너머에 여러분만의 작은 길이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전 02화매일이 새해 첫날의 마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