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이유도 없이 휴대폰 화면을 켜는 순간이 꽤 많습니다. 알림이 없어도 습관처럼 손이 먼저 가더군요. 짧은 영상 하나, 뉴스 한 줄, 메시지 몇 개. 그렇게 20초, 30초씩 잘게 쪼개진 시간들이 쌓입니다. 이상하게도 많이 봤는데도 남는 건 별로 없고 마음은 더 조급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요즘 일부러 긴 문장을 읽고 있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하루에 10쪽씩 읽는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총 5,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처음엔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7~8년 전에도 1권을 억지로 끝까지 읽고는 “아직은 내 책이 아니구나” 하고 덮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숙제처럼 읽었고 감동도 여운도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여전히 문장은 길고,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수십 쪽이 흘러가기도 합니다. 예전 같으면 “왜 이렇게까지 길게 써야 하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그 길이가 오히려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내는 찰나를 끝까지 붙잡아 보려는 집요함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책 속에 이런 비유가 나옵니다. 낮에는 도시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던 수도원의 종소리가 저녁의 고요 속에서는 또렷이 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종은 원래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우리가 듣지 못했을 뿐이라는 거죠. 그 문장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에도 이미 울리고 있는 종소리가 있지 않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화면을 넘기느라 놓쳐버린 신호들이 있지 않을까.
저는 단문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프루스트의 긴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제 뇌가 오랜만에 깊게 숨을 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장 처음을 기억하고 있어야 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놓치면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과정 자체가 훈련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긴 책은 지루하다”, “어렵다”, “시간 낭비다”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긴 문장이 반드시 어려운 것은 아니더군요. 오히려 천천히 읽다 보면 그 안에서 제 감정과 기억이 건드려지는 순간을 만납니다. 우리가 조급해진 것은 책이 길어서가 아니라 짧은 자극에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요즘 저는 책을 ‘정보를 얻는 도구’라기보다 ‘호흡을 되찾는 공간’으로 느낍니다.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다음 장면을 보여주지만 이 책은 한 장면을 오래 붙들게 합니다. 그 사이에서 제 마음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집니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던 습관도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도 잠시 내려놓게 됩니다.
물론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멈출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완독이 아니라 긴 문장을 따라가며 제 안의 조급함을 조금씩 다스리는 시간이니까요. 예전에는 “이걸 다 읽어야 의미가 있지”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오늘 10쪽을 읽으며 충분히 느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이 인생을 단번에 바꿔준다고 말하는 건 과장이지만 제 성급함을 조금 누그러뜨려준 것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히 치료제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빠르게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긴 호흡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10쪽을 읽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혹시 여러분도 마음이 조금 분주하다면 한 번쯤 긴 문장에 몸을 맡겨보셔도 좋겠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어쩌면 아직도 우리 곁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