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 아마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해본 말일 겁니다. 일이 몰릴 때마다 책은 늘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이었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제대로 읽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시간이 생기면 책은 더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휴가를 가서도, 주말 오후에도, 책을 펼쳐놓고 딴생각만 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혹시 비슷한 경험,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단순히 제가 게을러서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정신없이 바쁜 시기에 오히려 책이 잘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마음도 조급했는데 이상하게도 책 속 문장들이 또렷하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여유가 있어야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유로운 상태에서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집중력을 끌어올릴 동력이 부족해집니다. 반대로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는 ‘지금 이 시간을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고 그 압박이 집중력을 만들어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순간에 독서가 더 깊어집니다.
저는 한때 “조금만 덜 바빠지면, 그때는 하루에 한 권씩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독서를 미루기 위한 핑계에 가까웠습니다. 조건이 좋아지면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힘든 시기에 읽은 책들은 유독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단순히 내용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그 문장들이 제 상황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치고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읽은 한 문장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할 때 읽었던 책들은 읽는 동안은 좋았지만 금세 잊히곤 했습니다.
독서는 ‘좋은 상태에서 더 나아지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고 돌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서는 여유로울 때보다 오히려 힘들 때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서 의미 있는 변화는 대부분 편안한 순간이 아니라 불편하고 버거운 순간에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할 때, 지금 상태를 벗어나고 싶을 때, 그때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집중하게 됩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그 안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힘이 강해집니다.
요즘도 여전히 바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하루는 늘 짧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나중에 읽어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됐습니다.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더 의식적으로 책을 펼치려고 합니다. 완벽하게 읽지 못해도 괜찮고 한 페이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결국은 방향을 바꾼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지금은 너무 바빠서…”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그 생각을 한 번만 뒤집어 보셨으면 합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책이 잘 읽히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한 페이지가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인 것 같습니다.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이 불완전한 순간에서 시작하는 것. 어쩌면 그게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