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 위험해진 시대, 나는 괴물이 되기로 했다

by 오동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조금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괴물이 되라니, 너무 과격한 표현 아닌가?’

혹시 여러분도 비슷하게 느끼셨나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늘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라왔습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주어진 틀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배워왔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삶이 오히려 나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고, 괜히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살아가려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최소한 뒤처지지는 않을 거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서는 늘 불안이 있었습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괴물이 돼라’는 말을 다시 곱씹어보니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이건 누군가를 해치거나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라 남들이 쉽게 포기하는 지점에서도 끝까지 버티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집요하게 밀고 나가는 사람. 그런 존재를 비유적으로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저 사람 진짜 괴물 같다.”
그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놀라움과 존경이 섞인 표현에 가깝습니다. 매일 운동을 빠지지 않는 사람, 몇 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 포기할 법한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 결국 그런 사람들이 남들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누구나 비슷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비슷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차이를 만드는 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집요하게 지속하느냐’ 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제 예전처럼 ‘적당히’ 살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하고 가끔은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괴물처럼 살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조금 더 버티게 만들고 한 번 더 시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쌓여 결국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도 조금씩 체감하고 있습니다.


결국 ‘괴물이 돼라’는 말은 특별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집요해지고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라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혹시 오늘 하루도 남들처럼 흘려보낼 예정이셨다면 한 번쯤 이렇게 선언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오늘, 조금 더 괴물처럼 살아보겠다.”

그 한 문장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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