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빈 페이지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컴퓨터 화면 속 하얀 문서는 마치 눈 덮인 들판 같았습니다. 깨끗하고 아무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순수한 공간.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머뭇거립니다. 첫 글자를 적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니까요.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일기장을 펼쳐 놓고, 메모장을 열어 놓고, 또는 SNS 게시글 작성창을 띄워 놓고...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닫아버린 경험 말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글쓰기는 언제나 선택받은 소수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 글솜씨가 뛰어난 사람들,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들 말입니다. '나는 일반인 일 뿐, 글 쓰는 사람은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 자체가 제 스스로를 가두는 '프레임'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글을 읽습니다. 자기 계발서, 소설, 뉴스 기사, SNS 게시물까지.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의 생각을 받아들입니다. "틀을 깨야 한다",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와 같은 조언들을 접하고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글 역시 누군가의 생각일 뿐입니다.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저자의 관점에서 쓰인 글이죠. 다른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하는 그 조언 자체가 또 하나의 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제가 보험 관련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동료가 한국보험신문에 기고할 글이 급하게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했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내가 무슨 글을 써?'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키보드 앞에 앉아 제가 실제로 겪었던 사례들을 적기 시작하니 글이 술술 풀려 나왔습니다. 화려한 수사나 문학적 표현은 없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이야기들이었기에 누구보다 생생하고 정확했습니다.
첫 칼럼이 게재된 후, 1년 이상 글을 써오고 있으니 나쁘지는 않은 거겠죠?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경험과 관점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 더 큰 공감과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의 경험을 글로 기록하기
우리는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출근길에 만난 이웃과의 짧은 대화, 업무 중 발생한 예상치 못한 문제와 그 해결 과정, 퇴근 후 들른 카페에서 목격한 작은 감동까지. 이 모든 순간들은 우리의 일부가 되고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결국 잊히게 됩니다.
글쓰기는 이러한 경험들을 붙잡아두는 방법입니다. 메모장에 적는 짧은 문장, 일기장에 남기는 하루의 기록, SNS에 올리는 순간의 감정...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쓰는 행위' 자체입니다.
제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업무 관련 메모 수준이었습니다. 복잡한 보험 청구 건에 대한 처리 과정을 기록하고 나중에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참고하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이 단순한 기록들이 모여 나중에는 칼럼의 소재가 되었고 더 나아가 제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글로 정리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업무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제게 일종의 치유와 위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업무 중 겪는 스트레스, 고객과의 갈등 상황, 때로는 무력감까지... 이러한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방식 찾기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입니다. 문법이 정확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고... 이런 기준들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특히 자신을 위한 글쓰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처음에 칼럼을 쓸 때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고, 복잡한 문장 구조를 만들고, 마치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글을 썼죠. 결과적으로 그 글은 제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모방한 가면을 쓴 글이었을 뿐이죠.
글쓰기에는 정해진 방식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고, 또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정리된 생각을 적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디지털 기기를 또 다른 사람은 아날로그 노트를 선택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은 '발견'입니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도 몰랐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막연히 느끼고 있던 감정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됩니다.
제 경우, 보험 청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객의 불만 사례들을 글로 정리하면서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었죠. 보험사는 당연하게 여기는 절차와 조건들이 고객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발견은 제가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결과적으로 업무 효율성과 고객 만족도가 모두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글쓰기는 생각의 확장을 가져옵니다. 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관된 다른 주제로 관심이 확장되고 이러한 지적 호기심의 확장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자신감을 줍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경험, '내 생각에도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은 글쓰기를 넘어 삶의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적어집니다.
첫 글자, 그 용기 있는 시작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 행위를 넘어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여정입니다. 매일의 경험을 글로 남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삶을 더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보험 관련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것이 제 인생에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줄 몰랐습니다. 단순히 업무 지식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제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새로운 기회와 관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이 순간, 첫 글자를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화려하고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 문득 떠오른 생각, 마음을 스친 감정... 무엇이든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용기입니다.
빈 페이지 위에 첫 글자를 적는 순간, 여러분은 이미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오늘도 빈 페이지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로 그 페이지를 채워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