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해?”
실직하고 나서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조급함,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함, 그리고 ‘나만 이렇게 멈춰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초조함이 그 짧은 질문에 몽땅 실려 있더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멈춰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스스로를 밀어붙였습니다. 뭔가를 빨리 시작해야 할 것 같았고 그래야 앞서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제 눈에 들어온 게 ‘중국 무역’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중국에서 유학했고, 중국어에도 자신 있었으니까요. 마침 주변에 중국 무역업을 하시는 분도 계셔서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분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비 없이 방향도 확실히 잡지 않은 채로 일단 질러버린 거죠.
시작은 빨랐습니다. 사이트 만들고, 제품 알아보고, 샘플 들여오고, 여기까지는 속도감 있게 잘 흘러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이 정말 나한테 맞는 일인지도 확신이 없고, 시장 조사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기본적인 방향이 없었습니다. 남들 하는 거 따라 하다가 결국 돈만 날리고 시간도 잃고 마음에 큰 상처 하나 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속도는 빠른데 목적지도 모르는 차를 타고 있었던 셈이었어요.
이 경험을 통해 '속도'가 전부는 아니라고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더 멀리, 더 많이 헤매게 된다는 걸 그제야 느꼈습니다. 꾸준하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전제조건이 바로 '방향'입니다. 방향 없이 빠르게 가는 건 결국 엉뚱한 곳에 도착하게 만드는 지름길일 수도 있습니다.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이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길이었다면 그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허무하겠어요?
중국 무역 경험 이후로 저는 방향을 먼저 잡는 데 시간을 많이 씁니다. 예전엔 무언가를 오래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저렇게 느릴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걸 압니다.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지금 준비가 되어 있는지,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 시간이죠. 물론 여전히 성격이 급합니다. 무언가 떠오르면 당장 실행에 옮기고 싶고, 내일을 기다리는 게 답답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잠시 멈추는 법도 배웠습니다. ‘이게 맞는 방향인가?’를 자문하면서잠깐 멈춰서 방향을 잡는 건 결코 게으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효율적인 전략일 수 있어요. 산을 오를 때도 그렇잖아요. 아무리 빨리 올라가도 엉뚱한 산을 오르고 있다면 그건 체력 낭비일 뿐이에요. 방향이 맞다면 속도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심지어 출발이 느렸더라도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어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지금 뭔가 시작하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는 분이 있을 거예요. 주변에서 자꾸 조급하게 굴지 않나요? 빨리 뭐라도 하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맞는 말 같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아무거나 시작하는 건 오히려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어요. ‘가만히 있는 것도 용기’라는 말을 저는 요즘 정말 실감합니다.
준비 없는 속도보다 잠시 멈춰 방향을 확인하는 용기가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설령 출발이 늦더라도 전보다 훨씬 빠르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믿으세요. 저도 그 실패를 통해 다시 방향을 잡았고 지금은 조금씩 다시 걸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번엔 길을 잃고 있지 않다는 안정감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누가 먼저 가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갈 수 있느냐’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속도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