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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별 Mar 15. 2021

오늘도 아이는 자란다.

좌충우돌 육아 적응기

주변 엄마들이 물었다. “왜 아직 어린이집 안 보내고 데리고 있어요?”, “육아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있어요?”, “얼른 보내요. 보내야 엄마가 편해!”

딱히 대답을 듣고 싶다기보다는 이상하다, 신기하네? 같은 느낌이 드는 말투의 질문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말은 못 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어린이집이 아이들이 반드시 가야 하는 필수코스는 인 건 아니지 않나?’ 내 생각이 잘못된 건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가 울면서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다 울면서 적응하는 거라는 말들이 불편했다. 어린이집에 가면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을 굳이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육아에 대단한 지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급하게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만 세 살까지는 아이를 직접 보살피고 싶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도 나의 계획처럼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전의 마음과는 다르게 갓 두 돌이 지난, 우리나라 나이로 3살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게 되었다. 갑작스레 둘째가 생겼고 남편의 근무지 변동으로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급격하게 마음과 체력 모두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작년 6월. 아이는 처음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걱정했던 엄마 마음과 달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울면서 들어가지 않았다. 적응 기간에도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과 즐겁게 놀이를 했다. 시간을 늘려 점심까지 먹고 하원 하기로 한 날, 마음이 이상했다. ‘이제 나랑 같이 점심 만들어 먹는 건 못하겠네’, ‘내가 못 보는 내 아이의 모습이 생기겠네….’ 아쉬웠고 서운했고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서럽게 울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청승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때의 내 마음은 그랬다. 분명 속상했다.


흔들렸던 엄마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일주일을 즐겁게 놀고 오던 아이는 이제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다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를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며 어린이집 현관에서 서성이기를 몇 차례.

아이가 울어도 안고 들어가겠다는 선생님 앞에서, 엄마 가시면 잘 논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선생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그 무렵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어린이집은 긴급 보육으로 전환되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등록만 해둔 채 그렇게 언 1년이 지났다.


올해, 아이는 네 살이 되었다.

유독 일찍 일어난 월요일 아침, 아이에게 지나가듯 질문을 건넸다.

“로하야, 오늘 어린이집 놀러 갈까?”

그동안 백번의 물음에도 일관되게 안 간다고 이야기하던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겠다고 말했다. 이럴 수가!

“로하야, 얼른 양치하고 준비해야 어린이집 가지!”라는 말에 아이는 신이 나서 협조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 나 여기서 밥 먹고 갈게. 시간 되면 데리러 와!”라고 말하고 쿨하게 돌아서는, 씩씩하게 들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는데 예전 같으면 울컥했을 내 마음이 이상하게 시원해졌다. 같이 점심을 먹지 못해서 속상하지 않았고 내가 해주는 것보다 잘 먹고 오겠지 싶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는 빨리 어린이집에 가자며 발길을 재촉했다. 현관에서 스스로 서둘러 신발을 벗었고 선생님과 친구들의 손을 잡고는 내게 손을 흔들며 밝은 표정으로 쏙 들어갔다.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마음이 놓였다.


아이가 행복하게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 올까? 과연 내 선택이 틀린 것일까. 정말로 울지 않고 하는 적응이란 없는 것일까? 주변 선배 엄마들의 말처럼 내가 한 선택이 유난스러운 선택이었을까.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을 매 순간 사랑으로 품어주고 싶었지만 어려운 순간들이 꽤 자주 있었다. 육아가 오롯이 나의 몫으로 느껴질 때면 부담스럽기도 했다. 도움받을 곳이 없는 나에게 어린이집이란 육아의 짐을 나누어 가져 줄 하나의 수단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아이의 두려움이 아니라 엄마인 나의 두려움이었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엄마의 두려움이 아이이게 고스란히 전달돼 아이도 어린이집 앞에서 자꾸 눈물을 보였던 건 아니었을까.


시작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설렘이든 두려움이든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엄마의 준비된 마음과 아이의 받아들일 마음이 조화로운 순간이 아이도 엄마도 시작해도 좋은 순간이 아닐까. 분명한 건, 아이는 매일 자란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이를 오롯이 믿어주는 일.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같이 성장하는 일이라 되새겨본다.

종일 즐겁게 뛰어논 아이는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졸려하는 아이 등을 토닥이며 슬쩍 물었다.

“로하야, 우리 내일도 어린이집 놀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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