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생지옥이 있다면 틀림없이 여기 일거야.’
출근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옥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마주하고 있는 흰 벽에 힘없이 기대어 영원히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지 않길 바라면서 이 회사에서 계속 버티는 건 나를 학대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생지옥이 있다면 틀림없이 여기 일거야.’
나는 나를 학대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다녀야 할 회사인가 고민했다. 회사가 나보다 훨씬 직급이 높고, 회사 내에서 입지가 공고한 그 사람을 버리고 나를 선택할 리가 없었다. 남이사 얼굴만 봐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알고 있었다. 자기가 교묘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걸 모를 만큼 멍청하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무너지는 만큼 남이사는 기세 등등해지고 있다 는 것, 내가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남이사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
나는 알면서도 태연한 척을 할 수가 없었다. 발악하는 심정으로라도 태연한 척을 했어야 했는데 그럴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교활한 사람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보다 더 교활하게 굴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내가 진급을 해도 그 사람은 내 위에 있을 것이고, 팀만 바뀌면 내 위에 팀장이 누구냐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하고, 라인 잘 타라는 말을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이 회사에서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괴롭혀 나갈지 눈에 빤히 보였다.
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 이름 석자를 새기고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릴까도 생각했다. 매일을 그 얼굴을 마주하며 괴롭힘 당하고, 그 이름 세 글자를 새기고 죽을 생각을 매 순간마다 해대니 세포 속부터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엿을 먹일 수 있었다면 나는 뛰어내렸을 것이다. 면담할 때 녹음이라도 해 둘 걸. 조사해봤자 어떻게든 빠져나갈 것 같았다.
‘내가 잘못되고 나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서 우리 가족들만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이 버티고 있던 와중에 나는 승진 시험 대상에서 제외당했다. 너무 억울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든 개입한 거라고 확신했다. 우리 과장이 내 얼굴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슬슬 피하는 걸 보니 저 사람도 허수아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핑계를 대며 나를 피하는 과장을 붙잡아 변명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과장은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승진 대상자 선정 회의에 우리 팀을 대표해서 자기 대신 남이사가 들어갔으며, 승진 시험 대상자는 자기도 남이사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너무 억울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온 것이 모두 물거품이 돼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잘못된 걸 얘기했을 뿐인데. 차라리 피해망상이라고 착각한 것이길 바랬던 남이사의 괴롭힘이 확실해졌고, 그 힘은 내가 걱정한 것만큼이나 셌다. 무력했다. 그 사람이 있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점점 근무하는 시간 동안도 제정신을 잡고 있기 힘들어졌다. 남이사 기척만 들려도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졌고, 일을 하는 동안도 누가 와서 말만 걸어도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다 큰 어른이, 직장인씩이나 되어서 근무 중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꼴이라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 정도면 내가 아픈 게 아닌가라는 생각은 한 번쯤 했어야 했는데, 나는 왜 더 강하지 못할까 나를 채찍질 해대며 나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했다. 남이사를 이겨 먹을 만큼 교활하고 영악하지 못한 것도, 부당한 일이 있어도 적당히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것도, 총대를 맸으면 담대해야 할 텐데 그만한 그릇이 못 되는 것도, 모든 것이 어설프고 어중간한 내 탓이라며 나를 탓하기만 했다.
‘지금이라도 이름 쓰고 뛰어내릴까, 어떻게든 해결이 될까?’
일단 회사를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시작한 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시도해보고 싶었다. 사내 핫라인에 메일을 보냈다. 조사를 나오면 또 어떻게 될지 뻔했다. 그나마 잠잠해진 팀장과 과장이 또 나를 따돌리고 괴롭히기 시작하겠지. 지금 시점에서 감사가 나오면 누가 신고했는지 뻔할 뻔 자 아닌가. 나는 감사는 절대 안 된다고 얘기하며, 그냥 내가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는 건지를 물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랑 통화한 그 사람도 내가 입사 연수를 했던 법무팀의 직원일 뿐이고, 어차피 이사를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소연하듯 얘기를 털어놓았지만 해결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른 지점으로 간다고 해도 큰 물에 그 사람이 버티고 있는데 내가 이 조직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불 보듯 뻔한 거였다.
퇴근을 하면서 다음날 남이사에게 해야 할 업무 보고를 생각했다. 남이사에게 잘 보이려는 눈치 빠른 대리들이 어떻게든 나를 잡아먹으려고 할 것이다. 그 눈빛과 목소리를 생각하니 나는 심장이 조여왔다. 버스 안에 앉아있었는데 거대한 손이 내 목부터 갈비뼈를 꽉 쥐어짜는 것 같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기억이 더듬어지는 순간은 내가 응급실에 있을 때였다. 응급환자가 아님에도 간호사 한 분이 옆에 계속 서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정신없이 계속 울고 있었고 침대에는 휴지 뭉치가 쌓여 있었다. 간호사는 나에게 괜찮은지 계속 물었고, 의사는 나에게 보호자 전화를 물어봤다.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링거 바늘이 꽂혀있는 내 팔과 엄마의 걱정 어린 눈빛이었다. 회사는 연차를 쓰고 며칠 쉬기로 했다.
대표님께 전화가 왔다. 사내 고발한 내용을 들었고, 내가 팀장들에게 추궁을 당했다는 것과 기타 내용들을 얘기하며 다른 지점으로 발령도 가능하고, 내가 원하면 본사에서 계속 근무도 가능하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그 회사를 다니면서 하던 일은, 내가 꽤나 좋아하는 일이었다.
즐거운 순간들이 곳곳에 숨어있던 일이었다. 그 일이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것일지는 몰라도. 내가 일하면서 후임들이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해서 만들어온 업무 양식들, 사무실 곳곳에 남아있는 내 흔적들, 내가 한 일을 알아주던 몇몇의 동료들, 그 안에서 정말 정이 들고 친구가 되어버린 사람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주고받던 작은 농담들로 웃을 수 있었던 어떤 날들, 힘든 날이면 같이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셔주며 털어버리던 동료들. 회사 일이 한창 재미있고 처음 승진을 했을 때,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 너무 마음이 잘 맞았을 때, 출근할 때 느꼈던 설렘을 선명히 기억한다.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생활비만 아니면 돈 안 받고 일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즐거워하고 좋아했던 일이었다.
좋아하는 것은 너무 아프다. 회사 앞에 내가 정말 좋아하던 떡볶이 집의 나를 이뻐해 주던 떡볶이집 삼촌, 쉬는 시간에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시체처럼 엎드려 있는 나에게 새로운 아이스크림이나 디저트가 나오면 몰래 맛 보여주곤 했던 디저트 집 아저씨들, 밥 대신 커피로 식사를 때우면 간식을 챙겨주던 카페 언니들까지. 단골집 만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가까운 곳에 자주 가는 곳을 정하면 거기만 찾아가고, 인사하고, 말 걸고, 정 붙이던 내 성격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만두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망가지는 것보다 그런 것들이 더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그건 누가 봐도 아니었겠지만, 내 일상을 채워주고 버텨주던 따뜻함들이 너무 많이 녹아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퇴사를 결정하고도 한참을 후회했다. 아마 아직까지도 조금은 후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더 교활하게 굴 걸 그랬나.’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나서도 후회하긴 했다. 그렇지만 난 교활하게 굴 수 있는 깜냥이 안 되는 인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내 인간성을 지키는 선택이었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 같겠지만 도망치는 게 아니라고, 너를 지키는 거라고 해준 친구의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물론 한편으론 너는 도망친 거고 합리화하는 것뿐이라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힘들 때조차 나는 나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라도 그저 내 편이 되어줘도 괜찮았을 텐데.
내가 좀 영악했으면 인생의 몇몇 사람에게 멋지게 엿을 먹여줄 수 있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울증은 겪고 나아지려고 노력한 2년간의 기록.
소설 형식의 에세이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단단하지만 뾰족하지 않은 마음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