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상에서 도망치기

일 안 하고 여행만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by 최서연






퇴사하자마자 보란 듯이 여행을 갔다.



출근을 안 해도 되는 햇살 좋은 아침부터 바람이 선선한 저녁까지 나는 게으름을 피우며 어느 지역을 갈지, 어떤 숙소를 갈지 둘러보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기도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지금 출근했으면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다시 어떻게 죽어야 가장 효과적 일지 생각하며 세포가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을 텐데.’


막상 회사를 그만두니 하루가 너무 길었다. 그동안 일에 치여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고,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일하면서 점점 나라는 사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일이 나의 반 이상이 되면 안 되겠구나.’


고민 끝에 얻은 깨달음을 겨우 얻었는데, 실천하기란 그보다도 훨씬 어려운 것이었다. 실천하지 못하는 깨달음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나를 공격하는데 쓰이기만 했다. 깨어 있는 시간 중에 최소한 9 시간 30 분, 연장근무를 하게 되면 그 이상을 머물러 있는 곳이었고, 일주일에 5 일은 그렇게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휴무인 날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고 저녁에 일어나기 일쑤였는데, 어떻게 마음을 먹어보려고 해도 일이 나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자꾸만 나의 대부분을 채워 버리기 시작하고 나니, 그곳에서 인정받는 것이 내 존재의 이유로 직결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 존재도 아닐 수도 있는 내가 소속해 있는 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존재감을 가지고 자리매김을 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좋은 평가로는 만족이 안돼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고 싶었다. 누구에게 말해도 알아줄 직급, 잘하는 만큼의 급여, 답답하게 일처리를 해대는 상사들보다 내가 훨씬 더 똑똑하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 그러면서도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고 싶었던 인정 욕구까지.


사람을 망치는 모든 종류의 욕심으로 똘똘 뭉쳐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리고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었다. 퇴사를 했다고 해서 그런 욕구들도 한순간에 해소되지는 않았다.


‘남은 사람들이 뭐라고 흉을 볼까. 또 무슨 없는 얘기를 만들어내서 나를 후려칠까.’


남은 사람들끼리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어낸 소문은 사실이 되고 그게 곧 내 평판이 되겠지. 어차피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도 그 생각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친하게 지내던 같은 부서의 언니가 나의 퇴사 소식에 사람들이 안 좋게 입방아 찧는 것이 너무 듣기 싫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 같다. 언니도 속상해서 한 말일 텐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 잘 아는 사람이니까. 그 순간에는 왜 나한테 이런 말을 전해서 신경 쓰이게 하나 싶어 회사 얘기는 아예 하지 말아 달라고 모진 말을 내뱉었다.






그런 무거운 감정들을 뒤로하고 나는 캐리어를 싸 들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외국어도 할 줄 모르는데 혼자서, 그것도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은 어떨지 두렵고 설레면서도, 당장에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아도 된다는 사실과, 마음먹으면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기뻐하려고 노력했다. 퇴사하고 자랑할 거리가 필요한 거였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인데, 내가 회사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옆에 있지도 않은 회사 사람들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받고 있을 걸 생각하니 너무 분했다. 그런 나 자신이 초라해질까 봐 더 급하게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둘이 가도 비싼 가격의 숙소와 조식을 예약하면서 퇴사했다는 기분에 한껏 취하고 싶었다.


처음 가보는 다른 나라 공항에, 낯선 풍경들. 글씨를 읽을 수가 없으니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헤매고 찾느라 정신없었던 아침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회사 생각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오면서 찾아보았던 인터넷의 글을 참고해 꼭 먹어보아야 할 간식거리를 챙겨서 열차를 탔다. 생각보다 좋은 날씨의 바깥 풍경을 보면서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을 먹었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건물들, 거리들, 나무들을 보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간식도 맛있었고. 사진도 찍고, 신나고 좋은 감정을 다이어리에 끄적거리기도 하면서 오사카에 도착했다.




일 안 하고 여행만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신나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쇼핑몰에도 들어가 보고, 다른 나라 스타벅스는 어떻게 되어 있나 괜히 한번 들어 가보기도 하고, 신기하게 생긴 신호등 사진을 찍어보려고 같은 횡단보도를 3번이나 다시 건너면서 오사카를 구경하다가 목적지인 교토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출발했다. 신기하게 생긴 버스권 자판기도 한번 사진 찍어보고, 환전한 돈으로 버스권을 사서 버스를 탔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나 혼자 이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니 스스로가 너무 대견했다. 일본을 잘 아는 언니한테 수시로 카톡을 해서 물어보긴 했지만 말이다.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는 정원이 예뻤고, 샤워실과 세면대도 깨끗했다. 도미토리 형식의 게스트하우스는 처음 가보았는데 이불이 너무 폭신해서 한낮이지만 잠이 들고 싶은 정도였다. 3 층의 공용 공간은 넓은 좌식 탁자가 있고 앉아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앉아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정도로 큰 창문에 들어있는 풍경도 동화처럼 예뻤다. 푸른 나무와 돌길, 사이사이로 내가 좋아하는 산사의 처마들이 보였다.

여행 계획을 짜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첫날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교토는 여행객들이 많아서 붐비기는 했지만 소란하지는 않았다. 곳곳에서 들리는 종소리와 유카타와 나막신을 신고 돌아다니는 관광객이 많아 돌 길에 부딪히는 나무소리가 타닥타닥, 잔잔하게 깔려있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나를 맞아주었다. 줄지어 있는 기념품 가게 중에는 향을 파는 곳이 많아서 곳곳에서 향 냄새가 풍겨왔고, 나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처음으로 들어간 가게는 소바를 파는 곳이었다. 타다미로 되어있는 방에 앉아 상을 기다렸다. 일본어는 할 줄 모르지만 스마트폰으로 찾아볼 수 있는 간단한 단어들과 손가락으로 주문을 마치고 일본에서의 첫 끼니를 기다렸다. 그때까지는 혼자라는 사실을 별로 인식하지도 못한 것 같다. 그저 설레고 즐거워서 정신이 없었다. 소바가 나왔을 때 사진을 찍으며 맛있게 먹고 얼마나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인스타에 자랑을 해댔다.

밥을 먹고 나와 기념품 가게를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귀여운 책갈피를 발견했다. 친구들에게 사다 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아니면 향도 괜찮을 것 같고, 공예 인형들도 있고, 먹을 걸 사다 주는 게 좋으려나? 고민하며 둘러보다가 누구한테까지 사주어야 되는지 생각을 하다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려고 하는 순간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6 일 내내 여기에만 머물 거니까 나중에 생각하자.’


여행 와서까지 고민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스트레스받을 만한 생각들은 다 뒤로 미루기로 했다. 기념품 가게를 나와 사람들이 많이 걸어가는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큰 절이 나와서 일단 입장권을 샀다. ‘기요미즈데라.’ 유명한 절이었다. 교토로 출발하면서 경주와 비슷한 도시라는 말만 듣고 정한 거라 정확히 어디를 들러 야할지 정해 놓지도 않았다. 걷고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니 걸어 다니면서 여기저기 발걸음이 닿는 대로 구경하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갈 때 같이 간 사람이 있었다. 내가 많이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외국이라는 곳을 인터넷으로만 찾아보고, 숙소를 예약하고, 어디를 가볼지 찾아보고, 무엇을 하면서 놀지 정한다는 것이 너무 막막하고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다.

그래도 같이 가고 싶어서 무서운 티는 내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와는 달리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서 무엇이라도 정해 놓아야 마음이 편한 쪽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나의 성격대로 하려고 하면, 나랑 안 가고 말아 버릴 사람이었다. 그때는 무조건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했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혼자 일본을 가려고 인천공항을 와보니 생각보다 해야 할 것이 많았다. 와이파이도 찾아야 하고, 여행사이트에서 미리 구매해 놓은 열차 티켓도 찾아야 하고, 해외 데이터도 막아야 하고, 항공사 카운터에서 짐도 수속하고, 티켓도 발권하고 혼자 하다 보니 그 사람이 생각났다. 같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성격이 다르니까 나 혼자 스트레스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사람이 해준 게 많았다. 비행기 티켓도 예매하고, 짐 수속하고, 기내 반입금지 품목도 빼주고, 환전도 해주 고, 무엇보다 방향감각이 좋아서 나 같은 길치는 혼자 다니면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다시 지나가야 했었는데, 그 사람은 자기도 처음 가봤을 그 넓은 시장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코코넛 아이스크림 집도 두 번이나 찾아주었다.


‘그런 생각 하지 말자.’


애써 시간 내서 여행까지 왔는데 우울해지고 싶지 않았다. 기요미즈데라 안에 동전을 넣고 기도를 할 수 있는 곳마다 동전을 넣고 기도를 했다. 그 사람이랑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그때는 여행이 너무 신나서였는지, 회사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서였는지, 그 모든 소원들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어서 그저 웃음이 나오기만 했다.



기요미즈데라를 나와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 집에 들어가 말차 맛 크림 슈를 주문했다. 너무 달콤해서 하나를 더 사 먹었다. 가고 싶은 데 가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자유롭고 행복했다. 교토 거리를 즐기며 걸어 다니다가 친구가 유명하다고 했던 카페가 있어서 눈여겨봐 두었다.


‘내일 아침에 여기 와서 커피 마셔야지.’


즐거운 계획을 세우고, 시내로 나가 보기로 했다. 저녁이 되고 나서야 기온 거리로 나가서 시내를 돌아다녔다. 내가 있던 동네와는 다르게 백화점, 쇼핑몰 같은 높은 건물이 있고, 다리 아래로는 개천을 따라 이어진 길과 그 길을 둘러싼 카페들의 불빛이 이어져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군것질을 있는 대로 주워 먹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다. 큰 편의점에 들어가 어묵 바에서 어묵을 몇 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편의점 음식들과 오는 길에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던 리스트 중에 내가 못 먹었던 것을 골라한 짐을 들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걸었더니 발이 피곤했다. 3층에 올라가 어묵과 맥주, 주먹밥을 먹으면서 창 밖을 내다봤다.


‘평화롭구나.’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가로등 불 말고는 요란한 조명이 없는 동네였다. 바람이 살랑거리면서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푹 자고 내일 일어나면 또 어디를 돌아다닐지 생각해봐야지.’


오늘은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여행 내내 계획하고 고민하느라고 머리가 아픈 일은 무조건 멈추고 미뤄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신사에 동전을 넣고 빌었던 내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다이어리에 끄적이며 폭신한 이불속에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