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게 적성에 맞는 건가. 그래서 인생도 이렇게 헤매나.
잠이 깼지만 폭신한 이불을 덮어쓰며 늦잠을 자기로 했다.
도미토리여서 그런지 칸마다 커튼이 있지만 여행객들이 들고나는 소리는 새벽부터 났다. 외국 사람인 것 같았다.
‘친구들끼리 왔나 보구나. 떠나는 날인가 보다.’
조금 늦장을 부리다가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한 뒤, 어제 가보기로 했던 그 카페를 찾아 나섰다. 길은 잘 모르지만 일단 걸어가면서 찾아보기로 했다. 조금 헤매더라도 길을 한번 더 구경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계속 걷다 보 면 나올 것 같았는데, 분명 비슷한 길을 지나서 이 주변인 것 같긴 한데 당최 나오질 않았다.
여행할 때는 어디쯤 인지만 어렴풋이 알고 여기 갔다, 저기 갔다, 같은 길을 또 지나가기도 하면서 찾는 게 좋다. 내가 가보지 못했을 새로운 길을 지나갈 수도 있고, 같은 길을 또 걸어가면서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이 길의 이쁜 구석을 찾는게 여행의 즐거움이 아닌가. 걸어 다니는 것만큼이나 길을 잘 살필 수 있는 것도 없고, 낯선 곳에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다. 조금 헤매면 어때.
근데 아무리 헤매도 못 찾고, 덥거나 춥고, 배가 고프고, 발이 아프면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한다. 그날 아침은 빨리 커피를 먹고 싶은 마음에, 이 주변인 것 같은데 죽어도 못 찾는 내 방향감각에 항복하고 구글 맵을 켜서 찾아갔다. 지도를 켜보니 바로 옆 블록이었는데 내가 그 주변을 계속 헤매면서 못 찾은 것이었다. 방향감각도 없는데 걸어 다니면서 찾아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나에게 짜증이 났다.
헤매는 게 적성에 맞는 건가. 그래서 인생도 이렇게 헤매나.
커피를 들고 큰 원형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구경했다. 커플로 온 사람도 있고, 친구들끼리 온 사람, 가족인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 웬일인지 그 아침, 그 카페에는 다들 얘기할 사람이 있어 보였다.
커피를 마시다가 심심해지기도 하고, 할 일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서 친구의 여행 잘하고 있냐는 안부 문자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한껏 즐거워 보이는 사진들을 골라서,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골라서 전송하고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는 주변에 가볼만한 곳들을 인터넷으로 뒤적뒤적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핸드폰에 온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 좋아 보인다는, 얼굴에 살이 올랐다고, 맛있는 거 많이 먹었냐는 친구의 말에 내 기분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퇴사 직전까지 스트레스로 살이 많이 빠진 상태이긴 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스트레스 때문에 보기 안 좋게 말라가던 차라 좋아 보인다는 뜻으로 말한 거였을 텐데. 갑자기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의 내 모습 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살쪄서 왔다고 하면 어쩌지.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살 빠진 모습 못 봤는데.’
관심도 없을 그 사람이 내가 살 빠진 모습 보면 놀라지나 않을까,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걸로 돌아와 주진 않겠지만 그냥 움찔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점점 살쪘다는 가벼운 친구의 한마디 말에 파묻히고 있었다.
행복이 깨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그 행복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벽돌을 힘겹게, 넘어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며 쌓아 올린 건데, 한 순간에 지나가는 엄한 바람으로 와르르 무너져 버리기도 하니까. 애써 생각을 돌리려고 노력하면서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마음은 항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눈으로는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바리스타를 구경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또 내가 애써 피하려고 했던 생각으로 어느새 새어나가 있었다.
‘그 사람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까? 같이 왔으면 숙소를 거기로 했었으면 좋았겠다. 근데 그 사람은 이 지역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어차피 여행은 끝이 정해져 있고, 여행에서 돌아가면 일상이다. 어떻게든 피하고 있었지만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다시 그 사람을 그리워하겠지. 나는 사실 회사에서 승진하는 것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 사람이랑 헤어지고 나서는 왠지 승진을 해야만 그 사람이 내 가치를 재평가해 줄 것만 같았다. 그래야 그 사람이 나를 다시 봐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회사도 퇴사해버려서 어떻게 인정을 받아야 할지 막막했다. 결국 승진도 못하고, 대책도 없이, 죽을 것 같다는 기분으로 퇴사했다고 또 나를 무시하고 비웃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속이 답답해져 왔다.
‘여행 와서 기분 좋아졌다고 약을 안 먹어서 그런가.’
애써 약을 먹어서 겨우 바닥까지 추락하지는 않은 기분도,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상담은 매번 나갔지만 약은 내 마음대로 먹기도, 안 먹기도 해 버렸다. 그 순간 내가 병원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흔들어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아, 맞다. 나 병원 다니는 사람이지.’
입원을 하라고 할 정도로 고위험도에 속했지만 내가 우겨서 안 한 입원이었다. 폐쇄병동은 그냥 이름만으로도 무서웠다. 거기 가면 내가 정말 잘못된 기분일 것 같았다. 일반 병실에 입원이라도 하라고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입원실이 꽉 차서 다른 병원으로 보내려던 걸, 외래 진료를 꼭 나 오겠다고 약속하고, 응급실에서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꾹꾹 누르고 있던 것이 다시 튀어나와 버렸다. 나를 망치고 있는 직장만 그만두면 다 해결될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외래진료를 가서 한두 시간씩 기다려서 40 분 정도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야 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진이 빠질 정도로 눈물이 나와서 매번 퉁퉁 부은 눈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상담하면서 울었다는 게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대기실에 줄지어 앉아있는 사람과 간호사들을 지나쳐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을 쭈그려 앉아있다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눈물자국을 지우기 위해 화장을 고치고 나와서 무표정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다음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병원을 나와 전철역까지 이어지는 내리막 길에 내딛는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늪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그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 적도 많다. 전철역에 도착하면 계단을 내려가고, 교통카드를 찾아 게이트에 찍고, 전철을 기다려서 집까지 돌아가는 모든 것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그냥 영원히 이렇게 내리막 길을 내려가다가 모든 게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걷는 건 그나마 할 수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계속 걷다가 지쳐버리면 모든 게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내 가방에는 항상 약봉투가 있었고, 매일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약도 있었다. 약을 먹으면 먹는 대로 부작용이 있을 까 봐 걱정되었고,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내 기분이 정상궤도를 이탈해버릴까 봐 무서웠다. 그 당시 나는 아픈 게 분명했다.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여행 끝나면 다시 우울해지겠지.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울해졌는데 뭐.
친구와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카페를 나왔다. 돌아다니면서 아침으로 뭘 먹을까 고민했다. 자꾸만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싶어서 애써, 맛있는 아침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연어 바게트를 시켰을 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스타에 올리려고 사진을 찍으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주 큰 돌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자랑할 게 필요해서 일단 맛있어 보이는 걸 시켰다. 즐거운 것처럼 자랑이라도 하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까.
사치는 대부분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 같다. 사람마다 물욕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내 마음이 힘든 만큼 무언가로 보상받고 싶어서, 평소의 나라면, 평온한 상태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과한 선택을 하면서 어떻게든 이 고통을 보상받았다고 합리화한다. 때로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자체가 짐처럼 느껴져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버티는데 고작 이런 걸로 고민을 해야 하나 싶어 홧김에 가장 지나친 것을 선택할 때도 있다.
맛있어 보이는 바게트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가게를 나와 어제 못 가본 새로운 신사에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다.
‘비싸네.’
생각해보니 입장하는 산사마다 입장권을 사야 해서 그 돈이 꽤 든 것 같았다. 첫날에는 생각 안 하고 막 써댔지만, 어쨌든 여행은 끝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내 통장 잔고가 궁금해졌다.
‘여기까지 와서 이게 무슨 시간 낭비야. 알차게 놀아도 아까운 시간을 걱정하는데에 쓰지 말자.’
그렇게 생각한다고 걱정이 싹 사라져 버리면 얼마나 속이 편할까?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가 기억을 뽑아 놓았던 패시브처럼 내 걱정거리들을 뽑아서 어딘 가에 넣어두고, 그렇게 넣어둔 기억들은 적어도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짜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아, 나를 조금 편하게 놔둘 순 없겠니.’
신사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고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했다.
‘나는 지금 매우 행복하고 즐거운 상황에 있어. 걱정하느라고 마음을 낭비하지 말자.’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내리는 산사를 돌아다니며 원 없이 사진을 찍다가 배가 고파져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우산을 쓰고 슬리퍼를 신은 두 발로 찰랑찰랑 거리는 빗물을 밟으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기분이 다시금 좋아지기 시작했다. 혼자 씩씩하게 여행을 다니는 내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는 말차 빙수 집을 찾아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예쁘고, 빙수도 맛있었다. 챙겨 온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거리를 사들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소고기 찐빵과 맥주를 먹으며 게스트하우스 3 층에서 밤 풍경을 감상했다.
내 침대로 돌아와 잠을 자볼까 하고 누웠는데 낮부터 순간순간 비집고 들어오던 헛헛한 마음이 다시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낮에는 그 마음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냈는데, 조용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이 들면 멈춰지겠지.’
몇 번을 뒤척거리다 일어나서 나가 보기로 했다.
눈에, 귀에, 코에, 입에, 마음에,
새로운 것을 자꾸 담아서 헛헛한 마음이 생길 틈이 없도록 만들어야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본 24 시간 라멘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밤에는 정말 깜깜하고 조용한 동네라서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차라리 무서운 게 나았다. 무서운 동안은 헛헛한 마음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니까. 밤거리를 헤매며 찾아간 라멘 집은 너무너무 맛있었다. 다행히 일행들과 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칸막이 좌석이라서 혼자 있는 것이 불편하지도, 의식되지도 않았다. 야식으로 맛있는 라면을 먹고, 사진을 남기는 동안 헛헛한 마음이 조금은 채워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