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걸러져야 하는 사람인 걸까

by 최서연

요즘 인스타에 그런 글이 많다. 믿고 걸러야 하는 인간 유형, 자존감이 높은 사람 특징 등등. 책 광고를 빌미로 해서 올려진 글들. 사람을 규정하고 나누고 구분지어서 너와 나는 다르고 이런 사람은 걸러져야만 한다고 얘기하는 글들. 그런 글에는 꼭 가정환경 안 좋은 사람은 안타깝지만 보고 배운건 어쩔 수 없다는 꼭지가 달려있다.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있는 것들은 피 뽑듯이 뽑아버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분명 언젠가는 티가 날 거야. 어떤 순간에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같이 있다 보면, 혹은 너무 가까워지면. 분명 내가 한 경험들에서 우러나온 어떤 것이 나한테 티가 날 거야. 죽어도 보이기 싫어. 그런 티 내고 싶지 않아. 누가 눈치채는 것도 싫어.


엄마가 더 심하게 맞는 사이에 전화기를 들고 도망가 방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하고. 계속 그 방 안에서 경찰이 올 때까지 나는 맞지 않더라도 밖에서 맞고 있는 엄마의 소리를 들으며 문을 잠그고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밖에서 맞고 있는데 나는 혼자 이 방에 숨어 있어도 괜찮은 걸까. 외면하는 마음, 혼자 도망쳐온 마음. 밖에서 들리는 소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너무 작고 약한 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많이 힘들고 무거운 죄책감과 공포였다.


요즘 오은영 선생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많이 본다. 세상에 때리는 아버지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너도 겪었다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잘 들 살고 있으니까 나도 괜찮은 거 아닐까 믿고 싶다.


상처가 곧 나는 아니라고, 명상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정말 정말 믿고 싶었다. 지워버리고 싶은 그 경험들이 곧 나는 아니라고 해주세요 제발. 누구에게도 사연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깨끗하고 맑은 마음과 사고방식을 꿈꿨다. 이런 경험이 없는 인생, 이런 생각은 상상하기도 힘든 뇌. 그런 사람을 항상 꿈꿨다.


내가 좋은 것들을 많이 기록하고, 이야기하고, 기억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한테는 좋은 것들만 있는 줄 아는구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조금이라도 안 좋게 보일만한 것들을 꽉 움켜잡고 그 안에서 염증이 나든 썩어 문드러져 피가 나 든 티 내고 싶지 않아서 더 꽉 움켜쥐고 하나도 내려놓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픈 경험은 내가 가진 보석이라고 했다. 결핍과 상처가 있는 사람이 더 아름답기도 한가. 아까는 동생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결핍이 있는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계란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그걸 딛고 이겨내려고 노력해온 수많은 순간들이 쌓여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마음에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기분. 내 어느 구석에 그 얼룩이 묻어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서 언제 보일지 몰라 불안하고 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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