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화원의 화려한 꽃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어
-100에서 시작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100만큼 성장한 게 중요한 거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관대해질 수 있을 때 나에게도 그럴 수 있고, 또 나에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남에게도 그럴 수 있구나.
예전의 나라면 누군가의 그 관대함 마저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믿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했다. 그냥 친하니까 칭찬해주는 거 아니야? 그냥 예의상 좋게 포장해주는 거 아니야? 내가 잘한 부분만 대충 보고 그러는 거지? 설마 내가 안쓰럽고 불쌍해서 그러는 건가? 사실은 내가 더 나아지지 못하게 하려는 거 아니야? 여기에 안주해버리게 만들려는 거 아니야? 까지. 얼마나 많은 채찍질을 나 자신에게 해댔는지. 그럴수록 외로워지는 것도, 괴로워지는 것도 나.
그게 아니라는 걸 내가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냥 마음에서 그렇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어떤 책을 읽어도 깨달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글을 읽어도 와닿지 않겠지만. 그럴 때는 그 동력으로 열심히 나가 보다 보면, 또 나 자신에게 필요한 질주와, 비 오는 날과, 앎이 그냥 올 때가 있다. 그게 오면 나 자신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내 마음이 나에게 반박하지 않으니까.
‘알라는 모든 것이 가장 적절한 때를 알고 있다.’
모든 순간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 얼굴을 한 경험들을 겪으면서 내가 할 것은 무엇을 배웠는가 하고 가볍게 그다음 순간으로 또 걸어가는 것. 아직 가볍지는 않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100에서 시작해서 겨우 발버둥 쳤더니 겨우 0이라는 사실이 억울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다 0에서 시작했는데, 나는 겨우 시작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외롭지 않다. 이건 나와의 게임(?), 남이랑 비교할 것 없이 온전히 내 판이다. 나는 100만큼 올라온 거고 어디서 시작해서 지금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남들은 어디 있는지, 그에 비해 내가 얼마나 덜하고 더한지도.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엔 또 억울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또 잠깐 왔다 갈지도 모르지만 이제 그게 길지 않을 것 같다. 그 생각이 이렇게 억울하지 않게 느껴진 경험을, 지금 쌓았으니까.
‘달은 태양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존재할 뿐이다. 나 자신이기 위해서 애쓰지 않아도, 또는 다른 누군가이기 위해 애쓸 필요도.’
아마 같은 문장을 보고도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깨달음도 똑같은 계기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 깨달은 것은 어떤 설명이나 설득으로 다른 사람한테 전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깨달음을 아무리 듣고, 읽어도 내가 깨치고 마음에 한 번에 와서 닿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그런 깨달음이 과연 내가 이전에 전혀 몰랐던 아예 새로운 것들도 또 아니다. 맞아 맞아 진짜 그런데, 나도 진심으로 그런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알고 더 이상 나를 설득하고 다시 상기시키고 끊임없이 되뇌지 않아도 그냥 자연스럽게 알고 평온한 마음이 되고 싶은데.
사람에게는 모두 각자의 때가 있다. 누군가 알려주려고 해도, 내가 아무리 알려고 해도.
잘 알면서도 우리가 계속 읽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써내는 것은 우리가 평온하지 않은 마음으로 평온한 마음이 되려고 하는 그 여정에서 실패도 하고 실행 착오도 겪고 책도 읽고 글도 써보고 상담도 하고 내 마음도 잘 살펴보고 끊임없이 균형을 찾으려고 하다가 때려치우고 지쳐있거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궁금해하며 공감하기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면서. 지금은 쌓이는지 모르겠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는 순간들을 계속 쌓아나갔을 때 나의 때가 찾아온다. 나도 모르게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설득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여정에 있더라도 그때는 이미 깨달은 것 같은 사람들의 문장을 빌려서 믿어본다. 알고 있었다가 까먹었을 때도 내가 썼던 문장을 상기해본다. 나도 깨달을 그 문장, 내가 믿고 싶은 그 문장, 언젠가는 나에게 스며들 것이다. 지금은 자연스레 알지도 못하고 의심할 때도 많지만 아직은 내가 쌓아가고 배워갈 것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리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