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에, 그것도 아마 사전 예약 구매로 산 책인데 지금에서 읽는 이유는 이제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을 샀을 때는 그렇게 죽을 듯이 우울하지는 않았지만 살고 싶어지는 것 역시 싫었다. 뭔가를 좋아하면 항상 힘들어지니까. 삶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고 싶어 하기 싫었다. 당장 죽을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죽어도 별 상관없는 딱 그 정도가 편했다. 어떤 것에도 미련 가지지 않고 둥둥 떠있는 어느 애매한 지점에서 매일매일 할 일을 그저 충실히 해내면서 지내고 싶었다. 무슨 대단한 희망을 꿈꾸지도, 행복을 바라지도 않으면서.
이따금씩 햇살이 좋은 날 산책을 하며 햇빛에 비친 나뭇잎 색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고, 더운 여름엔 헐렁한 반팔티를 입고 팔랑거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휘저으며 땡그랑거리는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기분이 좋아지면 기록을 했다. 작고 소소한 기쁨으로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딱 그만큼 좋아해야 힘들지 않았다. 꿈도 일도 사람도 인생도. 가끔 기분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구나 딱 그 정도. 그 작은 행복에 잠깐은 정말 취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이게 계속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아야 했고, 파도가 왔다가는 것처럼 다 쓸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믿어야 좀 덜 아팠다. 아니 사실 그렇게 믿는 것도 많이 아팠다.
여전히 사랑하면 아프고 상처받는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상처받아서 사랑하기 싫다, 기대하면 나만 다치니까 기대 안 하고 믿지도 않는다는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흔해빠진 그 사연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 현실을 도피하지도 못하고, 깨고 나가보지도 못한 채로, 그 성긴 땅바닥을 딛고 서서. 그게 서있기는 한 거였을까. 언제 떨어질지 모르고 떠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그 상태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해버리지도 못하는 그 애매한 지점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혹여나 살고 싶어 질지도 모를 책이나 영화, 어쩌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것도 보기 싫었다. 계속 둥둥 떠다니면 날아가버릴 것 같아 매일 규칙적으로 할 일이 있는 것이 좋았다. 매주마다 할 일을 정해놓고 쉬는 날에는 그 일들을 차곡차곡 해내다 보면 어떤 날이든 어찌어찌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참 다행이고 안심하면서도, 못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론가 튕겨나가버리고 싶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살고 싶어 졌다고 말할 자신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그게 무슨 얘기인지 들어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어떤 얘기가 들어있을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이제 그만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