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독 싫어하는 것들
사람마다 유독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자기 일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이 싫었다. 자기 일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사람도 싫어했다. 듣는 사람 기분 생각 안 하고 말을 막 내뱉는 사람한테도 엄청나게 부아가 치민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꽤 어릴 때 어떤 소설을 읽었는데, 자살 시도하는 사람을 엄청나게 혐오하고 폄하하면서 비난하는 내용이 상당히 길게 쓰여있었다. 소설이지만 작가의 자아가 너무 드러날 정도의 서술이라 의아하게 생각했다. 근데 저렇게까지 뭐라고 할 필요가 있나? 그 사람 입장이 되본 것도 아니면서. 그 생각을 오래 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자신의 모습이 아니면 저렇게까지 싫어할 수 없겠구나.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데미안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문장을 보고 소름이 돋은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래, 결국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모습을 내가 유독 싫어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내 안에 있는 모습. 내가 닮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모습, 혹은 내가 모르는 척하고 숨기고 싶었던 내 안에 숨어있던 모습 등등.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안 한 건 일종의 오만이었다. ‘나는 너보다는 나아. 너만큼 징징댈 정도는 아니야. 나는 그렇게 유치하지 않아. 나는 너처럼 징징대지 않고도 버틸 거야. 내 일은 죽어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너한테 도움 같은 거 청하지 않을 거야.’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기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의지하고 싶었던 나약한 나를 이기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더 입을 꾹 다물었다. ‘절대 얘기하지 마, 얘기하면 지는 거야, 저렇게 유치하게 굴지 마 너는.’ 그렇게 나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자기 일이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이 너무 싫었다.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한마디 하는 건데도 꼴 보기도 싫어서 못 들은 척하고, 귀도 막고, 눈도 막고, 마음도 닫은 채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적도 많다. 자기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사람도 비슷한 이유였다. 나는 그렇게 안 하는데, 힘들어도 하고 싶어도 안 하고 혼자서 꾹꾹 참는데 내 일도 도움 청하지 않고 내가 알아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있는데! 그렇게 쉽게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할 수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듣는 사람 기분은 생각도 안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은 다 내뱉는 사람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서 왜 이렇게 까지 화가 나나 한참을 생각해봤다.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고 싶어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의 기분을 망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일까 봐 얼마나 말을 걸러가면서 같은 말도 돌리고 돌려서, 꾹꾹 참고 겨우 겨우 얘기했는데 저렇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어도 사회생활도 가능하고 친구도 많다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동안 참은 내가 너무 억울해졌다. 결국 이것도 억지로 꾹꾹 참고 눌러왔던 나의 모습을 본 것뿐.
명상 선생님이 사람들은 결국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볼 뿐이고, 무언가에 화가 난다면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보고 화가 난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다. ‘너는 나를 공격한 거야, 내가 옳고 너는 틀려.’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해하는 것보다 선을 긋는 게 쉬우니까. 그런 방법으로 나는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다가오지 마, 나 공격하는 사람 싫어.’ 근데 실질적으로는 공격당한 것이 아니다. 진짜 상대방이 공격하려는 의도로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상처받기로 선택하지 않은 이상, 그것은 공격이 될 수 없다고 하셨다.
말로는 알겠는데, 이게 막상 상황으로 닥치면 그 순간에는 억울해진다. 이걸 왜 내가 다 수용하고 이해해줘야 돼? 이건 누가 봐도 공격한 거고 내가 상처받을만한 건데 왜 내가 참고 상처받지 않기를 어떻게 선택하라는 거야. 이게 나의 에고라고 하셨다. 에고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미워해버리면 내가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나를 상처 준 사람을 내가 똑같이 미워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진짜 치유가 될까? 그런 적이 있었나? ‘진아’, 그러니까 ‘참나’는 사실 모두를 수용하고 사랑하고 싶어 한다. 맞아, 나도 어느 때는 다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너무 밉고 싫어서 너만 내 인생에 없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 사이에서 어느 마음이 진짜 나인지 몰라서 힘들어했는데, 그게 나의 에고와 진아의 싸움.
누군가를 미워하고 선을 긋고 밀어내고 비난하고 나와 분리해버리기보다는,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화가 난 건지, 어떤 부분이 공격받았다고 느끼는지 살펴보고, 내가 과도하게 억누르고 있었던 부분들, 내가 나를 이해해주고 알아주지 못한 부분들을 알아채고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도 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보는 것뿐이니, 사실은 내 안에 있었던 문제를 나와 잘 해결해야 한다고. 결국 나는 나랑만 잘 해결하면 된다. 아직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