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잡으려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벌써 두 번째 글이다
너도 말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었구나.
나도 꽤 오랜 기간 동안 내 마음이나 고민, 힘든 점은 숨기고 혼자 해결하고. 남의 고민은 잘 들어주고 얘기도 잘해주는 역할로 살아왔어.
나까지 내 마음을 얘기하면, 내 의견을 얘기하면, 더 복잡해질 거야. 불편해할지도 몰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 부담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혼자 해결할 수 있어. 내가 참을 수 있으니 참자. 나라도 참아야 해. 나는 인내심이 많으니 내가 참자.
그러다 보니 모든 관계에서 내가 일방적으로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듯했고, 그렇게 참고 참고 양보해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손절하고 도망치고 이런 것들까지 습관이 되어버린 것 일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고 혼자 버티는 버릇이 계속되니까 어느 순간에는 말을 해야 되는데도 말을 못 하겠더라고.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아프다는 말이 안 나와서, 아니하기 싫었을 수도 있어. 누구에게 용기 내서 말하느니 혼자 아프다 죽는 게 더 맘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정말 세상 끝까지 혼자인 기분이 들더라고.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내가 벼랑 끝에 서있을 때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렇게 말하지는 않고 듣기만 하다 보니 처음에는 얼마간의 이해와 공감, 나보다는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 조금이나마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조금 더 나아가서는 인내심이었던 것 같아. 근데 그렇게 굳어버린 마음이 점점 아집과 고집이 되어서 ‘나는 너네보다 나아서 말 안 하는 거야. 나는 절대 말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고 혼자 버틸 거야. 도움 따위 받지 않아, 필요도 없어.’ 라면서 내 마음을 꽁꽁 숨겨두고 혼자 버티고 혼자 해결하는 걸 이상하게 뒤틀린 형태의 자존심 같은 걸로 생각한 것 같아.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로 삼고 있었어.
너는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니 어떤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참다 참다 뒤틀린 정도까지는 아니기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까 슬프고 기특하고 고맙고 미안한 기분이 들어.
나는 요즘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처럼 너무 튀어나가다가 넘어져버리기도 하고, 언제 손을 놔도 되는지 무서워서 바짝 쫄아있기도 하면서. 그 균형을 찾아가기란 정말 끝도 없고, 또 넘어지는 게 지겨워서 때려치워버리고 싶은 순간도 생기지만, 그럼에도 해보고 싶어.
혼자서 넘어지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꼿꼿하게 서있기란 얼마나 힘들고 쓸쓸한 일인지 알고 있어. 기대기도 하고 손을 잡고 가주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꿈꿨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꼿꼿이 혼자 서있으려 했어. 나는 안 기댈 거야. 나는 혼자 서있을 거야.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들어주고 기다려줄 사람들이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어. 그 시간 동안은 곁에 누가 있든 정말 혼자인 기분이거든.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더라고. 말을 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후회하고 말하지 말걸 그랬나 고민하는 순간이 훨씬 많아. 그렇게 용기를 내야 할 때 나는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려고 하는 마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센 척이라든가 좋아 보이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되더라고. 그 마음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니야. 나한테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좋아 보이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지금의 나를 솔직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어.
내가 지금 내 모든 모습을 수용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어쩌든 상관없을 것 같아서 그 공든 탑을 나 혼자서만 쌓으려고 한 거 같아. 아무도 손대지 마, 도와주지도마. 나는 이걸 혼자만의 힘으로 튼튼하고 견고하게 다 쌓아놓고 누가 와서 어떻게 하든 아무렇지 않아 지면, 그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이것 역시 내가 균형을 잡아나가야 하는 부분 중 하나겠지.
내가 아무리 좋아하려고 받아들여보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수용이 안되고 미워서 숨기고 싶어지는 나의 어떤 부분들이 있거든. 어떻게 좋아하고 어떻게 인정을 하라는 걸까.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좋아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인정하는 걸까.
그런 모습들이 우연치 않은 기회로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이해받고, 위로받은 순간이 찾아오면 더 이상 나의 그 부분들이 수치스러워지지 않더라. 남이 보는 게 창피하고 싫어할까 봐 숨기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아서 흘러내려가더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해 주고 이해해주는 마음에는 그런 큰 힘이 있더라고.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아서 혼자서 어떻게든 만들어내겠다고 애를 썼는데 나 혼자서 다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기대고 또 기댐 받으면서 넘어지지 않고 걸어 나가기란 참 까다롭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성공하는 날을 꿈 꾸지 않아,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보자. 우리는 그러려고 이 별에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