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향기

랜선 친구와 일상을 나누기로 했다

by 최서연


안녕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용기 내서 첫 번째 글을 써봐. 얘기하듯이 쓰면 좀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렇게 쓸게:)


나도 향기를 좋아해. 향수도 많이 가지고 있고 이런저런 향기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아하고. 꿀꿀하거나 우울한 날에도 어디선가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휙 지나가면 순간적으로 반짝 기분이 좋아질 수 있잖아.


어디선가 봤는데 향기는 이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아무리 글로 자세히 기록하려고 해도, 얼마나 밀폐된 병에 넣어놓더라도, 지금 내가 느낀 이 향기를 그대로 10년 후에, 혹은 100년 후에 누군가에게 똑같이 전달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냄새를 맡은 것 자체가 명상이랑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 온전히 현재에 있으려고 할 때, 그 냄새를 또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지나가고 나면 다음에 비슷한 냄새가 나더라도 그때의 그 냄새는 아닐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냄새를 맡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코를 킁킁대 보는 것처럼, 지금 현재에 온전히 있는 게 그렇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과거의 상처를 되짚거나, 미래를 불안해하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 온전히 있으려고 하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좋아졌으면 좋겠어. 아직은 그게 어렵거든. 그래서 향수를 뿌리는 것 같기도 해.


다들 느끼지만 우리나라는 4계절이 있어서 계절이 바뀔 때의 고유의 냄새가 있는 것 같아. 꼭 냄새만이 아니라 그때 살갗에 느껴지는 그때의 온도와 습도, 바람의 결, 나뭇잎이 휘날리는 소리까지 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있는 그 순간이 매년 비슷하게 올 때마다 문득 느껴져. 아, 또 그 시절이 왔구나.


나는 초여름과 초겨울의 냄새를 좋아해. 초여름에 막 더워지기 직전에 반팔을 입고 나가서 바람이 살에 닿는 게 딱 좋은 시기가 있어.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그때. 그때가 되면 괜히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 내가 뭘 입고 어떻게 꾸몄는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어느 정도의 직위와 수입을 가졌는지 상관없어. 뭐든 편하게 입고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골목길 어귀의 분식집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어. 살에 닿아도 좋은 바람이랑 귀에 들어와도 좋은 이야기들, 떠드는 소리. 너무 무겁지도 아주 가볍지도 않은 이야기들 말이야.


그때는 선생님이 학생일 때가 좋은 거라고 하신 말씀이 그렇게 야속했어. 내가 지고 있는 짐에 비해서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거든. 지금은 그때가 왜 그리운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반면에 초겨울은 조금 슬퍼지는 계절이야. 그때는 누군가와 많이 헤어졌던 것 같아.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좋아하던 일도. 그래서 초겨울의 냄새가 나면 나도 모르게 쓸쓸하고 마음이 추워져서 이불속에 깊숙이 들어가게 되더라고. 정말 미워하고, 덕분에 많이 힘들었던 순간들은, 시간이 갈수록 흐려져서 미워했던 사람들도 많이 그리워하곤 해.


쓰다 보니 일상을 나누고 얘기할 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된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이고 싶지 않은, 그냥 최서연으로부터

매거진의 이전글제일 큰 걸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