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독 고마운 것에 대하여
랜선 친구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글을 쓰면서 연결된 사람들이 있어. 독립 출판을 하면서 처음에는 누가 이 긴 이야기를 읽을까, 이 지루한 남의 이야기를 누가 돈 주고 사서 끝까지 다 읽기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거든.
누군가 다가와준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인 건지. 받는 입장일 때는 모르다가, 내가 다가가려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매번 다시 깨달아.
사람이랑 깊게 엮이기 싫다는 생각에 한참 사람이랑 엮이는 걸 피했어. 관계를 아예 포기해버린 거면 차라리 편하지. 그래도 누군가와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도 못하고, 용기를 내서 다가가 보지도 못하는 딱 그 사이에 구덩이에 빠져서 나오지 오랫동안 못하는 기분이었어. 영원히 혼자 있고 싶지는 않은데, 사람을 믿지도 못하겠고. 차라리 희망을 버리고 기대하지 않은 채로 편하게 만나면 그만 일 텐데, 가까워지면 또 쉽게 믿고 좋아하고 희망을 가져버리는 나를 보면서 이 구덩이가 나한테는 안전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는 걸 의심하고 꺼림칙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어.
나는 아마…예민한 거겠지. 사람의 순간적인 표정, 뉘앙스, 억양, 몸짓 등등 알고 싶지 않아도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버려. 낯을 가리지는 않지만 정보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걸 항상 내켜하진 않아. 예상할 수 없으니까. 왠지 공격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스트레스가 심하거든.
갓난아기도, 동물들도 어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안다는데 나라고 모를까. 나는 사실 내가 느낀 감이 거의 맞다고 생각해. 그게 오차범위가 분명히 있는 걸 알면서도 그냥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버려. ‘내 생각과는 다르게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라는 희망을 가지기 싫거든. 그 의외의 혹시 모를 희망에 베팅하고 싶지 않아. 그랬다가 또 다치기 싫어. 나는 좀 틀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편견에 베팅하겠어. 그게 안전해.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틀린 적도 있어. 나를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고 공감해주며 다가오는 사람을 괜히 의심하고 경계했던 적이 있어.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마음. 나를 좋아해 주는 만큼 나를 괴롭힐 것이라는 나쁜 경험에서 나온 편견.
난 내가 틀리는 게 너무 싫었어. 희망이 이기는 게 싫었어. 이상하지? 내가 희망을 더 가지게 될까 봐 그랬을까. 근데 내가 틀릴 때도 있는 게 이제 보니 좋다.
누군가 나에게 상상이 더 무섭다고 얘기해 준 적이 있어.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에 대해서.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덜 무섭고 막상 현실이 되면 싸워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이 훨씬 무서우니까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럼 상상보다 현실이 덜 행복할까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건 못 물어봤어. 그건 아니라고 대답해주길 바랐는데 혹시나 그 반대의 대답을 할까 봐 겁이 나서.
그 대답은 삶이 나에게 준거 같아. 생각지도 못하게, 내가 틀렸다 싶게 기쁜 순간도 생겼어. 내가 마음을 열고 나를 지키겠다는 색안경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니까 그러기 시작했어.
용기 내서 다가와준 사람들이 기적처럼 느껴져. 그런 용기를 내어주다니. 다가가는 사람도 두렵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거절당할까, 상처받을까 얼마나 많은 생각을 딛고 와주었을 텐데.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절실히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와닿지 않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지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용기 있고 소중한 마음인지 알게 되었어.
그래서 요즘 그 마음이 가장 고마워.
겁이 많고, 의심이 많은 나에게.
다가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