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름대로 번듯한 직장을 찾았다

너한테 보이려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by 최서연

나는 누가 아빠의 직업을 묻는 것을 싫어한다. 아빠가 변호사라고 하면 내가 듣는 소리는 보통 ‘그럼 너 왜 이런 데서 일해?’ 였기 때문이다. 아빠가 변호사면 내가 뭐라도 돼야 하나. 아빠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줄 것 도 아니고 부모가 자기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것을 ‘1’이라고 친다면, 나는 그중에 5 분의 1 만 가져와야 했다. 5 분의 1 만 받아서 억울한 게 아니라, 5 분의 1 만 받아도 죄책감이 들었다.(나는 오 남매의 맏이이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얘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먼저 꺼내는 얘기이기도 한데, 나는 법학과를 졸업하고 로스쿨 입시를 준비했었다. 엄마는 내가 잘할 거라 믿었고, 로스쿨에 붙으면 은연중에 아빠한테 무시당하는 듯한 기분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내가 무시당하면 엄마도 무시당하는 기분이라 내가 해내야 할 것 같았다.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재미를 붙이면 잘하는 성격이라서 착실하게 해 나갔다. 학원에서 보는 모의고사에서 2 등을 했지만 웬일인지 나는 계속 허세를 부리는 기분이었다. 거기 앉아있을 주제가 안되는데 그곳에 앉아있는 기분. 엄마가 나를 과대평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 내가 나를 과대평가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시험공부를 할 때까지는 공부만 하면 되니까 괜찮았다. 중간에 독서실 돈을 못 내서 독서실에 보관해 두었던 산더미 같은 책들을 한꺼번에 들고 나와야 했던 적이 있었다. 다 쌓으니 내 얼굴을 가리는 높이의 책더미를 아슬아슬하게 들고,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 집에 돌아왔을 때 인내심이 바닥나 책을 다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누군가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인내심이 아주 뛰어나고,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낸다는 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쨌든 공부는 할 수 있었고, 나는 공부만 하면 됐으니까. 내 욕심만큼 여유롭고, 집에서 물심양면으로 밀어주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건 내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공부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또 왜 아빠가 변호사인데 그런 상황이 생기냐고 묻겠지. 그래서 내가 아빠 직업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아빠는 내가 공부하는 걸 못마땅해했다. 아빠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자식들은 따로 있었고, 그 애들이 공부하는 것은 주저 없이 밀어주었을 것이다. 밀어주었을 것인 게 아니라 밀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게 원망스럽다거나 섭섭하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어찌 이어가게만 해줘도 다행이지 싶었다. 시험을 볼 때 까지는 정말 괜찮았다. 시험 전날 엄마 아빠가 밤새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바람에 밤을 꼬박 새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무슨 정신으로 시험을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시험이 끝나고 핸드폰을 끄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 세편을 연속으로 봤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고, 밤새 잠도 못 자게 싸운 엄마나 아빠 중 누구라도 시험 잘 봤냐고 물으면 그동안 참아왔던 게 폭발할 것 같아서 누구와도,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모의 채점 도 하지 않고 그냥 생각 없이 시간이 되는 영화 티켓을 사서 멍하게 스크린을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한 번의 기회밖에 없었다. 내년까지 나를 공부시켜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안 그래도 불안해하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시점 직전에 확실하게 말했다. 그걸로 또 싸우던 엄마랑 아빠를 보면서 그 얘기는 다시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영화를 세 편 보고 나니 밤 12 시가 지났다. 그때쯤 되니 내가 시험을 망쳤어도 받아들여야겠구나 싶었다. 시험지를 꺼내고 핸드폰을 켜서 답안을 확인했다. ‘차라리 엄마 아빠가 밤새 싸워서 다행이다.’ 그 핑계로 시험을 망쳤다고 원망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마음이 들었다. 채점을 하다가 잘못 채점했나 싶게 성적이 좋았다. 마지막까지 기출문제를 풀었을 때 회차마다 점수가 너무 들쑥날쑥해서 겁이 났는데 마음을 내려놓고 시험을 봐서 잘 풀었나? 추리영역은 평소보다 조금 못 봤지만 언어영역 점수가 높아서 합격권에 들고도 남는 점수였다. 생각보다 잘 본 시험지를 다시 가방에 구겨 넣고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아빠랑 싸웠는지 아파트 벤치에 앉아있었다.


나만 알겠지만 엄마는 절대 그런 곳에 앉아있을 사람이 아니다. 엄마가 이 시간에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불안했다. 엄마랑 아빠가 부딪히는 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가 계속 생긴다는 게 사람을 얼마 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그래도 나는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해주길 바랬다. 시험 보는데 전날 싸워서 미안하다고, 처음으로 나온 말이 그 말이길 바랬다. 그러면 꽁꽁 굳어버린 내 마음이 조금은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더 참아 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만 기억난다. 엄마 사업이 잘 되지 않고 나서 아빠가 집안의 온갖 재정적인 문제를 다 떠 앉아야 했을 때가 하필이면 내가 공부했을 때였다. 내가 공부하는 걸 탐탁지 않아하는 아빠를, 엄마가 억지로 밀어붙여 공부를 시킨 거였으니 나는 가시방석에 앉아 공부했고, 그만큼 엄마도 무거웠을 것이다. 내가 제발 붙길 바랬겠지. 그것만이 엄마랑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더 막막하고 힘들었다. 학원에 앉아있어도, 시험을 보고 있어도 둥둥 떠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은데, 내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리며 여기 앉아 공부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시험을 잘 본 날도 운이 좋았을 뿐인 것만 같았다. 엄마는 기대하고 있을 테고, 구원책은 이것뿐이었다. 점점 더 불안해졌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으니까 괜찮았다. 공부만 하면 되니까 그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정말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로스쿨 입시는 시험만큼이나 자기소개서,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스펙이 엄청나게 많이 반영되는 곳이었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강사분들이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분들도 계시다, 트럭 운전을 하시는 분도 계시다.’ 면서 기운을 북돋아줬는데, 자기소개서를 쓸 때부터는 태도가 돌변했다. 이런 건 누구든 다 하지 않냐부터 시작해서 자존감을 탈탈 털어버리는 말이란 말은 모두 들었던 것 같다. 진짜로 나는 감히 여기 있을 자격 따위 없는 사람 같았다. 그들이 좋은 예로 보여준 예시는 이미 약사인데 아주 그럴듯한 사명감을 가지고 로스쿨 입시에 도전하는 사람, 이미 회계사인 사람, 이미 의사인 사람, 유학을 다녀온 사람, 외국에서 MBA 과정을 밟은 사람, 예시로 보여준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는 하나 같이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고 싶다는 내용이었고, 그 누군가는 대부분 약자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다들 그 계획들을 이루었을까? 사회는 왜 이렇게 번드르르한 말을 잘할수록 좋아하고, 기회를 주는 것일까? 그로부터 2 년 후, 나는 로펌에서 면접을 볼 때도 그 소리를 들었다. 아빠가 변호사인데 왜 어쩌고저쩌고. 애초에 면접 때 부모님 직업을 물어보는 게 요즘 시대에 가당 키나 한 일인가? 근데 가능한 일이다. 아주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하필 나한테만 물어본 건 아닐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했다. 그때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 명함이 갖고 싶었다. 다행히 다른 로펌에 합격하여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한 변호사와는 다시 안 봐도 괜찮았다. 학원에서 내가 첫 번째로 로펌에 합격했고, 동기들과 원장님의 축하를 받으면서 학원 생활을 잘 마무리했다. 이제 나는 다시 출근할 곳이 생겼다.


첫 주에는 만나는 분마다 나를 반겨주셨다. 대표 변호사님, 다른 팀 팀장님, 모두들 돌아가면서 점심을 사주시고, 식사 후에는 같이 커피를 마시며 구성원으로서 나를 맞아 주셨다. 매일 아침에 가야 할 곳이 있고, 내 책상이 있고, 할 일이 있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업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탕비실에는 간식이 가득 있었고, 변호사님들이나 직원들의 생일 때마다 피자 파티를 하면서 근무시간을 보내고, 필요한 사무 용품이 있으면 전화로 주문하면 금방 내 책상 옆까지 배달되었다. 세상에. 일주일도 안되어서 명함이 나왔고, 주임이라는 직함이 달려있었다. 이제 연락해도 되겠다 싶었는데 겁이 났다. ‘로펌 붙었는데도 안 만난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이제 방법이 없는데...’ 편지를 썼다. 이직을 했다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나를 다르게 봐주기를 바라면서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해서 펜으로 꾸욱 꾸욱 마음을 써 내려갔다. 정성스레 마음을 눌러 담아 보낸다고 그 마음이 거기 제대로 도착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 사람한테는 쓸모없이 귀찮게 하는 쓰레기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일이 재밌었다. 내가 대학교 내내 이론으로만 배웠던 법률이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고, 참여하는 기분이었다. 전자소송을 접수하고, 증거를 제출하고, 재판기록도 정리하고, 법원도 왔다 갔다 하며 여러 가지 업무를 해 나갔다. 학원 동기들도 종종 만났다. 마음이 맞아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서로 다른 로펌이었지만 모르는 것을 묻거나, 힘든 점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의 정시에 퇴근했다. 저녁 6 시. 늦어야 10 분쯤이면 퇴근을 해서 법원 옆 언덕길을 걸어 내려왔다. 하루 종일 나름 재미있게 일했다 싶은 날도 그 길을 내려올 때면 똑같은 기분이었다. ‘지루해.’ 퇴근할 때마다 지루했다.


6시부터 잘 때까지 뭐해야 하지. 그 사람 생각 좀 안 하고 싶은데 딱히 할 건 없고, 차라리 야근을 시키고 하루 걸러 회식을 한다는 다른 동기의 로펌이 부러울 정도였다. 생각 없이 흘러가기만 하고 싶어서 누가 내 시간을 뺏어가거나 채워주었으면 했다. 매일 6시에 퇴근 하기를 일주일. 일주일이 지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은 평생 이렇게 변하는 거 없이 쳇바퀴 돌리듯이 돌아가다가 끝나겠구나.’ 해 질 녘의 법원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번듯한 직장인이 되면 퇴근 후에 카페에서 책이라도 한 권 읽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저 좋을 줄 알았는데. 퇴근 후에 카페에서 책을 읽어도,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웃고 떠드는 날도, 항상 내 마음은 뻥 뚫려 있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해도 안 채워지는 기분. 근데 유일한 해결책인 너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