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구나
잠깐은 팔자 좋게 놀고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평생 먹고살 궁리를 안 해도 될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다. 퇴직금을 흥청망청 쓰며 한껏 여유로운 척해본 것일 뿐.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로펌에 들어가려고 했다. 지루해 보이는 직장과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기계 같은 생활은 내가 꿈꾸던 내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은 내가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기를 바랐으니까 로펌에 붙고 나면 나를 다르게 봐주지 않을까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고, 뭐라도 하면서 바쁜 게 나을 것 같아 총무도 맡아서 했다. 꽤 필사적이었다. 로펌에 붙으면 그 사람이 돌아오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이 내가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때는 죽어도 상관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혹은 남이 생각하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싶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한심하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는 한심해 보이니까 그렇게 얘기했을 뿐.
다행히 한심하게 봐주지 않을 사람이 한 명은 있었다. 일주일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선생님.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기분을 그래도 될 만하다, 혹은 그럴 정도가 아니다,라고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런 감정을 느꼈군요.’라고 정리해주었다. 어떻게 해보라거나 마음을 이렇게 먹어보라거나 생각을 이렇게 하라거나 그런 말도 잘하지 않으셨다. 그저 내가 털어놓고 싶은 만큼 털어놓을 수 있게 비워주셨다. 일주일마다 무표정한 얼굴로 접수를 하고 기다리다가 진료실에 들어가서 사정없이 울고 나오는 내 모습이 창피해서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나와 바로 화장실로 갔다. 눈물이 멈출 때까지 앉아있다가 화장을 고치고 나왔다. 다음 주 예약을 접수를 할 때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병원 가는 게 지루할 때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그냥 할 것도 없으니까 그 시간에 접수실에 앉아있지 뭐.’라는 생각으로 갈 때도 있었다. 대학병원 외래진료는 기다리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지나가니까. 그냥 가기로 했다. 내 마음대로 병원과 약을 끊어 버린 적도 있다. 독하게 마음을 먹고 마음이 튼튼해졌다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내가 세운 튼튼한 마음이라서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결국 이렇게 무너졌고, 이번에는 독기든 오기든 뭘로라도 다시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일단 이유는 따지지 말고 다녀보자. 지금은 의미 없는 것 같아도 나를 위해서, 나아지려고 쓰는 유일한 시간과 에너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다니자.’
진료가 있는 날만 학원을 조퇴하고, 다른 날은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다행히 좋은 짝꿍을 만나고, 총무를 맡은 덕에 많은 사람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빈틈을 채워가려고 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학원을 다니는 동안은 할 일이 있어서 좋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가야 할 곳이 있었고, 학교처럼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이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자동으로 밝은 모습이 나왔다. 무조건 반사처럼, 생각하기도 전에 그렇게 됐다.
‘이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깊은 터널 속에 있는지 모르겠지.’
매 순간마다 밝은 척을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짐스러워서 그냥 놔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총무라는 이유로 소소하게 할 일들이 생기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를 하는 일도, 내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일도 생겼다. 마음이 뻥 뚫려버린 것 같아 그냥 서있기만 해도 시린 기분을 그런 일들로 조금씩 채워나가려고 했다.
‘어른들이 외로워서 감투를 쓰려고 하는 건가?’
모임의 장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고 번거롭다. 만남을 계획하고, 뜻을 모아서, 장소를 예약하고, 불편하지만 회비를 내지 않는 사람들을 완곡하게 독촉하며, 모든 사람들이 모임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누가 누구랑 같은 테이블에 앉기 싫어하는지, 누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속으로 꽁해있는지, 누가 술을 먹고 실수를 자주 해서 미리 조심을 시켜야 하는지, 어떤 무리들이 함께 어울려 싶어 하고, 또 어떤 무리들이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지를 신경 써야만 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헛헛할 것 같아서 귀찮은 내색 없이 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내가 수고한 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겨서 그런 걸로 텅 빈 마음을 조금은 메꿨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또 시린 마음이 느껴졌지만.
아침에 학원을 가기 위해 3 호선을 탔고, 항상 한강을 지나갔다. 아침에는 피곤해서 졸 때가 많았는데도 한강 다리를 건널 때에는 눈을 뜨고 한강을 바라봤다. 햇살이 비추는 한강을 보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이 되어 수업이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로 돌아갔다. 학원이 끝나고 동네로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항상 그 다리에 멈춰 서서 먹물 같은 한강을 한참 바라봤다. 밤의 한강은 어둠에 묻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뭐든 삼켜버릴 것 같기도 했다. 그 어두움은 한강 다리 위에 조명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거울처럼 담아내고 있었다.
아침에 본 한강은 밝고 선명한 그만의 색으로 출근길의 모든 사람이 한강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아름다운 한강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아침에 본 한강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주아주 검은, 밤의 한강 같았다. 너무 어두워서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내가 무슨 색인지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었다. 이렇게 어두운 나에게 빛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저 똑같이 돌려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한강 다리에 멍하니 강물을 보고 서있으면 자살사고가 많으니까 지나가는 차들이 나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차라리 누군가 내려서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는 드라마 같은 일이 생기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한강 다리에는 거의 SOS 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잡아볼 지푸라기일까. 저기 전화하면 나한테 뭐라고 얘기해줄까. 궁금했지만 한 번도 수화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어차피 대단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한강 다리에 서서 차가울 한강물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서있었다.
‘잠깐이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평화가 찾아올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무서웠다. 차라리 그 이후가 어떨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혹은 어떤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면 더 머뭇거리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벼랑 끝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모든 공기가 바늘이 되어서 내 마음을 찌르는 것 같은 순간, 더 이상 무언가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더 시도해 볼 필요조차 없이 다시 찾아온 기회도 짐짝처럼 느껴졌던 그때에, 제발 여기서 벗어나고 이 고통이 끝나는 것만을 바랄 수밖에 없던 그 순간에, 손목에 낸 깊은 칼집은 정말 평화로웠다. 나는 그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잔잔한 바다가 되었다.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완벽히 평화로웠다. 내가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철학을 공부할 때는 분명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그 순간을 끔찍하게 기억하고, 후회한다고 했었는데. 다들 거짓말을 한 걸까? 내 평생에 그렇게 가벼워졌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때의 기분을 선명하게 기억하면서도 나는 그날도 뛰어내리지 못했다. 용기가 없는 건지, 희망을 못 버린 건지. 집에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탄 것도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전철보다 오래 걸리니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동네에 도착하면 카페로 가서 그 날의 과제를 했다. 다행히 과제가 많아할 일이 있어서 좋았다. 매일매일 소장을 작성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행히 집에 가서 잘 시간이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삼거리 횡단보도에는 항상 그 사람의 동네로 가는 버스가 지나갔다. 그 버스가 보일 때마다 오늘 찾아가 보라는 신호인가 싶어 힘들었다. 그 버스는 내가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꼭 지나가서 내 마음을 뒤집어 놓곤 했다.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다가 또 한참을 울고, 선생님은 그냥 마음한테 시간을 주라고 했다. 그 시간을 주는 동안 내가 너무 힘들어서 버틸 수가 없고 , 버티기도 싫었다. 시간이 지나서 정말 괜찮아지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로 싫었다.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했던 사람인데, 시간이 지나서 괜찮아진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상처 받고 힘들고 죽을 것 같지가 않으면 그 사람이 나한테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지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게 더 괜찮지 않았다. 선생님은 특별하다고 해서 꼭 상처로 남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와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쓰러지듯 문 앞 바닥에 누웠다. 천장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눈에 눈물이 차올라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리 내서 울 힘도 없었다. 엄마는 옆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힘들었다. 엄마가 보지 못하게 방안에 들어가서 울 기운도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속상해하고 걱정할지 같은 생각을 할 기운도 없었다. 어느 정도 울고 나면 멈췄으면 좋겠는데 멈추지가 않았다. 눈에 차올라서 흐른 눈물이 귓구멍으로 흘러 들어가고, 귓구멍에 눈물이 꽉 차서 귀가 먹먹해지고, 귀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려도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지금도 내 옆에 없고, 앞으로도 안 돌아오겠지. 그럼 나 왜 살아있어야 하는 걸까. 이렇게 힘든데 버틸 이유가 있는 걸까. 제대로 생각해봐. 똑바로 봐. 솔직히 안 돌아올 거 아니야. 안 돌아올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매일같이 속이 꺼멓게 타 들어가고 있던 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의를 보이면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 그래서 그 호의를 그대로 돌려주려고 노력했고,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학원에서 우리 기수의 총무를 맡고 있기도 했고.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가 나한테 어디 가도 잘할 것 같다고 했던 그 말을 그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나를 이렇게 좋게 봐주는데, 너는 왜 나를 못마땅해하기만 할까.’
로펌만 붙으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어쩌면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린 것일지도 모른다. 소리 내서 울면 진짜 끝일 것 같아서 차마 소리는 못 냈으니까. 울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다음날이면 여느 때와 같이 3호선의 반짝이는 한강을 바라보며 학원으로 향했다. 매일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학원에 가면 여느 때와 같이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나오고 나면, 회사에 취직하지 않는 한 갖기 어려운 소속감 내지는 연대감 때문이었을까. 학원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따릉이를 탔다. 페달을 밟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번쩍, 그 사람이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이 나의 쓰잘머리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내 뒤통수를 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 당시에 나를 버티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희망이 유일했다. 그래서 설사,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은 그걸 믿고 버티자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나는 당장 어디에라도 뛰어들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거짓말이라도 믿고 버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빨리 착각인 걸 확인하고 홀가분하게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조금은 믿었던 것 같다. 혹시나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따릉이를 반납하고 집으로 향하는 삼거리 횡단보도에 서서 또 그 사람이 사는 동네로 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희망은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구나. 괴로운 시간을 버티게 하는 희망이 과연 좋은 것일까? 희망이 없으면 이 고역스러운 시간들을 버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물론 매번을 다 잘 참아 낸 것은 아니다. 핸드폰을 꺼버리고 한강 다리 위에 있다가 엄마가 119에 위치추적을 해서 구급대원분들이 나를 잡으러 온 적도 있었고, 아파트 제일 높은 층에 올라가 그냥 여기서 떨어지기만 하면 되는데 왜 못하는 건지 나를 원망하고, 교차로에 쌩쌩 달려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여기서는 뛰어들 용기가 있는 건지 나를 책망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한참을 서있기도 했다. 어떻게 죽어도 어떻게든 민폐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민폐 없이 죽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기도 했다가, 그냥 민폐가 된다는 핑계로 사실은 안 죽고 싶은 거 아니냐고 나를 추궁하기도 하고, 솔직히 안 죽고 싶으면 그냥 좀 힘을 내라고 원망을 하기도 했다. 내가 모든 순간에 하는 생각들은 나에게 기운을 주기는커녕 나를 갉아먹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