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서 바다를 바라보며 조식을 먹었다. 그 사람 이랑 왔을 때는 눈치를 봐 가며 슬쩍슬쩍 사진을 찍었는데, 동생이랑은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다. 얼마나 신나고 행복하게 여행을 하고 있는지 SNS에 사진을 전시했다. 보란 듯이 올린 사진이지만 막상 보란 사람은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신나게 수영을 하다가, 생각해보니 난 수영할 줄 모르는데 자연스럽게 배영을 하고 있어서 언제 수영을 배웠더라 생각해보니 이것도 그 사람이 가르쳐 준거였다.
‘나는 원래 튜브가 없으면 물에서 놀지 못했는데...’
살면서 여러 번 친구가, 혹은 친척들이, 가끔 들었던 수업에서, 수영을 가르쳐 준 적은 있지만 내가 진짜 수영을 하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해 보려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튜브 없이 물에 뜬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튜브에 의지하지 않고도 물에 떠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어떻게 알려줬길래 내가 떠있을 수 있게 되었지?’
기억을 더듬어서 그 사람이 나한테 가르쳐준 것처럼 동생에게 수영을 가르쳐줬다. 나는 그 사람만큼 잘 알려줄 수 없어서 동생은 내가 가르쳐 준 걸로는 수영을 하기 어려워했다.
점심 먹고 바다로 나갔다. 호텔 바로 앞에 비치 배드에 자리를 잡고, 맥주와 망고 주스를 시켰다. 나는 맥주를 좋아했다. 즐거운 순간에 시원한 맥주 한잔 곁들이는 걸 좋아했다. 그 사람은 맥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마시는 걸 좋아하니까 박자를 맞춰서 조금 마시는 정도였다. 내가 바다에서 한참 물장구를 치고 놀다가 나왔을 때, 그 사람이 호텔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비치 배드에 누워서 쉬는 줄 알고 있었는데, 뭐 가지고 나온 건가?’
바다에서 나와 백사장을 지나 그 사람에게 갔을 때, 한 손엔 비닐봉지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비닐봉지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얼음이 가득 들어있고 , 그 얼음 사이에는 내가 마시려고 호텔 냉장고에 사서 넣어두었던 병맥주가 들어있었다. 시원하게 마시게 해주고 싶었다며 활짝 웃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웃음이 터져버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섬에 있는 내내 그 사람과 계속 같이 있는 것 마냥 그 사람이 비집고들어와 내 머릿속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곳으로 여행 간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굳이 여기가 아니라 어딜 가든 비집고 들어왔으니까. 그 사람이랑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가도, 여기도 같이 와봤으면 좋았을 걸. 그 사람이 올 리가 없는 곳을 가도, 여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한 번도 안 와보겠네. 그 사람이랑 종종 갔던 곳을 가면,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내 방안에 무릎을 감싸 안고 웅크려 있을 때에도, 내 방 창문에서 보이는 주차장에 그 사람이 차를 빼며 손을 흔들고 있을 것 같아서 어느 곳으로 도망가도 그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 버린 후였기 때문에, 같이 여행 갔던 곳이니까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했다.
여행하는 동안 신나고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그 사람이 비집고 들어와도 많이 슬프진 않았다. 그때보다 더 신나게 많은걸 하면서 놀았으니까. 해가 지는 노을에 보트를 타고 나가 노을을 구경하고, 밤에는 호텔 앞에서 하는 불쇼를 보며 공연한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얘기도 나누고, 산소통을 메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동영상도 찍고.
동생이랑 여행을 갔을 때는 우기였는데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고, 그 사람이랑 여행을 갔을 땐 건기였는데도 내내 비가 오다가 마지막 날이 돼서야 겨우 화창한 날을 볼 수 있었다.
‘그냥 그 사람이랑 나는 안 되는 건가.’
어떻게 해도 꼬이는 관계, 어떻게 해도 엉키는 관계,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걸까. 근데 내가 눈치를 채지 못한 걸까. 그만두라는 신호였는지, 아니면 함께 넘어야 할 고난 같은 거였을까. 사랑은 항상 그 당시엔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를 주니까. 땅이 굳어지려고 비가 오는 것인지, 안 되는 거니까 제발 정신 차리라는 물세례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때는 정신 차리라는 물세례도, 이겨내고 나면 더 단단해질 비라고 구분해 버리고 마니까.
동생과 여행을 갔을 때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얘기를 많이 했다. 해변가에 있는 바에서 망고주스를 먹을 때도, 식당에서 감바스와 맥주를 먹을 때도,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되는대로 말을 해도 알아들어주었다. 보라카이에서 일하면서 제주도에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레스토랑 직원과 웃으면서 같이 얘기를 하다가 내가 잘 해내지 못하면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을 그 사람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럴 것 같아서 그때는 꼭 필요한 말, 정확히 알고 있는 문장이 아니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또 나를 못마땅해할 것 같았고, 답답해하는 그 눈빛이 또 나올까 지레 눈치를 보면서.
나는 똑같은 사람인 것 같은데 누구랑 같이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구나. 낯선 사람한테 먼저 말을 걸고, 사진도 찍자고 하고, 부족한 영어가 조금은 쑥스럽지만 그래도 얘기하고 싶어서 낯선 말로 문장을 내뱉고. 그 사람이 같이 있었다면 나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봤을까. 또 못마땅하게 생각했을까, 아니면 새로운 모습을 신기하게 생각했을까. 마지막 밤이 지나기 전에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랑 헤어진 후에 혼자 보라카이 여행을 가서 찍어온 사진에 있는 나무에 가보고 싶었다. 나무에 뭔가 흔적을 남겨놓았을까 싶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나도 똑같이 그 나무를 사진으로 남겨서 올리면 내 마음을 알아주려나 하는 착각을 하면서 그 나무로 갔다.
‘이 나무 같은데.’
그 사람과 함께 망고 주스를 맛있게 먹었던 바 앞이었다. 혼자 그 나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나랑 같이 왔던 곳인데 내 생각 한 번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왜 여기서 사진을 찍었을까. 닿지도 않을 무수한 생각들을 하면서 그 나무 주변을 서성거렸다. 드라마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지도, 어떤 흔적이 남아있지도, 어떤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떻게든, 뭘 로든 붙잡고 싶은 나의 미련함이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