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깨달음을 얻어서 마음에 평화를 얻었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일본 여행이 끝나고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출근도 안 하고, 놀 사람도 없고, 할 것도 없고.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출근만 안 하면, 휴무만 되면,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쉬게 되면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고 싶은 것을 적어둔 다이어리를 읽어봐도 마찬가지. 쉬기만 하면 시간을 알차게 재밌게 보낼 줄 알았더니 그도 아니었다. 하고 싶다고 써 놓은 건 읽어봐도 와 닿는 것이 없었고, 맨날 여행만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그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외롭고 심심했다. 틈만 나면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틈만 나면 힘들었다. 틈이 나지 않도록 뭐든 해보려고 했다. 갈 곳이 없어도 나갈 준비를 하고,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가보기도 하고 , 내가 좋아하는 서점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지나가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전시회를 보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대단한 깨달음을 얻어서 마음에 평화를 얻었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주아주 평범하고 별다를 것 없는 무료한 일상이었다. 시간은 가는데 남는 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시간을 보내기로 한 일은 자전거 타기와 걷기였다. 힘차게 운동할 의지는 없으니 슬슬 걷고,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따라 멀리 한번 갔다 오면 꽤나 많은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집에서 뒹굴 거리는 것보다는 남는 게 있을 것 같아 틈이 생길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해가 지는 노을 녘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사람 생각이 나면 자전거 페달을 거칠게 밟으며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지는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페달을 밟는 내내 다시 만나게 되는 상상만 하다가 그럴 리가 없는 걸 깨달으며 더 우울해지는 날도 있었다.
심심하고 허전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긴가민가하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친구를 잘 못 사귄 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가 속이 좁은 걸까?’ 하는 끝없는 고민과 불쾌함이 오고 갔지만 심심함을 채우기 위해 만나서 시간을 보냈다. 빈 시간은 채웠지만, 빈 마음은 찜찜함과 불편함으로 채워질 때가 많았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데, 나를 보고 싶어 해 주고 찾아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잘 지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다 끊어버리고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게 나을까?’
내내 그런 고민을 껴안고, 어느 정도의 찜찜함과 불편함을 적셔가며,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 보이는 사진으로 포장해서 늘어놓았다.
‘순간순간 웃고 재미있을 때도 있었으니까 혼자 우울한 생각에 빠져있는 것보다는 낫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따금씩 불편한 그 친구들의 말과 행동 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정말 친구를 잘 못 사귄 걸까? 그래서 불편함을 벌로 받는 건가?’라는 쳇바퀴를 달리며 힘들어했다.
빈 시간을 채워도 만족스럽지 못했고, 시간이 늘어질수록 후회가 많아졌다.
‘일 그만두지 말 걸 그랬나. 내가 비겁하게 도망친 걸까. 그렇게 행동하지 말 걸. 이렇게 할 걸. 그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좀 더 영악하게 굴었어야 했는데.’
끝도 없는 고민거리로 늘어진 시간이 채워지면서 나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불편한 친구들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긴 싫었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는 징징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눈덩이처럼 끝없이 불어나는 고민을 꽁꽁 싸맨 채 나는 점점 더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