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던 일을 없던 척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어찌어찌 로펌 생활은 흘러갔다. 동기들보다 맡은 업무도 많았고, 존중받는 분위기에서 일을 좀 더 배워 나갔다. 동기들이 모르는 업무를 알려 주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다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건가 보다. 어느 날 사무장님이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둘이 먹자는 건가?’ 대표 변호사님과 사무장님께서 워낙 나랑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시고, 나를 좋게 봐주셔서 ‘무슨 일이 있지는 않겠지.’ 하며 나갔다. 도착하고 보니 팀장님과 사무장님께서 같이 계시는 자리였다. 한잔 하셨는지 이미 조금 취해있는 상태였다. 워낙 점잖은 분이셨고, 자녀들도 대학생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마 무슨 일이 있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밥을 먹었다. 나한테 꼭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다면서 나를 어떻게 뽑게 되었는지, 그간 로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표 변호사님과 사무장님의 깊은 인연과 사무장 님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 주셨다.
나는 시간 순서대로 이 글을 썼는데 이 부분은 비워 놓고 한참 나중에서야 썼다. 쓰기가 싫었다. 이제는 울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는데, 그렇다고 세세하게 다시 기억하기는 싫었나 보다. 그리고 그 기억이 글자로 써 내려져서 어딘가에 기록이 되어있다는 것도 싫었다. 생각해보니 겉으로는 ‘절대 그 일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외치면서도 아주아주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 있지는 않겠지.’라고 걱정하면서도 갔던 이유가 심심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냥 심심해서 갔다. 할 것도 없고,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때우지 않으면 미칠 지경이었고, 또 그 사람한테 미친 듯이 부재중 전화를 남겨서 욕을 먹거나 신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서 텅텅 비어버린 시간을 메꿔야 했기 때문에. 계속 다닐 직장인데 사무장님한테 굳이 적당한 핑계를 구상해서 정중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의 의사를 전할 방법을 찾기도 귀찮았고. 나의 태만했던 마음이 이런 일을 만든 건가 싶어서 그런 마음까지 솔직하게 쓰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억지로 끌고 간 것도 아닌데 왜 갔냐고 누가 물어보면 심심해서 갔다고 얘기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내 탓이라고 할까 봐.
반주를 하면서도 별반 이상한 일이 없었고,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말씀을 조심하시는 것 같아서 걱정하는 일은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노래방에 가면서부터 흥이 올라서 술이 취하신 건지, 아니면 원래 거기서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노래방 문 쪽에 바짝 붙어서 노래를 불렀다. 혹시나 술김에 은근히 치근덕대기라도 할까 봐 앉은자리에 가까이 가지 않고 코트도 입고 크로스 백도 맨 채로 노래는 불러줬다. 그냥 불러준다는 심정으로 이었다. 자기들끼리 놀려니까 심심한가 보다 싶어서. 그냥 내가 노래를 하고 싶기도 했고. 나 혼자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고 놀아도 되지만 내가 부르는 노래 듣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쁠 건 없으니까. 노래를 몇 곡 부르다 보니 신이 나셨는지 그때부터 나를 도우미 취급하기 시작했다. 같이 불러 달라, 팔짱을 껴 달라, 뽀뽀하는 시늉을 하더니 나중에는 껴 앉으려고 해서 악 소릴 내며 밀쳤다. 순간, 아주 얼굴을 붉힐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아 그냥 너무 취하셔서 그런가 보네요. 호호.’라는 식의 반응으로 넘어가고 집에 돌아왔다. 그 날은 생각보다 마음이 잠잠했다. 뉴스에서 너무 험한 일을 많이 봐서 그런가. 걱정했던 것만큼 별일이 생긴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 찜찜했지만 가기 전에 걱정이 되어서 연락한 친한 언니한테도 별일 없었다고 얘기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사무장님과 팀장님의 얼굴을 보는데 순간적으로 짜증 이 났다. ‘왜 내가 비위 맞추고 웃어야 되지?’ 팀장님이 실실 웃으면서 내 자리로 다가와서 집에 잘 들어갔냐면서 사무장님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느니 뭐라느니 쓸데없는 소릴 늘어놓으면서 ‘우리 아무 문제없는 거잖아?’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 그때 왜 웃었을까. 왜 웃으면서 호응하고 대답해줬을까. 그 로펌을 너무 다니고 싶어서 그랬나, 아니면 윗사람이라서 그냥 반사적으로 그런 건가. 왜 그렇게 멍청하게 반응한 걸까.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바보라고 생각하겠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생각 때문에 좀처럼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순간, 사무장님이 업무에 대해서 뭐라고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너무 같잖게 느껴졌다. ‘뭐라는 거야. 내가 다 제대로 하고 있는데. 저딴 인간 밑에서 일을 해야 하다니. 왜 그래야 되지?’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이면, 내가 느끼기에 너무 힘든 일이면 언제든 그만두자고 마음을 먹고 다니는 편이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전 회사도 그렇게 다녔지만, 다니다 보니 그 일을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그 회사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게 또 마음처럼 안됐다. 그래서 좋아하면 괴로움만 커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좋아하는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힘들어지기만 하고, 별로 안 좋아하는 거였으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많이 속상하고 힘들진 않았을 텐데. 뭘 쉽게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고새 그걸 까먹고 그 일을 좋아해 버렸다.
이번에는 내가 그 일을 재미있어한 것 이외에도 생각할 것이 많았다. ‘내가 또 이것 때문에 그만두면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볼까. 또 끈기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생각하겠지. 로펌으로 이직했다고 했는데, 그게 유일하게 다시 잡아볼 구실인데, 그게 없어지면 안 되는데.’ 한 번은 아빠가 내가 집에 놓고 온 서류를 가져다주신 적이 있다. 내가 일하는 로펌 앞까지 오셔서 서류를 건네주고 가셨는데, 그 순간이 웬일인지 잊히지가 않았다. 맨날 학생처럼 캐주얼한 옷만 입고 다니던 내가, 멀끔하게 정장을 입고 일하던 사무실 건물에서 걸어 나가고, 그런 나에게 서류를 주시면서 차 안에서 온화하게 웃던 아빠의 얼굴. 아빠가 나한테 저런 웃음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아니면 내가 아빠의 미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되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따뜻한 순간. 지금도 차창 너머에서 미소 짓던 아빠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당연히 엄마도 좋아했다. 내가 로펌에 붙고 나서 아빠도 좋아한다면서 신나 했다. 내가 로스쿨 준비하다가 변호사가 아닌 직원으로 로펌에 일하게 되었으니 자존심 상하지 않는지까지 조심스레 물었다. 대책 없이 퇴사하고 어디라도 취직이라도 해서 다행인 나는 그런 생각 할 겨를도 없었는데. 다 큰 딸이 이제야 남들이 보기에 그나마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서 마음이 놓이겠다 싶은 엄마가, 내가 밖에서 자존심 상할 것까지 걱정해 주다니 감동이었다. 그런 것도 걱정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친구들도 좋아했다. 내가 제대로 서있질 못하니 걱정만 끼칠까 봐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얘기했을 때도 좋아했고, 동생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맨날 밥을 얻어먹어서 한 번쯤은 내가 밥을 사고 싶었던 선배한테도 축하를 받으며 식사를 대접할 수 있었다.
‘로펌’이라는 이름이 뭔지, 다들 별 것 도 아닌데 대단하게 봐주는구나 싶어서 고맙기도 하고, 그게 힘들기도 했다. 그만두려면 또 일만 그만두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 직장만 그만두는 게 아니었다. 여기에 따라온 모든 것들을 같이 포기해야 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던 사람들이 내가 겪은 일을 듣고 또 자기 일처럼 슬퍼할 걸 생각하니 너무 싫었다. 나 때문에 또 마음 안 좋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데, 그나마 겨우 겉보기에라도 정상 궤도에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뒤에서 쑥덕대던 사람들이 또 내가 잘 안되면 잘 안됐다고 그거 보라고 얼마나 또 입방아를 찧어댈까, 거기까지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일주일 동안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다. 태연한 척하다 보면 태연하게 되겠지.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 아닐 거라고. 저 사람들은 어차피 모르는 척할 테니 나만 잊어버리면 없던 일이 되는 거라고. 있던 일을 없던 척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데, 외근을 나갈 때는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치가 떨렸고, 그게 나를 무슨 취급을 한 건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갈수록 선명하게 깨달아져서 화가 났다. 잘못은 저쪽에서 한 거 같은데 왜 그 뒷감당은 내가 해야 되는지 억울해졌고, 어쨌든 회사에서는 윗사람들인데 갈수록 같잖아서 상대하기도 싫어졌다. 출퇴근 길에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들이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근데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엔 그 연령대의 남자들 천지였다. 지하철을 타는 게 지옥 같았다. 일주일을 더 참고 나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친구에게 말했다.
내 인생인데 남이 그만두라고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지. 그 친구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만두라고 하겠지. 나라도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 친구가 내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는 것 도 아닌데, 뭘로 든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짧은 경력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무슨 일로 퇴사했는지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잘못은 아니지만 안 좋게 볼게 뻔했다. 만으로 해서 겨우 29 살, 20 대 막바지에 턱걸이로 합격한 곳이라서 이직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소식이 없었다. 여기도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겨우 뚫고 들어온 건데. 학원 과정이 끝나고 몇 달을 뭐하면서 시간을 보낸 거냐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하지? 일하다가 얼마 안돼 그만뒀다고 할 수도 없고. 취직을 못하고 여기저기 지원서만 넣다가 시간이 지나버린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내 잘못도 아닌 일을 위해서 그럴싸한 거짓말을 구상해야 했다. 점점 억울함이 커져갔다.
엄마에게 말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엄마가 가장 힘들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엄마는 쉽사리 그만두라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서운했다. ‘엄마는 내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도 당장 그만두라고 말해주지 못하는구나.’ 그만큼 내가 못 미더운가 싶어서. 그러면서도 나는 마음이 갈팡질팡 했다. 엄마가 화를 내며 당장 그만두라고 하길 바라기도 했고, 막상 그만두라고 하면 되려 어떻게 다시 취업하냐고 따져 묻고 싶기도 했다. 엄마가 뭐라고 해도 나는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상태에서 누군가 여기서 나를 꺼내 주길 바랐다.
이제야 글을 쓰며 내 탓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심심해서 갔다고 해서 성희롱당해야 하는 건 아니다. 피해자가 되려면 순수해야 하나. 온전한 피해자는 아무 흠결도 없어야만 되는 건가. “저는 사무장님이 직속 상사이기 때문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 정말 억지로, 마지못해 갔습니다.” 혹은 “직장 상사이시고, 인생 후배로서 한 말씀 배우러, 순수한 마음으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갔습니다.” 라며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려주지 않으면 피해자가 될 자격이 없는 건가. 그렇다면 차라리 자격이 없어서 피해를 안보는게 낫다. 나는 피해를 입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그 사람들이 가해를 하는 바람에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피해자로 박제되어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거기서 가장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