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무리에서는 저런 무기력한 눈빛을 하고 그저 버텨나가고 있을까봐
결국 로펌은 그만두었다. 어렵사리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엄마가 당장 그만두라고 하지 못했던 모습에 섭섭했지만, 사실은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내 편이 되어주지도,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누가 어떻게 할지 결정해주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괜히 애꿎은 엄마한테 어떻게 내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당장 그만두라고 하지 않냐고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가, 내가 로펌 다니면서 좋아하던 그 모습을, 엄마도 선명히 보았겠지 싶었다가. 내가 아쉬운 것만큼이나 엄마도 아쉬울 거라고, 어쩌면 나보다도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플 거라고 이해가 되다가. 그래도 엄마는 그만두라고 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속으로 원망을 하다가.
정작 화를 내야 할 곳은 다른 곳이었는데 그 화살이 다 엄마한테 돌아갔다는 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원장님께도 고민을 털어놓았다. 엄마한테 이야기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타자를 치는 것만으로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원장님이 그런 곳은 당장 그만두라고 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원장님은 생각보다 차분한 태도였다. 그게 언제였는지, 몇 번이나 그랬는지, 그 이후의 태도는 어떤지, 다음에도 그런 일이 또 생길 것 같은지, 그게 아니라면 조심하면서 계속 다니는 쪽이 낫다는 듯한 말투였다. 내가 계속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자 정 못 다니겠으면 그만두라고, 자기가 추천서를 써주면 될 일이라고 하셨지만, 첫마디에 실망을 해버린 나는, 그래도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쏟아져 나오는 얘기를 내뱉다가 순간, 그냥 나의 일방적인 푸념일 뿐이고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같이 속상해해 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알겠다며 그냥 전화를 끊었다.
원장님의 말투는,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이 직장 문화에서는 아주 비일 비재한 일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수도 없이 겪은 말투였다. 그런 것 하나하나를 따지면서 그만두면 일할 곳이 없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서로 약속한 언어가 아닌 데도 왜 이렇게 많은 뜻이 전해지는 걸까. 글자로만 전달하는 메시지나 편지들이 가끔은, 내 표정이나, 말투, 눈빛이 담기지 않아 내 의도와 달리 잘 못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는 너무 많이 전해져서 힘들었다. 차라리 글을 통해서 이야기했다면, 원장님이 애써 내비치려고 하지 않은 (어쩌면 의도적으로 내비치었을지도 모르는) 의미들을 눈치 채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일주일을 더 참다가 몇몇 사람에게 털어놓고,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엄마에게 털어놓고 나서 깨달은 것은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거였다. 아무도 나에게 답을 줄 수도 없고, 아무도 그 선택에 대한 짐을 대신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짊어져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버티던 어느 날, 사무장님이 오후 내내 외근을 나가셨다. 팀장님도 자리에 안 계셔서 다행히 그날 오후는 ‘그 둘의 얼굴은 안 봐도 되겠구나.’ 하면서 업무를 했다. 저 둘만 없으면 진짜 괜찮은데, 나 때문에 저 둘을 어떻게 하진 않겠지. 사무장님은 대표변호사 님과 20 년지기라고 들었고, 팀장님도 사무장님과 연이 깊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말한다고 한들 바뀔 것이 없어 보였다. 이 회사의 분위기만 싸늘하게 만드는 것이겠지. 또 사무장님과 팀장님이 직속인 나를 괴롭힐 구실을 주는 것밖에 안 되겠지. 설령 진심으로 미안해한다고 한들 그전에 내가 상사로서 존경했던 마음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계속 불편하게 지내거나, 아니면 참고 이렇게 겉으로 나마 괜찮은 척 지내거나.
잘못된 것을 따진다고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깨달았고 그래서 지쳤다. 드라마 같은 데서는 숨겨진 나쁜 행동들을 용기 내서 밝히면 다들 동조해서 내 편이 되어줘서 분위기가 바뀐다. 나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더 좋아하게 되고, 나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오해를 풀고 다 내 편이 되어서 같이 싸워준다. 그래서 그 나쁜 사람들을 몰아내게 된다.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 모두의 힘으로.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를 좋아하던 사람은 여전히 나를 좋아하지만 나를 위해 싸워 주기엔 감당해야 할 손해가 너무 크고, 나를 싫어하던 사람들은 어찌 되었든 나를 여전히 싫어한다. 갑자기 내 편이 되어서 모두의 힘을 모아 나쁜 악당을 쫓아내버리는 일 따위는 도시 전설로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해서 무엇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다 알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태연하게 사무장님과 팀장님을 대하며 잘 지내겠지. 나만 아니면 되는 회사 생활이니까. 그게 순전히 악의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때가 돼서는 그게 서운하지도 않았다. 5시 즈음이 되어갈 때쯤 사무장님이 전화를 했다.
“어 최주임, 언제 퇴근해.”
“저 6 시에 퇴근하죠.”
“오늘은 빨리 퇴근해도 돼. 마무리하고 퇴근해.”
“.. 지금이요?”
“응, 퇴근하고 여기로 와.”
옆에서 팀장님이 목소리가 들렸다.
“온데?”
그때부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기 책상 서랍에 있는 현금 시제 지갑에 있는 현금을 가지고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자기들이 돈이 없어서 계산을 못하고 있다며 그 돈을 가지고 와줘야 한다는 시답잖은 핑계를 대면서. 이미 술이 취했는지 신이 난 목소리였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져오라고 한 돈을 책상 위에 꺼내 두고 생각했다.
‘안 가도 되는 거지? 가는 게 멍청한 거 아니야?’ 그러면서도 무서웠다.
‘가야 하나? 이것만 주고 와도 되는 건가. 안 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진짜 안 가고 싶은데...’
진짜 오만 원이 없어서 부른 것도 아닐 텐데 멍청하게도 ‘진짜 계산을 못 하고 있는 거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를 완전히 술 먹으면 불러도 되는 여직원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10 여분이 지나자 사무장님과 팀장님이 번갈아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댔다. 왜 안 오냐는 문자와 함께 몇 번 전화하다 말겠지 했다. 나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미친 사람들처럼 1 분 간격으로 번갈아가며 전화를 해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증팀으로 걸어갔다. 대표 변호사님이 계셨다면 대표 변호사님께 갔을 텐데 재판이 있어서 부재중이셨고, 닦아내도 계속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새도 없이 공증팀 과장님께 다가갔다. 과장님은 여자였고, 그 순간에는 그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과장님은 깜짝 놀라는 눈치로 나를 쳐다보았다.
“과장님, 사실은 제가 지 지난주에 사무장님이 저녁 사주시겠다고 부르셔서 같이 밥을 먹었는데 가보니까 거기 이 팀장님도 같이 계셨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도 계속 전화가 오고 있다는 사실까지.
“웬일이야.”
옆에 있는 대리님도 같이 눈이 동그래지셨다.
“정말 놀랐겠다.”
과장님은 내 손을 잡아 주셨다. 과장님이 처음으로 한 말은 그거였다. ‘정말 놀랐겠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 못하고 혼자 힘들었겠다.’ 어쩌면 누구에겐 가는 그 말이 첫마디로 나와주길 바랐나 보다. 그때의 과장님의 표정에는 앞으로 어떡할지에 대한 걱정이 선명하게 서려있었고, 조금은 의례적으로 한 말이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그 말이 반갑고 좋았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고마웠다. 여전히 표정과, 말투와, 눈빛에서 과장님이 말로 하지 않은 것까지 느껴져서 조금 슬펐지만. 그래도 우리가 의사소통을 약속한 언어로는 나를 위한 말을 해주셨다. 그때는 그 말이 위안이 되었다.
“거기는 가지 마. 당연히 안 가도 돼.”
옆에 있는 대리님도 같이 화를 내주셨다.
“미친 거 아니야?”
휴지를 챙겨주며 나를 달래 주셨다. 눈물을 그치고, 마음이 조금 진정된 후 과장님이 오늘은 먼저 퇴근하라고 하셨다. 전화가 계속 오더라도 받지 말고 집에 가서 쉬라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서 ‘어쩌면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고 가기 싫은 몇 개의 물건들을 챙겨 들고, 가방을 메고,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싸늘하고 축축한 바람이 부는 법원 옆 언덕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계속 울었다. 핸드폰이 계속 울렸고, 나는 계속 울었다.
친한 언니가 같이 밥을 먹어주겠다고 했다. 누구라도 같이 있어줬으면 했는데 기꺼이 시간을 내준다고 해줘서 고마웠다. 사촌 오빠한테도 전화를 했다. 오빠는 울지 말라고 그런데 왜 다니냐고, 새로 취직하면 취직 선물을 또 사주겠다고 했다. ‘울면서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얼마나 속상해할까. 엄마가 집에 없었으면 좋겠는데.’ 훌쩍거리면서 문을 열었을 때 엄마가 집에 있었다. 내가 힘든 것만 해도 너무 힘든데, 엄마까지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감당할 마음이 안되었다. 엄마랑 어떻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가 계속 우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애써 화가 나는 마음을 억누르며 나를 달래줬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까 네가 참을 일이 아니라고, 그걸 네가 왜 참냐고, 엄마도 네가 그 일을 너무 좋아하길래 망설였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해 보니 화가 나더라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마침내 ‘나 그만둬도 되는구 나.’라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었다. 누구한테 받은 허락이었을까?
사실은 그 날의 노래방에서 슬픈, 슬프다기보다는 생각하기 싫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눈빛이었다. 사무장님의 눈빛. 평소에는 점잖은, 그게 ‘척’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신사적인, 아들 딸과 통화할 때는 한없이 다정했던 목소리의 사무장님의, 그 날. 그 노래방 안에서의 눈빛. 공기업에서 창창하게 잘 나가서 주변 사람들 부러움을 사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사무장님의 그날 저녁의 눈빛. 퇴직하고 나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한창때 자기보다 못 나가서 무시하고 비웃었던 후임이, 사법 고시를 패스하고 변호사가 되어 만든 그 로펌의 사무장으로 일해야 했던 그 눈빛. 대학생인 아들, 딸의 진로를 면밀히 살펴주면서 남은 의무를 위해서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 같은 그 눈빛. 그렇게 아등바등, 한때는 빛이 나게 살아와놓고. 인생의 갈무리에 와서는 삶의 낙이라고는 없는, 진짜 인생 저만큼 열심히 살아봤자 뭐 없는 거 같은 눈빛. 그래서 한다는 짓거리가 새로 들어온 직원이나 희롱하고 있는 그 눈빛. 그 눈빛을 본 순간 나는, 경멸과 한심함 뒤에, 그것보다 더 큰 안타까움과 슬픈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절망으로 이어졌다. 사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나이 들면 다 저렇게 될까 봐. 나도 저렇게 될까 봐. 지금 아등바등하면서 발버둥 쳐서 어느 순간에는 남들보다 조금 앞서 있는 것 같은 순간이 생기더라도, 결국에 인생의 갈무리에 서는 저런 무기력한 눈빛을 하고 그저 버텨나가고 있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