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시작한 이유
1일 차
가이드를 들으며 10분의 짧은 명상.
매일 명상하기로 한 첫날이다. 이왕 하는 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깨끗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자기 전의 명상으로 머리를 비우고 숙면을 취하면 좋겠다. 근데 꼭 책상 정리 다하고 내가 원하는 노트와 펜을 골라서 딱! 하고 자리를 잡으면 하면 막상 아무것도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냥 생각나면 짧게라도 하기로 했다. 그래야 꾸준히 습관이 되고, 내 생활에 스며들 것 같다.
처음 명상을 하기로 한 것은,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을 비워내고 싶어서였다.
내 방안에는 내가 쓰는 물건보다는, 쓰지도 않고 있는지도 몰랐던 물건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 방에 나보다 물건들이 더 많고, 그 물건들에 짓눌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안 쓰는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지. 야무지게 마음을 먹고 큰 쓰레기봉투를 준비한 것이 몇 번, 생각보다 별로 버리지도 못하고 거의 빈 쓰레기봉투로 끝났다.
‘지금 버리긴 아까운데,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 같은데, 두면 쓸 일 생길 거 같은데.’ 등등등.
버리려고 마음을 먹으면, 왠지 남겨두어야 할 것 같은 이유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그렇게 여러 번 대청소를 실패하고, 정말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마음을 먹었다. 몇 년에 한 번 쓸 일 때문에 내 공간을 비좁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1년 이상 손대지 않은 물건이면, 비싸든 안 비싸든, 새것이든 아니든, 버리기로 했다. 원칙을 세우고, 타협하지 않았다. 나는 물건보다 빈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정리를 하니 준비해둔 큰 쓰레기봉투가 채워졌고, 내 방에는 꽤 많은 공간이 생겼다.
빈 공간은 어제와 똑같은 내 방을 훨씬 넓고, 쾌적한 곳으로 만들었다. 오랜만에 내 방이 마음에 들었다.
큰 쓰레기봉투는 택을 뜯지도 않은 옷, 배송받자마자 잘못 샀다 싶었는데 미처 반품하지 못한 물건, 1+1으로 받아 놓은 크림 등등 아깝게 버려지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의 잘못된 선택들을 그제야 직면하고 반성했다. 그 많은 아까운 물건들을 버리고 나니, 내 장바구니에 들어있던 수많은 물건들에 대한 물욕이 한 번에 사라진 것은 덤.
(난 이제 덤으로 받는 것들이 무섭다.)
쓸데없는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던 내 방을 정리하고, 쾌적해진 방을 보면서 내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들도 좀 비워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우지는 못하더라도 온전히 쉴 수라도 없을까.
아이패드로 영화를 틀어놓고, 손으로는 다시 스마트 폰으로 다른 정보를 찾아보며, 머릿속으로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 그 모습이 얼마 전까지 쓰지도 않는 물건으로 꽉 차 있던 내 방 같았다.
요가 수업을 들으면서, 여행 가서 몇 번 명상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꾸준히 하면 좋겠다 싶어서 듣기 편한 가이드를 찾아서 며칠 해본 적도 있지만 꾸준히 이어지지 않아서 오늘부터 명상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명상을 하면서 생각을 비우는 것은 보통 나의 호흡과, 감각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시작한다. 들숨, 날숨. 지금 들려오는 소리. 내 몸에 닿아있는 땅과 그 밖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방금까지 바쁘게 돌아갔던 내 생각이 잠깐 멈추기는 하지만, 금방 다시 속삭인다.
‘이거 끝나고 명상 일기 써야 해. 어떻게 쓰지?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까. 지금 이 10분의 명상이 끝나면 난 뭘 깨달을까? 오늘은 깨닫는 게 없으면 어쩌지. 안돼, 진짜 집중해야 깨닫지. 그래야 글을 쓸 수 있어.’ 등등등
내 생각은 또 명상이 끝난 10분 후의 미래로 먼저 가있다. 나는 지금 여기, 현재에 있는데도. 현재에 있기.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자꾸 거슬러 올라가 바뀌지도 않을 선택을 또 하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 미래에 닥칠 재앙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있기. 숨에 집중한다. 숨은 현재에만 있다. 지금의 들숨, 지금의 날숨. 이 전과도 같지 않고, 앞으로 있을 숨과도 다른, 유일한 현재의 숨.
생각이 잠깐이라도 멈추는 순간이 있기도, 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처럼 과거와 미래로 달려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현재에 있으려고 하기.
조금은 비워졌을까. 명상을 시작하기 직전에 내 생각은 연휴 동안 해야 할 일과, 연휴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사실 모두 닥치면 하게 되는 일이다.
오늘 명상하면서 물소리가 들렸는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처럼 살고 싶다. 나를 막고 있는 바위를 깨려고 싸우기보다는, 옆으로 비켜 흘러갈 수 있기를. 컵에 담기면 컵의 모양을 하고, 대접에 담기면 대접의 모양이 되고 싶다. 근데 내가 물이라면, 지금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아주 작은 물줄기라면, 나는 흐르다 보면 바다에 도착하겠지. ‘아직 산꼭대기의 작은 물줄기인데, 대체 언제 바다에 도착하지?’하고 힘들어하기엔 너무 아깝다. 내가 지금 할 일은 이 자리에서 흐르는 것이다. 지금의 흐름, 그리고 또 다음 현재의 흐름들이 나를 바다에 도착하게 해 주겠지. 나는 지금 흐르는 것에 몸을 담그고 있고 싶다.
매일 명상을 하겠다고 몇 번 마음을 먹었는데, 습관이 되지 않아서 명상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