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대: 청년(靑年)

소년(少年)과 장년(壯年) 사이: 청년(靑年)의 첫 시작.

by Horizon

해외에서 장기간 거주하고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국내 시사나 이슈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나와 비슷한 청년들은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며 눈앞에 놓인 학업, 연애 등 현실적인 문제와 맞닥뜨리느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시간이 있어도 우리를 유혹하는 SNS의 발달로 인해, 어쩌면 세상과 단절되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거나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국내 뉴스를 정독해 보려고 노력하던 중, 흥미로운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쉬었음 + 청년 = 쉬었음청년


‘쉬었음’은 비경제활동인구의 상태를 분류하는 용어이고, 여기에 청년이라는 명사가 결합해 ‘쉬었음 상태에 있는 청년’이라는 합성어가 된다. 즉, 비경제활동상태의 청년이란 뜻이다. 이 단어에는 사회 문제, 정치적 문제, 세대 갈등 같은 무거운 논쟁거리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결국 쉬었음청년이라는 말은 청년 세대의 노동시장이 차갑고 생명력을 잃어버린 싸늘한 겨울 같다는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정답을 주장하거나 판단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담담히 나의 생각을 풀어보려 한다. 청년이란 무엇인가?


청년(靑年)은 ‘푸른 시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어에서 ‘푸르다’는 blue로 표현된다. 흥미로운 점은, 푸른 시대를 영어로 바꾸면 Blue generation이 되고, 여기서 blue는 중의적 표현이 된다. 첫 번째 의미는 말 그대로 파란 세대, 두 번째 의미는 우울한 세대. 우연의 일치일까.


한자로 읽으면 생명력이 폭발할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지지만, 영어에서는 단어가 쓰이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긴 해외 생활을 하며, 한국어는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이미지가 또렷하게 그려지지만, 영어는 때때로 표현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낀다.




중의적 표현: Blue Generation


쉬었음청년을 영어로 번역하면 “idle youth”, 혹은 조금 더 솔직하게 “unemployed youth”일 것이다. 아마 사전적인 의미로는 그 표현이 더 정확할 테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의 사회학적이며 언어학적인 정의보다, Blue Generation이라는 표현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


영어의 흥미로운 점은, 언어가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을 품는다는 것이다. 같은 단어라도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표정을 띤다. 어쩌면 언어는 우리보다 먼저, 상황을 감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나는 사회를 비판한다. 구조의 문제를 말하고, 이 시대의 청년을 한탄하며 “we are a blue generation”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blue는 우울과 무기력이다. 몸을 일으켜 세우기조차 버거운, 침체의 색이다.


하지만 장면을 조금만 바꿔보자. 나는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고, 영어가 서툰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세대를 설명하려 한다. “my generation is a blue generation”이라고 말하면, 그때의 blue는 푸른 봄, 생명력을 품은 계절이다. 서툰 발음으로 건네는 한 문장이, 누군가의 귀에는 청춘의 빛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같은 언어, 같은 문장, 같은 사람.
단지 상황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단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서 있는 자리, 말하는 태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에 따라

어떤 단어는 우울이 되기도,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쩐지, 청년의 모습과 닮아 있다.




청춘 (青春): 푸른 봄


우리는 종종 ‘청년’과 ‘청춘’을 같은 말로 혼용하지만, 두 단어는 닮았을 뿐 전혀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청년(青年)은 법과 사회가 정해놓은 숫자의 구간에 속한 사람들, 예컨대 19세에서 34세 사이의 이들을 가리키는 행정적인 용어에 가깝다. 나이라는 숫자로 구분되고 관리되는 대상, 통계의 표 안에서 쉽게 합산될 수 있는 존재들.

하지만 국가의 서류에 찍힌 숫자가, 우리의 젊음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반면 청춘은 생물학적 연령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 삶의 태도, 방향성에 관한 말이다. 불안해도 꿈꾸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고, 실패 속에서도 자신만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에 존재하는 상태.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청년일 수 있지만, 청춘이 아닐 수 있다. 나이로는 젊지만, 마음이 이미 오래 굳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청춘일 수 있지만, 청년이 아닐 수 있다. 나이는 숫자로 늙었지만,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여전히 무언가에 설레고, 여전히 가능성을 좇는 이들. 그들에게는 여전히 봄이 있다. 청춘은 숫자가 아니라 호흡과 빛을 잃지 않는 시기의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청년’보다 ‘청춘’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청년은 정해진 범주 안에서 분류되고 규정되지만, 청춘은 흘러가고 흔들리고 다시 피어난다. 봄처럼, 언제든 다시 찾아오는 계절처럼. 우리는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설령 빛을 잃더라도 다시 피어날 수 있다.




푸른봄과 차가운 겨울 사이의 경계선


푸른 봄은 누구에게나 돌아온다.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빛을 잃더라도,
언젠가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계절로.

나는 그 봄을 믿는다.
회복되고, 다시 피어나고, 다시 웃게 되는 계절을.

그 계절을 나의 청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은 겨울일지라도,
누구에게나 봄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