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젊음사랑 -> 낭만청춘사랑

낭만, 청춘, 사랑이란 배를 타고 미지로 떠나갈 거야. 하지만 괜찮을거야

by Horizon

코로나 시기, 해외에서 공부하던 나는 자주 한 곡의 노래를 들었다. 이세계(ESEGYE)의 ‘낭만젊은사랑’. 제목처럼, 이 노래는 낭만과 젊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이야기다. 노래 속 화자는 말한다.

길을 잃어도 괜찮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괜찮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 말에는 어떤 근거도 없다. 경험도, 계획도, 보장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막상 그 길에 발을 들이면 방황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잠식될 것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말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함께라면, 우리는 어딘가 도착할 거라고. 그 담담한 선언이 바로 낭만의 힘이고, 그 무모한 확신이 사랑의 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제목 속 ‘젊음’이라는 단어가 아쉽다. 불완전한 우리를 감싸는 단어로 ‘젊음’보다 ‘청춘’이라는 말을 넣고 싶다. 청춘은 단순한 나이가 아니라, 불안을 끌어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표현한다.

서툴고 미숙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보겠다고 발을 내딛는 용기.


물결을 흩으며, 미지로 나아간다. 낭만 아닐까?


낭만 (浪漫): 물결이 흩어지는 순간


사전에서는 낭만을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혹은 그런 분위기"로 정의한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말만으로는 낭만이 무엇인지 선명히 잡히지 않는다.

감상적이고 이상적이라니, 도대체 어떤 감정의 결을 말하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낭만은 현실적이고 안전한 장소에서 벗어나는 태도라는 점이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 걷는 대신, 때때로 엉뚱한 길로 새는 것.
할 줄 아는 방식으로만 살아가는 대신, 불완전한 감정들을 끌어안고 흔들리는 것.

‘낭만(浪漫)’이라는 표현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물결 랑(浪)과 흩어질 만(漫).
그 뜻을 정확히 따라가면, 낭만은 ‘제멋대로 흐르는 것’이다.
흘러가는 물결처럼, 정확한 형태를 지니지 않고 퍼져나가는 마음의 움직임.




다른 관점에서의 낭만


낭만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며칠째 노래들을 헤매다가, 전혀 다른 결을 가진 두 곡을 마주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최백호 님의 〈낭만에 대하여〉 였다. 비긴어게인 3에서 무대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노래인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멜로디는 아니었음에도 그 시대 특유의 눅진한 감성과 서늘한 곡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낭만은 청년의 반짝임이 아니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천천히 내려다보는 태도,
사라진 것들에 묻힌 마음의 결을 조용히 쓰다듬는 감정이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여기서도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 있다.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하지만 나는 청춘이 나이로 구분되는 시기가 아니라고 믿는다.

마음속에 아직 흔들림이 있고,

낯선 길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용기가 있다면,

그 순간이 이미 청춘이지 않을까.


그러나 동시에, 어른이 되고 나서야 이해되는 낭만도 있다.

누군가가 떠난 자리, 세월이 빠져나간 틈을

이제는 슬픔 대신 하나의 풍경처럼 바라보게 되는 관점.

그 속에서 낭만은 ‘상실을 견디는 법’으로 모습을 바꾼다.


두 번째 곡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왔다. 빅나티 (BIG Naughty)로 활동하는 서동현 님의 〈낭만교향곡〉.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인데, 그의 음악에는 또렷한 청년의 온도가 있다.
서툴고 불안하면서도, 뜨겁고 진심인 감정들. 언제 들어도 그 결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낭만은 최백호의 낭만과는 사뭇 다르다. 상실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힙합보단 클래식 첼로를
2pac 보다 멘델스존을
좋아하는 널 위해
스네어 킥 클랩 전부 뺐어


여기서의 낭만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청년의 낭만이다.
자기 세계에 머물러 있던 미숙한 청년이 사랑을 계기로

힙합에서 주로 사용되는 스네어 킥 클랩을 빼고,

다른 취향과 다른 감정의 색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랑은 그에게 새로운 언어가 되어, 그 언어를 따라가며 그는 조금씩 확장된다.
배우고, 닮고, 그리고 서서히 바뀌어가는 일.





두가지 낭만에서의 경계선


낭만이라는 말은 끝내 하나의 정답으로 묶이지 않는다.
어른의 낭만은 잃어버린 것들을 슬퍼하기보다 조용히 품는 태도에서 피어났고,
청년의 낭만은 사랑을 통해 자기 세계가 흔들리고 확장되는 순간에 스며 있었다.


두 노래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지만,
그 밑바닥에는 공통된 움직임이 있다.
고정된 형태에서 벗어나고, 정해진 결을 깨는 일.
낭만은 어쩌면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물결이 흩어지듯,
정답을 따라 걷는 대신 새로운 길로 새고,
이미 알고 있다고 믿던 세계를 다시 낯설게 바라보는 일.
그 작은 일탈 속에서 마음은 흔들리고, 흔들림 속에서 새로운 모습이 드러난다.


누군가는 말한다.
낭만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힘이라고.
익숙함에서 한 걸음 벗어나 흔들릴 용기—
어쩌면 그 흔들림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낭만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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