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을 빠져나갈 용기

현실적인 길 말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by Horizon

현재, 해외에서 의과대학 예과를 마치고 본과에 들어가기 전의 꿀 같은 방학을 보내고 있다.


예과 동안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을 보상받듯 요즘은 비교적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이 여유 속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주 같은 유사과학을 맹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모님은 좋은 날에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왕절개와 함께 내 생일을 정했다. 그때 들은 말이 있다. 물을 건너 다니며 살고, 법전을 흔드는 사주라고. 당시에는 비행기를 탈 형편도 아니었고, 유학은 더더욱 먼 이야기였기에 그저 흘려들은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부모님의 사업이 확장되며 금전적 여유가 생겼고, 가족은 나에게 유학을 권유했다. 넓은 세계를 보고 시각을 넓히라는 취지였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를 타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왔다. 하라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피하며, 최대한 안정적이고 보장된 길 위에서. 다른 말로 하면, 꽤나 고정된 삶이었다.


최근 나는 그 고정관념 앞에 서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유학생활을 정리할지 고민했다. 8년, 삶의 거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공부하며 보냈다. 흥미를 따라 공부해보기도 했고, 많은 이들이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길, 쉽게 닿기 어렵다는 의과대학에 합격해 그 안에서 배우는 시간도 가졌다.


본과에 들어가기 전 생긴 이 잠깐의 여유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되짚었다.

수많은 조언과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나는 하나의 결론에 닿았다.


나는 유학생활을 잠시 멈추고,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를 해보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한 번 살아보고 싶다.

그렇다.
나는 낭만주의자다.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정형화된 틀이 팽배하는 고전주의에서 벗어나 탄생한 사상이다. 고전주의는 음악과 미술에서 나타났고, 그 핵심은 이성, 질서, 균형, 조화가 치밀하게 조율된 세계다. 만약 이 사고방식을 한국 사회에 대입한다면, “공부를 잘해서, 수능을 잘 쳐서, 의대를 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안정적인 루트라는 믿음과 닮아 있다.

한국 사회는 이런 고전주의적 의식이 짙게 배어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낭만주의는 무엇인가.


낭만주의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정형화된 질서에서 벗어나 개인의 감정과 자유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태도,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는 사유. 그렇다, 나는 낭만주의자에 가까운 것 같다. 들쑥날쑥한 나의 인생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물 흐르듯 부설초등학교에 들어가고, 과학영재로 초등학교 6학년 때 근교 대학에서 활동도 해보고, 평범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때 갑자기 유학을 선택했다. 해외에서 코로나를 겪으며 5년을 보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의대 본과 진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청춘의 시기 동안, 나에게는 사회가 미리 정해놓은, 고전주의적인 경로를 따라 살아갈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유학이라는 선택도 있었고,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의사가 될 수 있는 기회까지. 수많은 선택과 결과가 있었다. 때로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선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사회적으로 검증된 루트였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고정관념을 깨는 삶.

낭만적이지 아니한가.




고정관념


말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관념이다. 영어의 stereotype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stereos는 단단한(solid), typos는 인상이나 흔적(impression)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가 처음부터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언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stereotype은 원래 인쇄술에서 쓰이던 말이었다. 주형(mold)으로 만든 단단한 인쇄판을 일컫는 용어였고,

동일한 텍스트를 여러 번 찍어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말하자면, 한 번 찍힌 문장을 그대로 복제하는 기술.

이 단단한 판 위에 새겨진 문장은, 그 판이 닳아 없어지기 전까지 같은 모양으로 반복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금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찍어낸다’.

사회가 만든 주형에 누군가를 대입하고, 그 틀에서 예상하고, 판단하고, 이해한다.
그 사람의 개별성보다 이미 새겨진 인상이 더 빠르게 호출된다.


처음 해외에서 학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인쇄된 틀’이 나에게 적용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수학을 잘할 거라는 기대를 받았고, 학교의 선생님은 나의 영어 실력이 낮을 것이라 판단하여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코스를 권했다. 영어를 조금씩 연습했던 경험 덕분에 면담 후 철회되었지만,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분명히 느꼈다.
나는 한 개인이기 이전에, 사회가 찍어놓은 이미지였다.


세상에는 여러 고정관념들이 존재한다. 의사는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믿음,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말, 30대 전에 1억은 있어야 안정되다고 속삭이는 사회적 압박. 나는 이것들을 무조건 부정하고 싶지 않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고정관념은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생존 전략이다. 틀을 따르면 실패할 확률이 낮고, 사회가 인정한 길을 걷는 것이 곧 안전이라는 계산.


문제는,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이다.

틀 밖은 미지의 영역이고, 그 안에서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성공일 수도, 실패일 수도, 혹은 그 사이 어딘가 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이 불확실함이 기이하게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안전한 길에서 벗어나는 선택, 반복되는 인상을 거부하는 태도,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걷는 용기.

그 행동은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무모하다.
하지만 그것이 물결을 흩어지게 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낭만'인 것이다.




질서와 낭만 사이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항해를 한다.

누군가는 안전한 항구에 남고,

누군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청춘에게 말하고 싶다.

낭만은 여전히 존재하니,
두려움 대신 설렘을 택하고
한 번쯤은 청춘을 불살라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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