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끝맺으며 하는 말, Bravo!

시작이 아닌, 마무리에 대하여

by Horizon

3–4년 전부터, 새해의 문을 여는 첫 노래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가 생겼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노래 가사에 한 해의 운을 슬며시 맡긴다. 가사처럼 흘러가길 바라며, 다가올 1년의 기분을 미리 정해두는 의식이다. 누군가는 블랙핑크 리사의 'Money'으로 재물을, 누군가는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으로 기세를, 누군가는 가호의 '시작'으로 새로운 출발을 고른다. 취향도 다르고, 바람도 달라서 선곡은 늘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늘 말했다. 시작만큼이나 끝맺음이 중요하다고. 끝이 단정해야 기억은 오래 남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남들과 다르게, 한 해를 열 노래가 아니라 닫을 노래를 골라보기로 했다. 200개가 넘는 곡이 수록되어 있는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넘기다 멈춘 곡은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였다.


10초의 자유


무심코 넘기던 유튜브 쇼츠 피드 속에서, 이 노래가 배경으로 깔린 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고의였는지,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중년의 양복 차림 남자가 야구장 필드 위를, 마치 비행기가 된 것처럼 팔을 벌린 채 달리고 있었다. 습관처럼 댓글을 열고, 화면 바깥의 타인들과 감정을 읽고 있던 그때, 그곳에서 예상보다 큰 감동을 받았다.

평생 ‘일탈’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을 한 사람이, 드넓은 야구장 한가운데서 잠깐의 자유를 허락받은 듯한 장면. 누군가에겐 눈살을 찌푸리게 할 행동일 수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웃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낭만 있는 일탈’이라고 불렀다.

결국 그는 야구장 관계자에게 순순히 붙잡혔고, 돌아가는 뒷모습까지 영상에 담겼다. 고작 10초 남짓한 짧은 영상이었지만, 나는 그 10초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해방감과 묘한 감정을 함께 느꼈다. 그가 어떤 이유로 필드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영상 위에 흐르던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가 그 장면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멜로디보다, 가사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팔을 벌리고 잠시 달렸던 한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노래는 그렇게, 나에게 조금 더 깊이 들어왔다.


해 저문 어느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에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날
그리 좋진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 보면
하지만 앞으로 나가
네가 가는 곳이 길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 가사를 곱씹어보면, 마음에 힘이 들어온다. 하루가 저물 듯, 1년 또한 그렇게 저물어 간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 뒤에는 언제나 후회가 따라붙는다. 우리는 그 후회를 줄이기 위해 신중해지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밀어낼수록 더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때로는 우리를 조용히 잠식한다.

그래서 지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묻힌 후회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흐리고 불확실한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가 말하듯, 길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아가는 방향 위에 놓인다. 해가 저문 오후에도, 석양 없는 저녁에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마음먹는 작은 용기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래서 이 노래는 우리에게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브라보라고. 무대 위에 선 사람에게 보내는 이 짧은 환호는, 완벽함을 향한 찬사라기보다 그 자리에 섰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박수에 가깝다.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감히 올라섰기 때문에 건네는 말. 끝까지 버텨낸 사람에게 보내는 조용한 인정이다.

흥미롭게도 이 bravo는 ‘용기’를 뜻하는 brave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어원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반듯한 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15세기말 영어로 건너오기 전, 이 단어는 라틴어 bravus—자객, 악당, 위험한 존재, 즉 사납고 통제되지 않은 상태를 뜻하던 말에서 출발했다. 한때는 ‘화려한 겉모습’이나 ‘눈에 띄는 태도’를 가리키기도 했다. 아직 안전하다고 증명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고, 그래서 더 눈길을 끌던 상태였다.

그래서 brave는 처음부터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흔들리고, 무모해 보이고, 어쩌면 틀릴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그 선택은 비로소 bravo가 된다. 선택의 순간에는 우리는 brave로 남아 있고, 끝까지 지나온 후에야 박수를 받는다. 결국 bravo는 잘 준비된 사람에게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한 해를 살아낸 사람에게 돌아가는 말이다.

D7F44AAA-4F47-4832-97D2-19B54F08064D.JPG 더 잘 살겠다는 다짐보다,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축하.

산울림이라는 밴드에 소속되어 있던 김창완 씨의 새해다짐을 인용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해보려고 한다.

새해에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겠습니다.
마치 처음 태양을 맞이하듯 거창한 마음가짐도 갖지 않겠습니다.
새해가 되었다고 갑자기 착한 사람이 되거나, 하루아침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거라는 망상도 내려놓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건강이 넘치기를 바라는 터무니없는 다짐 역시 조용히 접어두겠습니다.
다만, 새해에는
조금 더 잘 보고,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고,
더 잘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1년 동안 충분히 용기 있게 달려왔습니다.
지나간 일에 머무르기보다, 다가올 하루에 기대를 걸며
또 한 번의 조용한 시작을 응원합니다.
1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아갈 용기를 가진 우리에게—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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