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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른 CGV 방문기

멀티버스 G8의 세계관 충돌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할 때에도, 좀처럼 영화관을 찾지 않는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영화 광고를 보여줬다. 이 똑똑한 인스타그램이 언제 내 취향을 파악했는지…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몹시 구미가 당겼다. 배우의 작품을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양자경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이상하게 멀티버스 같은 단어가 튀어나오고 까리한 영상 느낌이 들더니 ‘아 이거 딱 내가 좋아하는 SF 장르의 B급 영화인가 보다. 딱 내 스타일이다.’하는 직감이 왔다. 일단 이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있었고 OTT로 공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아무리 보고 싶은 영화라 하더라도 영화관에 가야 한다면 마음을 쉽게 접어버린다. 나중에 생각나면 보겠다는 생각으로 넘겨버렸다.   


아무리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궁금해도 영화관까지는 발길이 닿지 않는다. 남들에게 영화관이 별것 아닐 수 있는데 나에게는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 영화관에 가지 않는 이유는 나의 오기 분투 에세이 <망하려고 만든 게 아닌데>에도 고백한 적 있는데, 영화관 안에서 2시간 동안 ‘갇혀’ 있다는 생각에 고정된 자세로 있는 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불안해지기도 해서 나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어쨌든 극장에 대한 불편함이 나의 호기심을 이겨버린 셈이다. 


하지만,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 원스》는 이미 마음에 들어온 영화라 그런지 인스타그램에 유난히 내 눈에 띄었다.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유명한 마케터들이 너도나도 리뷰를 올렸고, 갈수록 호기심이 커지는 데 한몫했다. 이 영화는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무척 마음이 가고 만다는 데, 아 딱 내 스타일인데...


결국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몇 년 만에 CGV에 갔다. 풀타임 직장을 곧 그만두는 시점이라 주말에 사람이 많을 때 극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 보고 싶은 영화를 자꾸 놓치는 게 아쉬워서 영화관 공포를 극복해 보자는 생각이 점차 커지고 있기도 했다. 이 참에 극복하기로 결심했다. 오빠는 그런 나를 응원하며 흔쾌히 영화를 예매해 줬다. 영화광 우리 오빠는 나에게 가장 좋은 자리 같은 7관 G8 자리를 선물했다. 영화관에 가는 게 얼마나 낯설던지, 영화관 한 번에 찾아가지 못했고, 영화관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렸고, 입구를 못 찾아서 남들에게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한 장소를 뺑뺑 돌고 나서야 7관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양 옆이 비어서 더욱 안심이 됐다. 만약 불편함을 느끼게 돼서 자리에 앉아 뒤척거리게 된다면,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다.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상영된 지 1분이나 흘렀을까? 대사가 벌써 화려하게 오갔고 흰 글씨 자막에 시선을 고정했다. 극장이라는 환경에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불편함을 덮어버리기 위해서는 영화 내용에만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커다란 덩치의 남자 3명이 계단 위를 성큼성큼 올라왔다. 내가 G열 좌석 한가운데 앉았는데도 그들이 다 보일 정도였다. 아직 영화에 충분하게 집중할 만한 시간도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앉은 G열 맨 끝에 멈췄다. 그들이 내 옆 자리를 채우지 않기를 내심 바랬다. 잠시 멈춰서 수군거리던 그들 중 한 명이 90도로 허리를 굽힌 채로 나에게 다가와 멈췄다. 

“저기요, 여기 저희 자리인데요.”


영화관 오는 것조차 낯설어 10분 전에 미리 와서 앉았고, 광고까지 성실하게 다 보고 오프닝을 맞이한 나는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예매해 준 오빠에게 고맙다며 G8 티켓을 인증숏으로 보내기까지 했는데 설마 내가 잘못 앉았을 리가 없었다. 다른 누군가 잘못 앉았다고 알려준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우선, 주섬주섬 외투를 펼쳤고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티켓을 펼쳤다. 스마트폰 불빛으로 비춘 그의 티켓에서도 선명히 찍힌 G8이 보였다.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명히 내가 제대로 앉아 있는 것이 맞는데 당황스러웠다. 


“저희가 G7, G8, G9를 모두 예매했어요. 저희 자리가 맞거든요.”

어두운 남자에게 남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들은 G열 맨 끝에서 사라지지 않고 또 수군거렸고, 나는 곁눈질로 눈치를 봤지만,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일어나 나오기를 바라고 기다린 것 같은데, 남자가 허리를 굽히고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서로의 티켓을 한 번 더 확인하기로 하고, 불빛이 새지 않는 위치를 조준해 티켓을 쫙 펼쳤다. 


내가 아무리 영화관에 자주 들르는 편은 아니어도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좌석을 잘못 찾을 정도로 어리 버리 한 사람은 아닐 거야. 나는 아닌데, 진짜 억울해. 행여나 내가 이런 실수를 한다고? 그래도 이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면, 나는 그럼 어디로 나가야 할까? 당황한 나머지 머리가 혼란스러워질 때쯤 회심의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저기요, 이 티켓 월요일 날짜인데요?”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11월 20일 일요일 G8에 앉은 나의 승리였다. 남자 3명은 11월 21일 월요일 G7, G8, G9을 예매했던 것이다. 내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길 바랬던 것 같은데, 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허리를 이미 90도 굽힌 채였는데 사과하려고 25도 정도는 한참 더 굽혔다. 나는 사과를 들었고, 큼직한 남성 3명은 서둘러 상영관을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미 영화는 나를 기다려 줄 새도 없이 한참 진행되어 있었다. 


영화는 예상했던 대로 딱 내 스타일이었다. 다음에도 좋아하는 영화가 나온다면 오롯이 혼자서 이 모든 과정을 또 극복 나갈 것이다. 그때는 내 안의 멀티버스 중에서 가장 용감한 알파 캐릭터를 꺼내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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