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글】최규영 작가님을 추모하며

그대, 감사했습니다

by 이루리

첫 문장을 읽자마자 심장이 두근대는 때가 있다. 감동이 아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끌어당기는 어떤 힘. 진득한 밀도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무게를 가진 문장들. 무게가 순식간에 내면으로 들어와 나를 가라앉힌다. 시간이 멈춘다. 나는 눈 앞의 정경에 몰입한 채 시공간을 잃고 만다. 보통 첫 문장의 두근거림은 글의 전체적 느낌을 견인한다. 시작부터 파도처럼 밀려든 글은 언제나 카타르시스보다 침묵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사실 딱 맞는 퍼즐처럼 틈이 없는 문장과 시의적절하게 놓인 단어만큼 두근대는 물건이 없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감동’이란 단순한 표현으로 말할 수 없다. 부러움도 아니다. 경외감. 그래, 경외감이었다. 손이 달렸다는 이유로 쓰레기를 마구 써버리는 내가 감히 닿을 수 없다는 경외감.


글을 읽으며 경외감을 느낀 경험이 두 번 있었다. 김미옥 작가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읽었을 때, 그리고 <브런치 스토리>에서 무명 논객의 글을 읽었던 순간. 나의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이라, 이성과 논리의 힘으로 타인을 설득할 자신은 없다. 그들의 글이 내 가슴에 진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만 확신으로 남았다. 특히 무명 논객의 글은 아픔의 발자국이었다.


그는 칼처럼 잘 벼려진 문장에 좌절과 고난을 묻히곤 했다. 자호(自號, 스스로 붙인 호)를 유폐(幽閉, 깊숙이 가두어 둠)라 명명한 그였다. 스스로 붙인 호(號)처럼 그는 자신을 어둠 속으로 밀어넣은 채 기록을 이어나가는 모양새였다. 유폐. 그 이름이 예언이 될 줄 몰랐다.


그의 기록이 올라오는 날, 나는 숨을 멈췄다. 알림으로 떠오른 그의 글 앞에서 나는 장막에 가려진 조각상을 기다리는 청중과 같았다. 작달막한 손가락으로 그의 문장을 따라가는 동안 내 심장 박동은 그의 호흡과 겹쳐졌다. 대체로 어둠의 심연이 밀도 있게 응축되어 있던 그의 숨결. 밀도란 건 허공이 아니다. 무게를 지닌 무언가다. 가라앉히는 힘으로 증명한다. 그의 문장들은 나를 저 아래로 끌어당겼다.


나는 그가 살아 있다고 믿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명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문장 하나하나에 새겨진 그의 손길이 생명의 흔적이라고 판단했다.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살아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세계의 고통은 하나의 멍울이 되어 그를 짓누르다 못해 저승의 심연으로 견인한 모양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로써도 버틸 수 없었던 무게에 눌렸다는 것. 그 무게를 나는 헤아릴 수 없다.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부고 소식을 접한 날. 세상으로부터 그를 앗아간 모든 것을 저주했다. 무엇이 그를 앗아간 것일까. 실존에 대한 고민? 꿈에 대한 좌절? 아니면 내가 알 수 없는, 그가 홀로 떠안았던 고독의 무게? 유폐라는 자호가 예언이 되어 버렸다. 그는 스스로를 깊숙이 가두어 두었고, 결국 구속된 어둠 속에서 소멸했다. 지난 몇 일 그가 남긴 문장을 곱씹던 나는 그의 부재를 실감한 채 마음으로 울었다.


더 이상 그의 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그의 문장이 멈춘 자리에, 나는 며칠이나 서 있었다. 돌아오리라 예견했던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는 청중처럼, 나는 그의 부재 앞에서 숨을 멈춘다. 그가 남긴 문장들이 이제는 유품이 되었다. 문장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소시민처럼 안도하고, 부끄러워 입술을 물었다.


나의 본업은 ‘기억하는 사람’이다. 철학도로서 나는 현대인들이 살피지 않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보존하며 기억한다. 나는 그 또한 기억하고 싶다. 칼처럼 벼려진 문장으로 고통을 치밀하게 응축시켰던 그의 손길을, 문장과 문장의 행간에 가로 새겼던 그의 아픔을, 돌아올 날을 기약하지 않은 채 허공에 흩날린 그의 존재를 기억하겠다.


부재와 결핍을 견디는 건 남겨진 자의 몫이다. 그의 부재가 남긴 허망함에 내가 범한 오해를 자책했다. 글을 쓴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명이 아닌 살아 있고자 했던 몸부림의 흔적인지 모른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흘러간 시간만큼 그의 흔적만 세상에 휘날렸다. 아스라이 남은 그의 흔적 앞에서, 남겨진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