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흔들리는 종이의 시간

오랜 친구와의 이별 이야기

by 이루리

오랜 친구와의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일상의 일부로 굳어 있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공기처럼 사라진다. 그 부재는 처음엔 낯설지만 곧 익숙해진다. 인간의 기억이란, 그렇게 잔혹한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학교 서점은 내가 오랜 시간 머무르던 장소였다. 책에 대한 사랑이란 진부한 이유가 아니다. 생존의 무게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나는 늘 계산대 앞에서 잠시 멈췄다. 나는 손에 든 책 몇 권을 두고 생존과 이상을 저울질했다. 전공 서적 몇 권이면 식비 한달치가 증발했다. 책을 집을 때마다 한 권의 무게에 삶의 윤리가 실렸다. 때로 책을 내려놓는 손에 타협이 들어찼다. 가장 필요한 걸 먼저 사고 나머지는 복사로 때우겠다는 불안한 타협. 그 타협 속에서 나는 서가 사이를 부유하는 존재였다.


서점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좁은 통로, 켜켜이 쌓인 종이 냄새, 책의 출입에 날리던 먼지, 그리고 카운터 뒤에 서 있던 무뚝뚝한 사장님. 지루하게 반복된 풍경은 내 불안한 청춘의 배경화면이었다.


대학원도 같은 학교로 진학했기에 나는 여전히 서점을 찾았다. 방문의 형태는 같았지만 의미는 달랐다. 생존의 무게보다 결핍의 중력이 나를 이끌었다. 당시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문으로 가득한 원전, 그리고 절판된 전공 서적들. 사장님은 전국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책을 구해주곤 했다. 그의 집요함이 내 연구의 지속성을 만들었다. 학문은 늘 개인의 열정 위에 서 있지만 열정을 지탱해주는 것은 누군가의 노동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서점의 공기가 점차 희미해졌다는 것. 세상은 종이 대신 태블릿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복사와 스캔이 종이책의 가치를 몰아내기 바빴다. 흐름을 따라 손으로 넘기는 책은 전설 속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책을 고르고, 기다리고, 받아 들고, 첫 장을 펼치는 느리고 지루한 가치는 유물이 된 지 오래. 기술은 인간의 결핍을 덜어주는 듯했지만 감각을 앗아갔다. 실존의 무게는 이제 서점의 몫으로 옮겨가는 듯했다.


그즈음 나는 병에 걸렸다. 긴 투병이 예고됐고, 대학원 연구실 자리를 비웠다. 익숙한 공간이 일상에서 사라지고 생소한 감각이 몸을 지배했다. 지독하게 낯선 시간이 흘러가며 삶의 기억이 아스라이 멀어졌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10월 초, 의사로부터 증상 정지 판정을 받은 나는 다시 학교로 향했다. 오랜만에 복도 끝 연구실 문을 여니 먼지 쌓인 책상 위로 빛이 기울었다. 한창 자리를 정리하는데 필요한 물건이 생겼다. 나는 경영관 지하 2층으로 향했다. 그 곳에 내려가는 계단의 퀴퀴한 냄새조차 반가웠다. 서점에도 들를 생각이었다. 손에 주문할 책 목록을 꼭 쥔 채로.


처음에 내 눈을 의심했다. 있어야 할 서점이 없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유리 너머가 어둠으로 가득했다. 언제나 사장님이 서 있던 서가가 텅 빈 채 스산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주인 잃은 먼지만 가득할 뿐이었다.


놀란 얼굴로 문구점 사장님께 물으니 “파산해서…”라며 겸연쩍게 웃으신다. 끝나지 않은 말 끝에 설명하지 못한 사정이 매달렸다.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 서점 문 앞에 걸린 A4 용지를 발견했다.

[파산으로 인해 문을 닫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문장은 간결하고 흠이 없는데 비문(非文)처럼 느껴졌다. 흠결이 없는데 결함이 보였고 끝이 났는데 끝나지 않은 문장으로 느껴졌다. 할 수 있다면 “잠시 쉽니다” 정도로 고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뒤로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종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공간이 내쉰 마지막 숨결처럼 위태로운 흔들림이다. 흔들리는 종이 속에서, 나는 짠맛 나던 20대의 잔향이 떠올랐다. 어두워진 유리문으로 비친 내 얼굴에서 이제 찾을 수 없는 친구에 대한 아련함이 묻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점의 풍경이 자꾸 떠올랐다. 사실 인간은 익숙한 것을 쉽게 영원이라 착각한다.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을. 존재는 언제나 사라짐을 품에 안고 현재를 버텨낸다. 투병하는 순간마다 느끼던 것이 아니던가. 세상의 모든 존재는 유한(有限)이란 슬픔을 지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현관문이 열린다. 우리 집 강아지 보리가 달려 나왔다. 낑낑대며 반기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한 털의 감촉이 손끝에 남았다. 손끝을 타고 전해진 보리의 생명을 소중히 다루겠다는 소망을 담는다. 이 아이도, 나도 언젠가 추억 속에 서로를 묻어야 할 것이니 말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모든 존재는 현재에 흔들리다 언젠가 사라진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의 진동을 뇌리에 새겨 기억하는 것 뿐. 머리로 자각했으나 마음으로 수용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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