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기다림

날아오르기 전 숨을 고르는 시간

by 이루리


거부하고 싶어도, 삶은 기다림과 분리되지 않는다. 동백은 혹한의 뒤편에서야 붉음을 허락하고, 겨울을 통과한 개구리만이 후사를 잇는다. 존재는 각자의 시간을 품은 뒤에야 비로소 절정에 닿는다.


이른 봄, 양봉장을 찾은 이들이 놀라는 이유도 같다. 벌이 분주히 날아오를 것이라 기대하지만, 막 겨울이 물러난 양봉장은 적막하다. 멈춤의 계절. 봄이 온전히 자리를 잡기 전, 벌은 숨을 고른다.


그러나 침묵은 표면에만 머물 뿐, 내부는 분주하다. 혹한에 훼손된 봉장을 수리하고, 새로 태어날 애벌레를 기르고, 추위를 버티지 못한 동료의 몸을 밖으로 옮긴다. 서두름이 없는 노동. 정비의 시간. 그들은 조급함의 리듬을 거부한다.


조급함의 부재는 유전자에 새겨진 인식 덕분이다. 불안은 꽃을 열지 못하고, 긴장으로 자연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자연의 운행은 누구에게나 균등하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힘을 비축한다. 준비의 유무가 시간의 가치를 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른 봄 벌통을 열며 나는 인간의 조급함을 떠올렸다. 머리로는 기다림을 이해하지만, 가슴은 아직 속도를 좇는 우리들. 사소한 일에도 발끝이 들썩이고 마음이 앞서는 우리들. 수험생처럼 늘 조급했던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주역』의 수괘(需卦)는 인간의 조급함에 단호한 경계를 세운다. 무지몽매한 몽괘(蒙卦)의 시간을 지난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밝아지지 않는다. 갓 난 존재에게는 시간을 통과할 무게가 필요하다. 어려움이 닥쳐도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 스스로 돌보며 기초를 다져야 한다.


꽃을 기다리는 벌은 군집을 키우고, 질서를 정렬하며, 내면의 기둥을 단단히 세운다.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성숙이 자란다.


성숙한 벌들은 공기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봄 바람결에 실린 아카시 향. 그것이 신호다. 침묵을 깨고 문을 여는 순간, 양봉장 주변의 아카시 숲은 벌 소리로 진동한다. 기다림을 견딘 자의 환호다.

꿀벌이 하루 종일 모을 수 있는 꿀의 양은 고작 0.4g. 꽃과 벌통을 열 번 넘게 오가야 가능한 수치다. 힘을 비축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양봉가가 꿀 한 방울도 허투루 쓰지 않는 이유는 이 결실이 기다림의 정수임을 알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기회와 성취, 사랑과 새로운 시작을 우리는 기적이라 부르지만, 그 기적의 바탕에는 헤아릴 수 없는 인내와 기다림이 흐른다.


나는 마음이 작아지고 다리가 땅속으로 잠기는 느낌이 들 때 양봉장을 찾는다. 벌통 앞에 앉아 귀를 기울이면, 고요 속에서 웅― 하는 작업의 진동이 들린다. 보이지 않아도, 벌은 언제나 준비하고 있었다. 작은 생명들이 이어온 생존의 기술.


삶이 정체되었다고 느껴질 때, 벌이 건네는 메시지를 기억하고 싶다. 꽃은 각자의 시간표에 맞춰 피고, 개화의 힘은 기다림의 심장에서 자란다는 것. 자연은 모든 존재에게 그 시간을 공평히 할당한다는 소리.

어쩌면 지금 누군가도 기다림의 시간을 건너는 중일지 모른다. 기다림은 고통스럽고, 불안하며, 성과 없는 손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에서 붓다는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조급히 동경하지도 말며, 지금 이 순간을 총명하게 통찰하라고 말했다. 과거의 그림자도, 미래의 안개도 현재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미래는 여전히 안개 속이지만, 믿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서두르지 말고, 눈앞의 일만 바라보며. 기다릴 줄 아는 이들에게는 언젠가 문이 열린다는 믿음을 가지고.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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