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몽괘(蒙卦)의 시간

출발선에 선 모든 이를 위하여

by 이루리


에픽테토스는 『Enchiridion』 13장에서 내면의 발전을 조언했다. 표면에 드러난 어리석음에 신경 끄고 진실한 성장에 매진하라는 권유였다. 같은 맥락에서 공자(孔子)도 “알지 못함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不知為不知, 是知也]”라고 했다. 진정한 지혜란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서 발아한다는 선언이다.

생각하면 아는 척이란 부끄러움에서 비롯된다. 내부의 공백이 노출될까 두려워 허둥지둥 자신을 꾸미는 행위. 지나친 꾸밈은 더 큰 부끄러움을 부를 때가 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모름을 속이면 어리석음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이 탄생한 이유다. 서문의 “배우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다 [人生斯世, 非學問, 無以爲人.]”는 첫마디에 움찔하지만, “공부란 일상생활에 있으니 [皆於日用動靜之間]” 힘써 노력하면 될 것이란 말에 위로받는다.

『격몽요결(擊蒙要訣)』의 “몽(蒙)”은 바로 주역의 몽괘(蒙卦)에서 왔다. 주역의 네 번째 자리에 앉은 몽(蒙)은 처음 등장한 사물들을 표상한다. 낯설고 미숙하며 어리석다. 그들을 위해 몽괘(蒙卦)는 배움과 성장, 지혜의 출발선을 끊는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부끄럽고 미숙하다. 자연의 이치다.

벌도 마찬가지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여왕벌은 알을 낳고, 아기 일벌이 태어난다. 갓 태어난 벌은 귀여움의 극치다. 작은 몸, 보송한 털, 비틀거리는 첫걸음에 떨림과 미숙함을 동시에 담는다.

‘일벌’로 태어났지만, 탄생과 동시에 일하지 않는다. 아기 일벌이 처음 익히는 건 사회의 구조. 멍하니 사회를 관찰한 지 3일이 지나면 현장에 투입된다.

‘현장 투입’이라 하니 꿀 채집을 떠올리겠지만, 아니다. 시작은 청소다. 청소, 육아, 여왕벌 보필, 먹이 정리, 건축의 업무를 거친 일벌만 비행이 허락된다. 학습 비행의 시작이다.

한 번도 날개를 펴보지 못한 자에게 비행이란 두려움일 터. 그들은 벌통 입구에서 더듬이를 움직이며 주변을 탐색한다. 꼬리를 떨고, 숨을 고른다. 처음으로 날개를 펼치는 순간, 하늘로 날아오른 일벌은 원을 그리며 벌통으로 돌아온다.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길 수십 번.


처음엔 실패가 잦다. 날개 힘이 약하니 쉽게 떨어지고 바람에 휩쓸려 멀리 날아간다. 인간이라면 좌절하련만. 벌은 곧 다시 일어나 제자리를 찾는다. 인간의 관점에서 지켜보면 애틋함에 혀를 차게 된다.


다행인 건 홀로 고군분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배 일벌들이 앞에 서 있다. 그들은 길 잃은 후배를 인도하거나 위험을 막는다.


세상의 존재는 홀로 삶을 영위하지 않는지 모른다. 몽괘(蒙卦) 효사(爻辭) 중에 “타인에게서 도움을 취하니 상서롭다”는 말이 있다. 어린 일벌은 어려운 순간 선배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다. 자연에서 배움은 혼자가 아니다. 성장의 씨앗은 인내와 이끌림의 비료 위에 자라날 수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경험의 전수 없이 홀로 미궁을 헤맬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역사는 삶의 순환이 자연계의 흐름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첫걸음, 반복된 실패, 새로운 문턱. 새로운 환경에 허둥대면서도 용기와 조언을 발판 삼아 걸음을 옮긴다. 잦은 실수와 당황스러운 헛발질도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숙명처럼 주어지는 몽괘의 시간일 뿐.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조금이라도 물러나려고 생각하면 안 된다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라는 말을 남겼다. 모든 존재는 시작이란 단어에 익숙하지 않다. 시작하는 자의 어리석음은 부끄러움이 아닌 이유다. 성숙은 어설픔과 인내의 목표다.


얼마 전 겨울을 앞두고 마지막 아기 일벌이 일어났다. 벌 중 가장 큰 시련을 맞는 이들이다. 첫 비행보다 험난하고 슬픈 월동의 순간.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다. 세상의 추위는 그들을 꺾지 못한다. 도전 끝에 비행을 익히듯 추위 속에 서로를 보듬어 봄에 돌아올 것이다.


인간의 삶도 반복되고 새로운 질문은 이어진다. 생전 처음 보는 순간에 당황하고 있는가. 두려워하지 말자. 몽괘(蒙卦)의 시간이다.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는 자세로 인내하자. 완벽한 날갯짓보다 성장을 향한 발걸음이 빛난다. 몽괘의 시간을 견뎌낸 자가 만지는 건 성숙이다. 첫 비행을 성공하고 꿀을 향해 날아가는 일벌처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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